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매리(鄭人買履, 정나라 사람이 신발을 사다)라는 우화가 있다. 정나라 사람이 장날에 신발을 사려고 자신의 발을 쟀다. 막상 신발가게에 도착해서 보니 발의 치수를 잰 것을 놓고 왔다. 장사에게 집에 가서 가지고 오겠다고 말하자 직접 신어보면 되지 않느냐?라고 했다는 얘기다. 발을 잰 끈은 발에 맞는 신발을 사기 위한 도구이다. 자기가 신을 사러 간다면 끈은 필요 없다. 누가 봐도 이 정나라 사람은 어리석다. 그러나 이런 정나라 사람은 곳곳에 널려있다.
수업 시작하기 전, 칠판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는 교실과 그렇지 않은 교실의 수업 태도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깨끗한 칠판과 수업 태도는 분명한 관련성이 있다. 작은 것을 미루어 큰 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 학교에 들어와 깨끗한 느낌을 받는다면 그 학교는 잘 돌아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자기 발을 잰 끈과 자기 발은 밀접한 관련성이 있지만 자기 발이 있다면 끈은 없어도 된다. 깨끗한 교실이나 학교가 좋은 학생을 만드는 것일까. 정나라 출신 교장은 청소 잘하는 학생이 공부도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자칫 청소 이후의 진정한 교육 목적은 어디로 가고, 청소만을 강조하기 쉽다. 처음엔 끼끗한 환경에서 좋은 수업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청소가 나중엔 청소 감독하지 않는 선생님 혼내기, 청소가 안 된 반 지적하기, 학생들 동원해서 청소시키기 등으로 변하면서 학교 안에서 이뤄져야 할 진정한 교육 목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청소만을 강조하는 학교가 돼버릴 수가 있다.
오늘도 교무실에서 자기 발을 쟀던 끈을 찾으러 가는 사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