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오늘은 네게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꽤 오래 전부터 엄마 휴대폰 앨범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 중 하나야. 예전에 혼자 유럽 여행을 가서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정말 오랫동안 이 그림 앞에 서 있었어. 예술 작품의 원본에 아우라가 실재하는지 아닌지 그런 건 잘 모르겠어. 엄마는 그렇게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거든.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 정말 감동받았어.
그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야. 자세히 보면 참 이상하지. 하늘은 화창하고 밝은데 그 아래는 어두워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거든. 이 그림을 그린 배경은 낮일까? 밤일까? 알 수 없게 해. 심지어 이 그림에 그려진 집도 이상해. 문이 없는 집이거든. 창문 뿐인 집.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이 어떻게 들어갔을까? 2층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면 분명 안에 사람이 있을 텐데 말이야. 이상한 걸 넘어서 어쩌면 기이하기도 해.
이 그림을 직접 보기 전, 엄마는 그냥 이 그림이 주는 색감과 빛의 대조가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느꼈지. 그런 맥락에서 멋진 그림이구나 했어. 이런 이유로 굳이 원작을 보러 간 것이기도 하지. 한편으로는 ‘르네 마그리트’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도 있었어. 예전에 공부했던 희곡 한 편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 화가의 그림에 뭔가 신기한 게 있다는 환상도 젖어 있었거든.
그런데 엄마는 이 그림을 실제로 보고 나서야, 이 그림의 앞에서 작품을 제대로 ‘마주서고’ 나서야 이 그림의 진가를 깨달았어. 사람마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르고 그 가치도 다르게 다가올거야. 엄마에게 이 그림의 무엇이 가장 감동적이었을까? 엄마에게 이 그림의 묵직함과 진정한 값어치는 바로 이 그림의 ‘제목’이었어. “빛의 제국.”
빛의 제국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곳, 문이 없는 집, 불이 다 켜지지 않은, 사람이 꽉 차고 생기가 넘치는 집일 것 같지 않은 건물. 그 앞의 중앙에 홀로 환하게 빛나는 가로등이 있어. 이 가로등이야 말로, 엄마가 느끼기에는, 단순히 이 그림의 중심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그림 자체의 중심이었던 거야.
밤인가? 낮인가? 어떤 사람이 살까? 왜 2층의 몇 개의 방에만 불이 켜져 있을까? 그런 건 알 수 없어. 하지만 가장 중심에 환한 가로등이 빛을 비추고 있어. 그 덕분일까? 어둠이 지배하는 것 같은 작품의 하단 부분이 음울하게 어둡지 않아. 자칫 기괴해 보이는, 문이 달리지 않은 집도 무섭게 느껴지지 않아. 그로부터 이목을 빼앗는 건 바로 저 빛, 어둠 속에서 빛나는 가로등이거든.
아, 그래서 이 그림은 ‘빛의 제국’이구나. 저 가로등 하나가 이 그림을 ‘빛의 제국’으로 만드는 구나.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어.
이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내 마음 속에도 환한 낮이 있고 고요한 어둠이 있겠지. 어쩌면 쓸쓸한—출입구가 없는—그런 집도 있구나. 그러나 이 어둠 속에서 내가 가진 불빛이 하나 있다면, 그 가로등이 밝게 빛난다면, 내 마음이 ‘빛의 제국’이 될 수 있구나. 하고 말이야.
언젠가 딸이 더 자라면 너와 함께 그림을 보러 다니고, 그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지? 기회가 된다면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너와 이 작가의 컬렉션에 방문하고 싶어. 그때 너는 어떤 그림을 좋아할 지, 어떤 색감을 좋아할 지 정말 궁금해.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엄마와는 다른 어떤 것을 보고 느낄 지 함께 이야기하고도 싶어.
그리고 기억해 주겠어? 네 안의 양면적이고 혼란한 마음 속에서 헤매게 되는 날에 이 그림에 대해 엄마가 했던 이야기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