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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Aug 01. 2024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고3 때 내 책상에는 엄마아빠의 학창시절 사진이 붙어 있었다. 부모님 사진 옆에는 가고 싶은 대학교의 로고를 붙여 놓고, 아래에는 이렇게 써 놓았었다.

공부하자. 엄마아빠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그렇다. 그 시절의 나는 엄마아빠를 위해 공부했다. 시험을 볼 때도 문제를 맞힐 때마다 엄마가 함박웃음 짓는 상상을 했다. 시험기간에는 엄마에게 내 방에서 자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공부하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도 잠시,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곤 했는데 엄마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한밤중에도 힘을 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알게 모르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어떤 때는 반듯하게, 또 어떤 때는 번듯하게, 때로는 점잖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모양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모든 생각은 한 가지 뿌리에서 비롯되었다. 부모가 마음에 들어할 법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것. 


구내식당이 있는 서울의 회사를 다니는 삶. 그 삶을 좇았던 건 내가 원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부모를 생각해서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구내식당이 있는 정도의 규모의 회사라면 작은 도시에 사는 그들도 알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그러면 엄마아빠는 동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 딸은 서울에 있는 아주 큰 회사에 다녀요.”

내가 다닌 다섯 곳의 회사 중 공교롭게도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는 한 곳도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자랑거리였다. 자랑할 게 별로 없는 삶 속에서도 그들은 기가 막히게 자랑할 구석을 찾아내곤 했으니까. 


다섯 번째 회사를 나와 백수가 되고 프리랜서라는 정체 불명의 직함을 갖게 된 후, 엄마아빠는 딸내미를 어떻게 자랑할까. 너무 예쁜 손주를 낳았다며 자랑할까. 이해할 수 없는 딸의 직업 대신 단번에 이해되는 직업을 가진 사위를 자랑하려나. 이런 생각을 해본 게 정말로 오랜 만이라는 걸 글을 쓰면서 알았다. 요즘의 나는 부모를 의식하는 일이 별로 없다. 가끔 나도 모르게 단정한 옷을 찾는다거나 일을 의뢰한 회사의 연혁표를 검색해 보는 습관 속에서 부모의 그림자와 마주하지만, 이전처럼 그 그림자가 중요한 결정을 뒤바꾸거나 하던 대로 하도록 부추기지는 않는다. ‘이건 내가 아니라 부모의 그림자구나’ 깨닫고 결정에 참고할 뿐이다. 


부모의 그림자에서 전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출산과 육아였다. 제왕절개 수술 후, 내 몸에는 여러 개의 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항생제, 진통제, 수액을 몸 안으로 주입하기 위해서였다. 내 몸이 마치 거대한 멀티탭이 된 것 같았다. 화장실에라도 가려면 엉킨 선을 가지런히 정리한 후,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야 했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으면 의구심이 들었다. 이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 자던 남편을 불러냈다. 

“일어나서 나 좀 찍어줘.”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병실 입구에 서서 환자 침대 쪽을 향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중에 아기가 커서 말 안 들으면 보여주려고.”

장난의 탈을 썼지만, 그때 분명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의 그림자. 그걸 내 아이에게도 씌우려는 시도. 그 시도를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낯설지 않다. 평일 저녁시간에 TV에 나오던 드라마 속 주인공 엄마의 단골 멘트. 내가 이날 이때까지 너를 얼마나 고생해서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냐는 호소다. 내가 애써서 너를 키운 만큼 너라는 존재에는 나의 지분도 있으니, 취직이든 결혼이든 절대 네 맘대로는 할 수 없다는 압박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저런 말을 할까’ 싶었다. 육아의 세계에 들어서기 전에는. 언젠가 본 TV 광고에는 딸이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키웠구나’ 하고 깨닫는 딸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한 나머지, 장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너도 애 낳아봐라. 그때는 다 이해할 거다.”

우리 엄마 역시 내가 삐딱선을 탈 때마다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 거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배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죄책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싶어 일렁거렸다. 


육아 12개월차.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기를 예쁘게 입히고, 온갖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웃기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건 아기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나의 만족감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후자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희생정신이나 헌신의 마음이 우러나와서 아기에게 무언가 해주는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한다. 


같은 돈을 써도 내 옷보다는 아기 옷을 사는 게 더 재밌으니까 산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꺄르르 소리 내어 웃는 아기를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엄마아빠도 나를 키우면서 이렇게 좋았을까?’ 

생각하다가 알게 되었다. 나는 이미 존재 자체로 엄마아빠에게 모든 걸 주었다는 걸. 아이가 하루하루 건강하게 사는 것. 그것 이상을 바라는 건 부모 욕심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을 한 이후로는 아주 떳떳하게 내 맘대로 살려고 한다. 나와 같은 날 아기를 낳은 친구의 부모님은 친구의 아기를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태어나서 세 살때까지 평생 할 효도는 다 한 거다.”

아기가 말을 배우면서 부모 말을 안 듣는 법도 배우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들은 부모의 말 중 이 말이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믿는다. 효도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효도가 있다면 그저 세 살박이 아기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일 거라고. 그러니 남은 인생도 최대한 마음 가는 대로 살자고. 내가 사는 모습이 엄마아빠 마음엔 썩 안 들지도 모르지만 자식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나가는 걸 보는 것도, 보면서 자식이 내놓은 답도 맞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도 부모의 즐거움일 수 있다고. 


자식으로서는 이렇게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부모의 권위를 입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류의 레퍼토리를 입 밖에 내고 싶을지 모른다. 그럴 때는 말 대신 냉수라도 마시면서 정신 차려야지. 언젠가 아이가 반대로 “엄마는 나를 어떻게 키웠어?” 하고 물어 온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재밌게 키웠지!”


내가 두 시간마다 일어나서 젖을 물리고, 없는 돈을 쪼개가며 학원을 보내고, 내 몸이 아파도 네 삼시세끼는 든든하게 해 먹이고, 눈물 나는 일이 있어도 네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고… 이런 말들은 하나도 늘어놓지 않고 딱 한 마디로만 끝내고 싶다. 너 키울 때 진짜 재밌었다고. 가벼워진 말의 무게만큼 아이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음껏 세상을 누빌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살면서 무거워질 아이의 어깨에 부모라는 짐까지 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자기 삶이 재미 없다고 느껴질 때 ‘재밌게 키웠다’는 내 말이 짐으로 느껴지면 어쩌지. 모든 날이 재밌을 수는 없는데… 역시 이 말도 완벽한 답은 아닌 것 같다. 괜찮은 자식이 되는 길 만큼이나 괜찮은 부모가 되는 길도 아득히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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