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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Apr 08. 2021

그림 외에 어떤 것에도 주의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1882년 7월 23일



    

반 고흐, <예술가의 방>, 1888




그림 외에 어떤 것에도 주의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고흐는 한 가지에 끈질기게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테오에게 그림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을 만큼 작품 활동에 몰두했던 예술가였다. 그러나 고흐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고흐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여러 유명 작가들이 명문 예술 학교에서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과는 달랐다. 고흐가 미술을 접하게 된 것은 16세 때 삼촌의 추천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화랑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을 할 때도 고흐가 빠져있었던 것은 미술이 아니라 종교였다. 젊은 고흐는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성직자를 꿈꾸었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한다. 신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시기, 고흐는 그림을 그린다. 유화가 아닌 목탄화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테오가 형에게 화가가 될 것을 권유한다. 그때 고흐의 나이는 27세였다.



그 이후 고흐의 삶은 잘 알려진 대로다.

고흐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지만 살아있을 때 명성과 부를 누리지는 못했다. 우울증과 정신착란에 시달렸고 늘 외로움과 함께였다.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그러나 그런 삶 속에도 행복한 순간은 있었으리라. 어느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봄꽃이 만개했을 때, 여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았을 때. 고흐는 그림을 정식으로 그리기 시작한 지 딱 10년 만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고흐가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뉜다). 그 10년 동안 고흐는  오직 그림에 헌신한다.



1888년 작품 <예술가의 방>은 그러한 고흐의 헌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소박하고 작은 방, 조그만 테이블과 피곤한 몸을 누일 검소한 침대. 정말 '앉기 위해' 그곳에 놓인 것 같은 의자 두 개. 벽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 몇 점이 걸려있다. 자화상과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린 그림들. 테이블 위에는 물병과 두꺼운 책이 보인다. 아마도 성경책 아닐까?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방이다. 그야말로 '방'이라는 목적에 충실한 그런 공간. 고흐는 이 그림에 <예술가의 방>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그림은 이 방에 사는 예술가가 얼마나 가난한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림뿐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흐는 그림 외에 어떤 것에도 주의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것. 그리고 그 목표 외에 자질구레한 것은 과감히 버릴 줄 아는 것. 10년의 불꽃같은 작품 활동 시기 동안 고흐는 정말 자신의 말대로 살았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었다. 나는 가끔 주변에서 마치 고흐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믿으며 꾸준히 나아간다. 얕은 말들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발밑을 단단하게 다져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정말 자신들이 말하던 지점에 도달해있다. 그들은 단순하게 세상을 살아낸다. 하기로 한 것이니 하고, 목표를 세웠으니 도전한다. 실패하면 또다시 도전한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이제 막 한걸음 떼려고 하는 내 친구 역시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두 버리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인생의 다음 챕터를 향해 걸어가려 한다. 그 용기가 아름답다. 마음 깊이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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