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첫 독립기
창문을 열었을 때 나무가 보여야 합니다
30살, 여름.
나는 첫 독립의 꿈을 이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독립의 기회가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는 네 식구와 생활을 30년 하고도 6개월 동안 함께했다. 남들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제일 마음 편한 것이라 하지만, 나는 비용을 들어서라도 혼자만의 공간을 늘 열망해왔다. 내가 원하는 제품을 사서 꾸미고,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공간에 녹여내고 싶었다. 작년에 출간한 '울면서 걷다'에서도 언급했었는데, 부모님이 구축해주신 방과 환경에 의지하게 되면서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나의 방을 증오해왔다. 모든 가구의 위치, 벽지 색, 작은 소품들까지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온지도 모르게 원래 있었던 것들이고, 난 그런 것들에 아무 감정 없이 사용해왔으며, 아끼는 마음 없이 방관해왔다. 내 고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그런 방이니까.
특히 형제와 물건을 쉐어하게 되면서 생기는 분노와 포기 상태를 오가면서 이제는 더불어 사는 삶이 내게 방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나는 집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해?
부동산을 운영하는 엄마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그냥 '네가 가서 직접 보고 마음에 들면 계약해라'였다. 내겐 이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 엄마의 심플한 답에 불안함만 증폭됐다. 어차피 나 혼자 사는 집, 나 혼자 알아보리라! 집을 알아보기 전,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미리 절차와 방법을 공부했다. 요즘에는 SNS에 원룸을 구하려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집 관련 팁을 설명해주는 영상이 많았기 때문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부동산에 직접 전화를 하는 것도 처음이라, 집을 어떻게 보러 다니고 어떻게 계약하는지에 대한 것들도 공부했다. 그렇게 몇 주를 사전조사만 한 뒤, 내가 살 동네를 물색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회사와 가까운 곳을 찾아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즈니스 밀집도가 많은 그 동네에 정감이 가지 않았다. (사실 시세가 큰 탓도 있다) 내가 원하는 곳은 조용하고, 나무와 공원이 많고, 서점과 영화관 그리고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있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창문을 열었을 때 나무들이 (꼭)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루빨리 집을 나오고 싶었기 때문에, 적당한 동네를 발견하고 그 주위 부동산들에 전화를 걸어 방문 예약을 1시간 단위로 했다. 하루 안에 집을 정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러 다녔는데, 어떤 중개인은 나보고 집을 몇 개나 보러 다니는 거냐며 놀라시곤 했다. (나중에는 부동산끼리 집이 겹쳐서 민망한 상황도 생겼다) 나는 창문을 열면 나무가 보여야 된다는 말을 강조했는데, 대부분 중개인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중개인은 그런 곳이 어딨냐며 나무랐다. (내 희망사항을 철저히 무시한 부동산과는 계약을 절대 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예약한 부동산을 모두 둘러봤고, 해가 질 무렵에도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마지막으로 딱 한 군데만 볼 생각으로 모바일로 집을 검색하다가, 창문 밖에 나무들이 보이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 집을 볼 수 있냐고 여쭤보니, 운이 좋게도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다.
나 이제 혼자 산다
이 집이 내가 살 집이냐, 아니냐는 단 1분 안에 결정된다. 우선 방에 들어왔을 때 답답한 느낌이 없어야 한다. 천장의 높이, 창문의 위치와 크기에 따라 쾌적함을 좌우한다. 어떤 집은 10초 만에 아니다 싶어서 바로 나온 적도 있었다. 습하고 답답한 느낌이 확 들어왔다. 이것은 계절과는 상관없이 공간이 주는 모양의 냄새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보통 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쓸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겐 쾌적함은 필수조건이었다. 창은 두 개였고, 한 면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이전 세입자가 두 개의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외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람도 솔솔 잘 들어왔으며, 천장의 높이도 적당했다. 이미 그것에 합격점을 받은 상태에서 창문 밖으로 그린색의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그날 가계약을 결정했다. 여러 개의 나무가 숲을 이루면서 노란색 햇빛을 받으며 영롱한 빛깔을 띄고 있었다. 화장실도 대충 보고, 주방도 대충 봤다. 어차피 열심히 청소해서 닦으면 되는 거니까. 나, 이제 정말 혼자 산다!
잠이 잘 오는 집
계약을 하고 첫 입주하는 날, 처음 자취를 해본 사람치곤 정말 야무지게, 열심히 청소했다. 빨래도, 분리수거도, 요리도 부모님이 해주신 환경에 의지하면서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지만 하나하나 알아가고 배워가면서 살림을 꾸려갔다. 주방가위 하나 사는 것도 이렇게 어렵고 큰 고민이 들어갔는지 몰랐다. 식기와 주방기구, 바구니 하나하나 크기와 색, 모양새를 결정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세팅을 마무리했다. 내가 고른 집에 내가 고른 물건들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본가에서는 머리카락 하나 떨어진 것도 줍지 않았는데, 지금은 내가 꾸린 살림에 먼지 한 톨 놓여있는 꼴을 못 본다. 입주한 지 약 2주가 지난 오늘, 모처럼 휴일에 빨래를 널고 그릇 정리를 한 뒤 내가 좋아하는 색의 테이블보를 깔고 현재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여울은 흐른다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첫 입주 날 빈 방에 주저앉아 혼자 펑펑 울었다. 갑자기 여러 감정이 벅차올랐다. 어린 시절 나름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모두 변해버린 것 같았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우리는 매일 이별하는 존재라는 것이 가슴에 확 와 닿았다. 네 식구가 오랫동안 살던 집에는 현재 엄마도, 나도 없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짐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두 번째로, 30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복잡하고 괴로웠던 10대와 20대를 견뎌내고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되면서 꿋꿋이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에 눈물이 났다. 독립이 인생의 마지막, 혹은 끝은 아니겠지만 현재 내게 있어서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함에 대한 종착지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결국 무슨 일이 생겨도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고 간다는 뜻이니까. 혼자 잠을 자야 하고, 혼자 무언가를 고쳐야 하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믿고 있다는 뜻이니까!
'여울'의 뜻처럼 작은 돌덩이를 사이에서 어떻게든 헤엄치고 살아남아 넓은 바다에 도착했다. 독립을 하게 되면서 전보다 잠도 푹 자게 되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무들이 내게 인사하는 것 같아 행복하다. 이곳은 잠이 잘 오는 집, 그리고 늘 여울이 흐르는 집이다.
글 여미
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내일도 쉬니 오늘은 늦잠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