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아르바이트생

저를 기억하시나요?

by 여미

스물한 살, 대학생 시절 때 일이다. 여름방학에 용돈벌이를 하고자 집 앞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말도 행동도 느린 탓에 빠른 순환이 이루어져야 하는 서비스직에 맞지 않아 잦은 실수를 해서 애를 먹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도 어리고 어리바리해서 직원들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를 받았다. 분위기도 굉장히 차갑고 딱딱해서 각자 자기 일만 하고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을 물어봐도, 성가셔하는 표정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더 소심해져만 갔다.


유일하게 모든 면에서 따뜻함을 가진 분이 계셨다. 그때 당시 내 닉네임은 '우리'였는데, 내가 잦은 실수를 해도 전혀 짜증 내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줬던 분은 남자 매니저, '앤디'였다. 앤디는 내 닉네임을 부를때의 목소리와 눈빛이 항상 차분하고 온화했고 신입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를 여러모로 챙겨주려고 하셨다. 앤디는 매니저 직급인데도 불구하고 설거지나, 쓰레기를 버리 가는 일 등 번거로운 잡무들을 본인이 출근하는 날은 모두 도맡아서 하려고 했고, 피곤하거나 힘들어도 단 한 번도 표정으로 드러낸 적도 없었다. 손님들한테서나, 직원들한테서나 언제나 한결같은 미소를 가진, 배려심 깊고 따뜻한 분이었다. 나에게만 특별히 잘해줬다기보다는,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이었고 그 친절함이 나에게로 와 닿았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나는 그때 그분의 나이가 되어 깨달은 점은 얼마나 넓은 마음씨와 아량을 지녀야, 길어봐야 몇 달 머물다 떠나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한테, 그것도 싹싹하지 못해 느려 터진 막내한테 매일 웃으면서 일을 알려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남을 시키기 미안한 일들은 본인이 다 도맡아서 할 수 있단 말인가. 밑에 직원들의 휴식시간도 챙겨야 하고, 촘촘히 매장 관리도 해야 하고,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진행해야 하고,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해야 하는, 그 길고 고된 하루 안에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아르바이트는 한 8개월 남짓 했을까, 3학년이 되고 바빠져서 그만둬야 했다. 떠나기 전에 앤디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막내로 들어와 아무것도 몰랐던, 한낱 아르바이트생한테 화 한번 내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다며, 소심해서 누군가의 한마디에도 종종 위축이 되곤 했는데, 앤디와 같이 일하는 날 만큼은 덕분에 마음이 편했다며, 이런저런 마음에서만 머물렀던 진심을 전하고는 싶었지만, 그분과 사적인 대화를 한 적이 몇 번 없어서 입 밖으로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편지를 쓰고 떠날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괜한 오버인 것 같았다.


스타벅스를 그만두고, 그 동네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종종 친구를 만나기 위해 전에 살던 동네를 놀러 가면 앤디가 생각이 났다. 아직도 일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몇 번 손님으로 방문할 때 유심이 둘러보았지만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스타벅스 직원들은 로테이션을 자주 하는 편이라서 자연스럽게 교체가 된 듯했다.


그로부터 9년 후 어제, 앤디를 보았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 무심코 들어갔다가 주문을 받는 직원을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앤디랑 닮았군' 라며 혼잣말로 속삭였는데, 이름표를 보니 진짜 앤디인 것이다. 앤디는 정말 하나도 안 늙은 것 같이 얼굴이 그대로였다. 주문이 내 차례가 다가오면서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볼까?' 그러나 일단 후퇴했다. 안타깝게도 그때 나는 동네를 배회하다가 들어온 것이라 화장을 하지 않았고, 요새 뭘 하냐고 물으면 또 말문이 막힐 것만 같았고, 뭐 여러모로 짧은 대화를 나누기에 복잡했다. 결국 자리로 돌아와서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주문했다.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 상태로선 아는 척 하기가 민망했다. 모른 척하고 있다가도, 괜히 나를 먼저 알아볼 수도 있고 말이다. 친구한테 이 말을 했더니 나에게 이런 팩폭을 했다.


야, 그래서 화장은 매일 하고 다녀야 돼


맞는 말이다. 최소한 비비크림 정도 바르고 왔으면 주문하는 것 정도는 했을 것 같다. 알림이 울리자 커피를 받고 자리에 돌아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때 편지를 앤디에게 줬다면, 그리고 9년 후 오늘 마주쳤다면 어땠을까? 앤디는 나를 조금 더 특별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생각했을까? 혹은 그때 내 말로 인해 조금은 행복해졌을까? 아니야, 그래도 친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혼자 편지를 주는 것은 당황하게 했을 수도 있어. 남몰래 짝사랑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에이, 그래도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할걸 그랬어. 앤디는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말이지, 나 정말 궁금한 게 하나 있어.


그는 나를 알아봤을까?

저 우리에요 우리

여기에서나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다음부턴 화장은 하고 다니는 걸로)


고마워요,앤디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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