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 엄마가 운다. 엄마는 조금 전, 아기와 내 짐을 기차에 실어주고 플랫폼에 내렸다. 자리는 객실 맨 뒤. 뒤를 돌아보면 열린 문 밖으로 엄마가 보인다. 출발 2분 전, 1분 전, 30초 전. 기차가 사람들로 가득 찰 때마다, 경적 소리가 커질 때마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띠리링. 기차의 출발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릴 때, 터진다. 엄마의 눈물. 일그러진 얼굴. 끝내 엄마는 울고 만다.
본가에서 처음으로 보내는 아기와의 4박 5일. 태어났을 때부터 내 집이었던 낡은 집을 아기와 함께 방문했다. 아침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전에 일어나 마당을 돌보던 아빠는 매일 열 시까지 잠을 자고, 키 작은 나무들이 보기 좋았던 마당은 휑해졌다다. 40살이 넘은 집의 곳곳은 깨져 있고, 지하실로 가는 문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
3년 전, 이 집은 리모델링을 했다. 딸의 신혼집에 다녀 온 엄마는 ‘딸이 깨끗한 집에서 살게 되어서 좋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더 늦기 전에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집 곳곳을 휴대폰으로 찍어 간 엄마는 인테리어 가게를 찾아가 말했다고 한다.
“이거랑 똑같이 해주세요.”
똑같지는 않았지만, 엄마만의 취향이 담긴 하얀 집이 완성되었다.
고작 3년이 지났을 뿐인데, 집은 다시 세월을 입었다. 구석에 있는 방 벽을 타고 곰팡이가 피어 오르고, 화장실에는 까만 물때가 차올랐다.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나이의 흔적. 새하얀 분칠 위에서 더 도드라지는 주름처럼, 무르고 허약해진 집의 구석구석은 도배와 장판을 얹은 후에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새 것처럼 낡은 집에 엄마가 살고 있다. 폴리싱 타일의 질감을 살렸다는 하얀 장판. 거실에 있던 안마기를 들어내고 보니 어느새 변색되고 말았다는 하얗고 누런 바닥 위를 아기가 기어다닌다.
“너희 엄마가 매일 여기서 잤어. 여기는 장롱이었고, 여기는 책상. 여기는 원래 문턱이 있었거든. 그래서 울퉁불퉁한 거야.”
아기를 따라다니며 쉬지 않고 말하는, 할머니가 된 엄마.
손주가 오기 전, 엄마는 농 안의 이불을 모두 꺼내 빨았다. 푹신한 이불만 골라 거실에 모조리 깔았다. 혹시라도 아기가 딱딱한 바닥에 넘어질까 봐 염려해서였다. 모자란 곳에는 새 이불을 사서 깔고, 근처 장난감 도서관에서 장난감도 빌려놓았다. 아기가 좋아한다는 포도도 따서 씻어두고, 딸이 좋아하는 밑반찬도 미리 해두고. 꼬박 3일이 걸렸다고 했다. 그 동안에는 우리를 맞이할 준비 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고.
아기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깨달았다. 이 방 선반 위에 술병이 즐비하다는 걸.
“아이고. 이걸 치웠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엉뚱한 짓만 했네.”
술을 박스에 담다 안 되겠는지 술이 담긴 선반도 창고로 옮겨두었다. 깔끔해진 방. 준비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어 아기를 재우러 들어갔는데, 방 안이 후끈했다. 아기도 나도 땀범벅이 되어 방을 나왔다. 집에 있는 에어컨은 거실에 한 대 뿐. 거실 에어컨을 틀고 온 집의 불을 껐다. 거실에 깔린 이불 위에 아빠와 엄마, 아기와 내가 차례로 누웠다. 거대한 아기방이 된 집. 모두가 아기처럼 아홉 시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아기를 씻기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내지른 비명. 찬 물을 튼다는 게 뜨거운 물을 틀어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아기 몸을 담그기 전이라 내 손만 데었다.
“아, 진짜!”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 집의 화장실 수도꼭지는 방향이 반대다. 오른쪽으로 돌리면 온수가, 왼쪽으로 돌리면 냉수가 나온다. 이 집에 살 때는 능숙하게 반대로 돌리며 샤워를 했는데, 손님이 되니 엉망진창.
“으악!”
설거지를 하다가도 터지는 비명. 부엌 싱크대 수도꼭지도 방향이 반대다. 모든 수도꼭지가 반대 방향이라면 괜찮을 텐데, 다른 수도꼭지 방향은 또 제대로라 제대로 헷갈린다.
다음 날은 안방 화장실에서 아기 얼굴을 씻기다 물벼락을 맞았다. 버튼을 누르고 세면대 물을 틀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물부터 틀었다 아기와 나 모두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에 제대로 젖었다. 제대로인 것 같아도 불시에 고장난 구석이 드러나는 집. 깨끗이 닦아도 돌아서면 때가 끼는 집. 엄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있다.
물론, 엄마가 처음 이 집을 만났을 땐 새집이었다. 동네에서 예쁘기로 소문 나 사람들이 구경 오기도 했다는 집. 부잣집인 줄 알고 숨어든 도둑도 여럿이었던 집. 요즘은 도둑을 포함해 아무도 찾지 않는 집. 멀리서도 눈에 띄었던 빨간 벽돌 위에는 덧바른 페인트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 집을 배경으로 아기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쪽 말고 이쪽으로. 그쪽으로 서면 옆집 벽 허물허진 게 너무 잘 보여. 이쪽으로 찍으면 그래도 새집 같지.”
엄마는 포즈도 표정도 뒷전이다. 집이 늙어 보이진 않을까. 그것만 신경 쓴다.
“그래도 똑같이 찍어야 돼. 30년 전 방향 그대로!”
어릴 적 사진과 똑같은 구도로 찍고 싶은 나는 고집을 부린다.
고집의 결과로 완성된 사진 하나. 두 장의 사진을 하나로 합쳐 놓았다. 왼편엔 1991년 여름의 엄마와 내가 있다.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파마머리를 한 엄마. 아무렇게나 걸친 홈웨어는 위아래가 똑같은 투피스. 비슷한 옷을 찾으려 해도 끝내 찾지 못했다. 세 살이던 나를 안아 들고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듯 입을 삐죽 내민 엄마가 있다.
그런 엄마를 따라해 보려 애쓴 내가 사진 오른편에 있다.
“그것보다 훨씬 위로 들어야 돼!”
사진 속. 엄마와 비슷해 보이려면 아기를 어깨 위로 번쩍 들어 올려야 한다는 사실은 포즈를 취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세 살 때면 우리 아기보다 무거웠을 땐데, 어떻게 이렇게 들었지?’
생각하다가 떠올렸다. 사진을 찍었던 해, 엄마의 나이는 서른셋. 지금의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었다.
두 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엄마와 아기. 오래된 마당에서 태어난 지 1년이 된 아기를 엄마가 안아 든다. 급히 나가던 길이라 사진이 찍힐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복장으로. 그래도 아기를 들자마자 환해지는 엄마. 흐린 하늘 아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름답다. 그날 밤, 33년 전 엄마의 사진 옆에 오늘의 엄마 사진을 포개놓자마자 생각했다. 늙은 집도, 통통해진 엄마도 그냥 다 아름답다고. 그 자리에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모든 게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내 눈밑에 들어 앉은 주름도, 축 쳐진 볼살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그런 순간은 짧고, 빠르게 휘발된다. 다음 날은 다시 또 정신없는 일상이 시작된다. 아기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면서 틈틈이 엄마에게 화를 낸다. 꾹꾹 눌러도 방심한 틈을 타 기어이 입으로 나오고 마는 화. 아기를 업지 말라고, 음식은 이렇게 짜게 먹지 말라고, 먹다 남은 밥은 제발 버리라고 화를 낸다. 화를 내려다 정신이 들면 속으로 삼킨다.
“하…….”
말줄임표가 길어진다.
밥을 먹다 볼을 깨물고, 입 안에는 피가 나고, 피가 난 자리엔 하얗게 염증이 생기고, 거실 소파에는 앉을 틈도 없이 아기를 쫓아 다니고,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화는 나고.
“너무 피곤해. 집에 가고 싶다…”
피곤해 보인다는 엄마의 말에 이렇게 대답해 버린다. 이제는 우리집이 아닌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고. 내 남편과 고양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엄마의 엄마는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결혼 후, 엄마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화를 낼 곳도, 사진을 찍을 곳도, 집에 가고 싶다고 불평할 곳도 없이 산 엄마. 딸의 신혼집을 처음 봤을 때 그랬듯, 4박 5일 내내 엄마는 딸이 부러웠을 것이다. 부러워서 자기가 받고 싶었던 걸 그대로 딸과 아기에게 주었을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는 규칙. 눈물을 보이면 팽팽하게 지키고 있던 우리 사이의 평화가 깨진다. 허둥지둥. 서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딸과 손주가 탄 기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엄마는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긴장이 사라진 틈으로 삐져 나온 눈물. 조용히 무너지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본다. 얼른 가라고 손짓하며 엄마의 눈물을 못 본 척한다. 아기의 손을 잡고 엄마에게 손을 흔든다. 기차가 달리자, 엄마가 빠른 속도로 눈앞에서 사라진다. 아기와 나, 둘만 나란히 앉은 기차 안. 이제는 곁에 엄마가 없다. 마음 편히 울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눈물이 나온다.
“저는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랐어요.”
이런 이야기를 싫어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집은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다. 바쁜 가정, 조용한 가정, 그러면서도 불안한 가정에 가까웠다. 가난하게 태어나 일밖에 모르던 엄마는 나를 낳으면서 갑자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온 사랑을 어쩔 줄 몰라 하며 엄마는 36년을 지냈다.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지만, 그게 매번 상대의 의견과 부딪히는 상황. 노력하고 애쓸수록 부족해지는 사랑을 하며 엄마는 나이 들어갔다.
닳고 닳을수록 새로워지는 사랑. 그 사랑을 받으며 내가 자랐다. 불완전한 사랑의 결정체로. 매사에 불평과 걱정이 많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움직이면 쉽게 예민해지는 사람. 그런 나를 40년째 한 순간도 빠짐없이 꽉 채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나를 생각하면 환히 웃다가도 한순간에 온 얼굴을 무너뜨리며 울게 되는 사람. 그 사람의 시간을 헤아려봤다. 내가 보지 못한 순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일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