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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Feb 24. 2018

자연, 향기 그리고 나

영화 '리틀 포레스트' 리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살 때까지 흑산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가족앨범에는 바닷가 앞에 쭈그려 앉아 소라 껍데기나 돌멩이를 가지고 놀고 있는 나의 어릴 적 사진들이 많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버지는 내 이름을 '소라'라고 지을 뻔했다고 한다. 결국 비슷한 의미의 다른 이름을 가지긴 했지만.


그 이후, 서울로 넘어와 도시생활을 줄곧 보내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섬 생활'이라는 이력은 매우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도 안 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어린 나이에 바닷가 앞에서 사색을 했다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 속 우리 가족은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다. 작은 구멍가게 조차도 없는 드넓은 갯벌에는 바닷바람과 햇빛이 전부였다. 가끔씩 시골에서 야채 농사를 하시는 큰 이모는 식량을 택배로 보내주시곤 했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공급으로 충당하는 '자급자족'의 삶이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김태리), 그녀는 긴 도시 생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는가?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 둘이 시골에서 살아왔던 혜원의 어릴 적 과거가 그려진다. 어머니는 자연에서 직접 재배하여 얻은 농작물들로 어린 혜원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다. 그것은 단순한 '요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료가 가진 특성을 설명하며 사계절을, 삶을 이야기 한다. 혜원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지혜롭다.  인간으로부터 오는 복잡한 문제나 고단한 삶을 자연으로부터 답을 얻거나 치유로 연결시키는 뛰어난 통찰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혜원이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즉 어른이 되는 경계선에 있을 때 어머니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가출 한다.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혜원은 분노하지만 결국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배가 너무 고파서, 돌아왔어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가 떠나자, 혜원은 어떻게든 도시에서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고자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로 학원을 오가며 방황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에 담긴 차가운 밥에 질리고 미각을 마비시키는 길거리 음식들에 지칠 대로 지친다. 그렇게 꿈과 목표까지, 살아가는 의미까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을 시기에 최종 시험에 떨어지고 만다.


그녀는 배가 고파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자연은 그녀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맨 처음 한 일은 '요리'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던 방식을 곱씹으며 금방 수확한 야채들로 육수를 내어 국물을 만들고 밥을 짓는다. 혜원은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며 완벽한 자급자족의 삶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내고서야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어머니를 점점 이해하게 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어쩌면 이 세상에 수많은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 지를 뒤로한 채 누군가를 키워야 하고 보살펴줘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일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독립심을 지니는 순간, 더욱더 완전하고 성숙된 존재로 거듭난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 독립 선언을 한 것이다.


떠나기 전, 어머니는 딸에게 쓴 편지에서 말한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너도 나처럼 이곳에서 치유받기를

영화 '리틀 포레스트'


취업, 연애, 학업 이 모든 것을 중단한 채로 자연의 향기를 맡으며, 자연이 주는 위대함에 감사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혜원은 시골 고향집에서 상처받아 공허해진 마음을 치유받는다. 자연으로부터 재배한 재료들로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관객들 또한 무한한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될것이다. 헤원의 오랜 고향 친구인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의 등장으로 이 영화는 더욱더 영롱한 무지갯빛 색깔을 갖게 된다.


세명의 청춘들이 모여서 작은 숲을 가꾸며 살아간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자연, 향기 그리고 나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의 여유라는 것, 어쩌면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굳이 모든 것에 이유와 원인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이다. 이 영화는 큰 사건도, 큰 갈등도 없이 주인공의 여정과 삶을 요리로 표현한다.


'나'를 찾기 위해 돌아온 고향, 그렇게 그녀는 원하는 답을 찾았을까?

어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성장이 아녔을까.


'효리네 민박'과 '삼시 세끼'가 이 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된 이유를 살펴보면, 꽤 많은 사람들의 가슴 한 구석에는 작은 숲을 이루며 살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당신이 가진 갈증을 싱그러운 단비로 적셔줄 것이다.


지친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시간을 선물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였다.


글 여미

이미지 출처 네이버

yeoulhan@nate.com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 작가 자격으로 공식 시사회를 통해 관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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