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렸고 불안했지만

네가 있었기에 따뜻했던

by 여미

스무 살이었다.


얼떨결에 대학에 간 기분이었다. 모두가 대학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도 당연히 지원을 했다. 부모님은 대학 진학에 있어서는 특별한 간섭이 없었고, 내가 어떤 대학에 지원한다고 하면 원서비만 지불해주셨다.


그림을 좋아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였다. 머릿속에서 떠도는 상상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를 시각화하는 것을 즐겨했다. 음악을 듣거나 문학작품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을 내 멋대로 캐릭터화 시켜서 그림을 그리다가 점점 더 빠져들었다. 종이만 보이면 낙서를 했기 때문에 차라리 이럴 거면 미술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그림에는 영 소질은 없었다. 정말 그랬다. 누군가로부터 내 그림에 대한 칭찬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때 당시 애니메이션과로서는 꽤 괜찮은 대학에 지원했다. 최종 면접에서 취미가 무엇이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초콜릿 케이크를 한 손에 들고 배어 먹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거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조각 케이크이나 김밥, 핫도그 같은 간식들을 조금씩 베어 무는 것을 좋아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맛있는 간식들을 동시에 먹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 생각했다. 바람도 쐴 수 있었고, 음악도 들을 수 있으며, 배도 불렀다. 내 유일한 취미를 솔직하게 말한 것일 뿐인데 면접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학에 붙었다.


수시에 붙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기쁘지는 않았다. 몸이 별로 좋지 않아 계속 살이 빠졌고, 대학 생활이 기대되지 않았다.


대학에 가니 모두가 낯선 사람들뿐이고, 한 학기가 지나갈 때 까지도 여전히 나는 친구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유난히도 그 해 겨울은 너무나 추웠고 길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도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도 누군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공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버스 안에서 양 옆으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유독 나만 조용히 앉아있는 것 같아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대학 생활은 생각보다 더 시시하고 재미없었다. 비는 시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시간들은 모두 불안함으로 채워졌다. 영화를 보러 종종 도서관에 가곤 했지만, 도서관에는 늘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더 추웠다. 사람이 없는 곳도, 사람이 많은 곳도 모두 내가 있을 곳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 져서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 인생도 자꾸만 어디론가 빗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 내내 목표였던 대학에 합격하자, 그 이후의 삶은 아무도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방학 때는 유독 침울함이 심해지는 것 같아 간혹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우리 카페가자


불안할 때마다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 K가 있었다.

그는 군대에 가기 직전까지, 나와 매일같이 만났다.


내가 조금이라도 밖으로 나가기 귀찮아하는 날이면, 우리 집 앞 카페까지 와서 내 음료를 주문해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우리가 만나서 한 일은 대부분 재미없는 각자의 대학생활 이야기와 인생 목표를 세우는 것. 이 두 가지뿐이었지만, 사실 같은 이야기를 온종일 떠들어대도 해결되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랬지만, 이상하게 그와 우리의 우울한 인생에 대해서 시시한 농담을 나누는 것들이 차가운 마음 한 구석을 어느 정도는 미지근하게 데워주곤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을 그와 보냈다.


그 후, 나에게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용기를 내서 학과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대학 친구들도 생겼고, 그들과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의 자취방으로 가서 파스타도 해 먹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가끔씩 복학생 오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가슴이 뛰곤 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어느덧 평온해지고, 더 이상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K와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가 종종 내게 이야기하러 카페에 가자고 했지만, 대학 친구들을 만나느라 나가지 않았다. K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계속 만나고 싶어 했다. 어느덧 그가 곧 군대에 가야 된다고 했다.


우리는 노래방에 가서 하루 종일 이소라 노래를 부르고, 울고, 웃었다.

초콜릿 우유와 과자들을 사들고 공원에서 춤을 추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도 추운 겨울이었으며, 눈이 내렸다.

목도리가 땅에 끌리 때까지 웃고 떠드느라 자정이 되곤 했다.


K는 군대에 다녀온 후,

나와 더 이상 불안함을 이야기하러 카페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흔들리는 버스와도 멀어졌다.


우리는 어렸고 불안했지만 네가 있었기에 따뜻했던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본 그림의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들으러 여미의 유튜브 놀러 오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f4ItL7eDGjlHMPHES9QQ4w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보면 분명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요. :)


오늘도 여미의 브런치를 방문해주어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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