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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31. 2020

우리는 함께 살아갈
친구가 필요하다

1888년 5~6월



요즘은 유튜브를 자주 본다. 그중에서도<비긴 어게인Begin again>이라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짧게 편집한 영상을 좋아한다. 국내 유명 가수들과 연주 세션이 즉석 공연을 펼치는 내용이다. 좋은 노래를 실력 있는 가수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불러주니 귀가 호강한다. 원래는 해외를 위주로 길거리 공연을 했었지만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배경을 국내로 바꿨다. 국내 공연은 코로나로 인한 차선책이었겠지만 나는 그런 변화가 더 마음에 든다. 익숙한 장소가 아름다운 음악 덕분에 완전히 새롭게 다가올 때 음악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닫는다. 




언제나 그렇듯 메인 보컬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마음껏 노래를 부른다. 기타와 반주팀은 노래에 맞춰 묵묵히 연주한다. 그러다 최근에 업데이트된 영상을 보며 울컥해버렸다. 길거리 공연을 찾은 한 관객의 사연 때문이다. 그 관객은 평소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고 기타를 열심히 치던 한 멤버를 지목하며 그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부터 찾아왔다고 고백했다. 기타리스트는 팬의 진심 어린 애정에 약간 당황한 듯했다. 항상 공연의 중심은 보컬팀이었으니까. 팬은 그에게 노래 한 곡을 신청했고 기타를 든 그는 진지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했다.  마치 이 날,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완벽하게. 환호와 함께 노래를 마친 그는 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이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울었다. 




그는 아주 멋진 가수였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는 보컬팀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그들의 노래에 맞춰 기타를 치며 마음 한 편으로는 허탈함과 씁쓸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연주하지만 정작 자신은 위로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지쳤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방송 말미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알아봐 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한 사람을 통해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받았다고 털어놓는다. 이 이야기를 통해 또다시 깨닫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다. 







   

고흐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동생 테오는 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후원자였다. 37년의 생애 동안 지독하게 가난했고 외로웠던 고흐에게 테오는 한 줄기 빛이었다. 때로 다투기도 하고 마음에 없는 말들로 상처 주기도 했지만 고흐는 테오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테오는 형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알아봐 주었고 그가 그림 그리는 것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왔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는 668통에 달한다. 어떤 소설보다도 진실되고 절절한 그 편지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함께 살아갈 친구가 필요하다




고흐는 테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결코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테오는 좋은 친구였지만 친구이기 이전에 가족이었다. 가족은 내가 무엇을 해도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준다. 타인이었던 사람과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누는 것은 또 다른 만족을 준다. 언제든 남이 될 수 있는 아주 불안정한 관계지만, 그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법을 터득한다.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기도 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미숙한 점을 깨닫고 나에게 정말 잘 맞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친구가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것은 아주 큰 힘이 된다.   




반 고흐, <들판을 거니는 여인들 Women Crossing the Fields>, 1890, 




고흐 그림 속에서 여럿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찾기는 좀처럼 어렵다. 하지만 두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은 몇 점 보인다. 팔짱을 낀 연인, 함께 일을 하는 두 농부,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어가는 두 사람. 고흐가 1890년에 그린 <들판을 거니는 여인들> 역시 두 사람이 등장한다. 두 여인이 연둣빛으로 물든 들판을 산책을 하고 있다. 들판에는 이름 모를 곡식들이 자라고 있고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노란 점이 콕콕 박힌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 하얀색 원피스에 가느다란 다홍색 허리끈을 맨 여자가 나란히 걷는 중이다. 두 사람은 똑같은 디자인의 노란 모자를 썼다. 아마도 나이 대가 비슷한 친구인 것 같다. 두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걸 보아 어떤 용무가 있어서 외출을 한 게 아니라 정말 산책을 하러 나온 게 맞는 듯하다. 



이 여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오늘 날씨에 대해, 오늘 입은 옷에 대해, 똑같이 쓰고 나온 모자에 대해 시시콜콜한 말들을 나누고 있겠지. 혹은 요즘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고민을 가장한 자랑이라던지. 아무튼 두 사람은 내키는 대로 이야기를 하고 대화 도중 잠깐 침묵이 찾아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관계 이리라. 고흐의 그림을 떠올릴 때 대부분은 강렬한 색채 또는 우울한 분위기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고흐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 속에는 이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는 그런 고흐의 그림들을 보며 그가 갈망했던 것을 어렴풋이 짐작해보곤 한다. 고흐는 따뜻하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꿨던 청년이었다.    




는 동료 화가들과 공동체를 이루는 꿈을 꾸었고,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친구를 원했다. 고흐가 고른 친구는 고갱이었다. 하지만 둘은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고흐와 고갱은 기질적으로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고갱은 고흐의 진심을 부담스러워했고 그것을 집착이라 여기게 된다. 고흐는 고갱이 자꾸만 자기와 거리를 두고 뒤로 발을 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흐는 고갱과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고갱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삐걱대는 관계는 얼마 가지 못해 파탄에 이르고 만다. 고흐가 원한 건 아주 간단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나를 이해해주고 알아봐 줄 누군가. 그렇다면 정말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다행히도 고흐에겐 테오가 있었다. 고흐가 맘 졸이지 않아도, 아무리 초라한 모습이어도 곁에 있어주는 존재. 살면서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말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겠지만 요즘은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다. 누구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아도 지금 내 곁에 네가 있다면 웃을 수 있다. 당신에게도 분명 진심으로 당신을 응원하는 '테오'가 있다. 그 덕분에 또 우리는 하루하루를 맞이할 힘을 얻는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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