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8월 20일
한참 논문을 쓰느라 매일 도서관을 들락거릴 때 대학원 동기가 한 말이 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아주 잘해서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10퍼센트도 안된다고. 한 마디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라는 뜻이었다. 정확한 수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기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는 무관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동기는 미술사가 좋아서 대학원에 왔지만 진짜 이 공부로 돈 벌며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그냥 미술사는 취미로 할걸, 우스개도 덧붙였다. 우리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우는 소리를 했던 동기는 지금 미술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가끔 만날 때면 그녀를 놀리며 말한다. 너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네가 말했던 10퍼센트의 행운아가 된 것이라고.
TV나 인터넷을 보면 꿈을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무명 시절을 견디며 언젠가 주인공이 될 날을 기다린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사람, 고시에 몇 년을 바치는 사람, 가수가 되기 위해 수십 번씩 오디션에 도전하는 사람. 나는 살면서 뭔가를 그렇게 간절히 원해본 적이 없기에 저런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느 무명 배우의 이야기였다. 그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살아왔다. 그러나 무명 생활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확고한 의지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만 할 뿐 진짜 노력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오디션을 피했다. 단역은 초라해서, 어떤 배역은 내가 원하는 캐릭터가 아니어서. 그저 '배우를 꿈꾸는 무명배우'인 상태로 머무는 것에 중독된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상에 정곡을 찌르는 댓글이 하나 달렸다.
요악하면 이 무명 배우는 자기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평가를 받았다가 '배우 자질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배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머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는 스스로 알고 있다. 자신의 실력이 배우가 되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하지만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딪히며 발전해나가기보다는 그냥 자기 자신을 속인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 댓글은 자기를 숨기고 포장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별로 확신이 없다
고흐는 저 무명배우처럼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시기에도 고흐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노라고 테오에게 고백한다. 화가를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방황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 더 나아가 무엇을 더 연습하고 메꿔나가야 할 지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고흐는 끊임없이 부딪히고 있는 중이었다. 더 나은 화가가 되기 위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화가 지망생이라는 편안한 상태에 머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흐는 성과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시도한다.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한다. 나는 저렇게 자기의 부족함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들에게서 진정성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이들에게선 담담하고 담백한 매력이 느껴진다.
고흐가 1889년에 그린 자화상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고흐는 40여 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남겼다. 귀를 자른 뒤 그린 자화상, 모자를 쓴 자화상, 담배를 물고 있는 자화상. 다양한 자화상 속 고흐는 도전적이고 때로는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정면을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작품에서는 뭔가 담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색감부터가 부드럽다. 짙은 컬러 혹은 원색의 쨍한 컬러를 배경으로 한 자화상들에 비해 이 그림은 물에 탄 듯한 연두색과 하늘색이 뒤섞인 배경을 하고 있다. 고흐가 입은 옷도 비슷한 색감이다. 한 톤 다운된 컬러에 눈이 편안해진다. 그의 눈은 어떤가.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계속 그 눈을 들여다보면 왠지 눈물이 맺힌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그림 속 고흐는 그렇게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다가 '사실은 나도 별로 확신이 없다'라고 고백할 것만 같다.
별로 확신이 없다는 고흐의 고백은 너무도 솔직하기에 오히려 강인한 말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고 인정할 때 나오는 뼈저린 말이기도 하다. 저기서 포기해버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고흐는 마치 수행자처럼 지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유튜브의 무명배우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나도 왠지 그랬던 적이 있는 것 같아서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말만 하면서 한 글자도 쓰지 않았던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모두들 말했었다. 너는 언젠가 책을 쓸 거잖아. 그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글을 좀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그 시기가 편안했었다. 성과를 보여주지 않아도 나는 '작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상태에서 벗어나 진짜 글을 쓰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확신도 없었다. 내가 글 하나 끄적인다고 사람들이 읽기나 할까? 그런데 시간을 투자하고 부딪히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결과들이 내게 왔다. 그때 도전하지 않고, 그저 가능성에 중독된 상태로 머물렀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성과들이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나를 가장 잘 알기도 하지만 가장 쉽게 속일 수도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 하지만 자기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만 다음 목적지를 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갈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테고. 고백하자면 나도 요즘은 확신이 없다.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속이 후련해진다.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