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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록 Oct 30. 2022

서로라는 뮤즈

남해에서 만난 사람, 부업이 예술가 W

"예전엔 대체로  싫고 좋아하는 것은 간혹 가다 있었는데 요즘은 흐려진  같아. 이렇게 흐리멍텅한 사람이 예술을   있을까?"


W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내게 이제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르겠 다며 많은 것에 무던해졌다고 말했다. W 곡을 쓰고 부른다. 뾰족하고 선명하던 그는 이제 둥글고 희뿌연 자신이 어떤 음악을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해에 정착한지     되어가는 그와 남해로 내려온   년이  나는 안개가  듯한 몽롱한 어떤 지점을 지나고 있는  했다. 지나온 시간들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어떤 다리 같은 것을 건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겉으론 서글서글해보여도 신경이 자주 곤두서곤 했던  역시 남해에  면서 딱히 싫은 것도 엄청나게 좋은 것도 없어졌다. 평화라는 것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을  선물처럼 오는 것일까. 이제 예민하게 반응하던 시절에는 보지  했을 것들을 보고 만나   했을 사람들을 만난다.  너머엔 정말이지 새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보지 못했을  , 먹지 못했을 것들, 해보지 못했을 경험들이. 예전엔 나의 좁디 좁은 관문에 부딪혀서   들어오지도 못했던 것들이 인생으로 마구 마구 밀려 들어온다. 감정은 전처럼 다채롭지 않고, 감사함만이 때때로 찾아오는 권태와 함께 잔잔히 흐른다. 이제 우리가 해야  예술은, 표현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W '음악가와 연인들'이라는 책을 소개해주었다. 지금 우리들에게 위대한 음악가로 알려  클래식 뮤지션들이 어떤 곡을  썼는지에 대해  책이라고 했다. 그는  책을 읽고  무리 대단한 음악가도 곡을 만들  지금의 곡을 쓰는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도 뮤즈가 있었고, 감정의 동요가 있었고,  감정의 낙차를 오선지에 쏟아 부었다.


"지금 뮤즈가 있어?"

나는 물었다.

"글쎄."

"확실히 만나면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  같아.  그럴까?" "감정이 요동치니까..."


익숙한 것들을 사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눈에 익는 푸르고 온화한 풍경들, 어딘가   데쯤은 서툰 구석이 있지만 사랑스러운 사람들, 가슴을 내려 앉게 하지는 않지만 함께 하면 편안한 사람들,  다를  없는 틀에 박힌 일들을.


매순간 화려하게 피어나는 도시에서 벗어나 유유히 시간을 옮기고 있는 남해에 와서 잠시 쉬어가려고 했던 나는, 어느새 남해와 닮아가고 있었다. 매일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는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내 속도대로 자라나는 어떤 들풀 같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


  W  여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인 버킷리스트를 하나 해결했다. '바닷가에 살면서   수영을 자주 하는 .' 바로 그가 이번 여름에 이룬 버킷리스트이다.


"어릴 때 산에서 자라서 그런지 물에서 노는 것이 좋아. 못 해봐서 그런가... 바다에서 삼각 수영복 하나만 딱 입고 수영을 하다보면 자유롭다고 느껴지더라고."

"맞아. 바닷물이 살결에 닿는 느낌이  좋아. 예전에 프랑스 어느 해변에서 한국에서 가져  래쉬가드를 말고, 마트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수영해봤거든. 처음엔 엉덩이를  못가리는  유럽 수영복이 너무 부끄러웠는데 함께  프랑스인 친구가 '우리는  알몸으  태어났어.'라고 하더라고. 그때 나도 아이가   피부로 바다를 느끼면서 수영하는  쁨을 알게   같아. 엄마 뱃속에서 알몸으로 유유히 헤엄치던  느낌을 우리 모두 그리 워하지 않을까."


얼마  바다 수영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 거대한 바닷 속에 아주 작은 내가 동동 떠있는 기분이 좋다고 답했었다. 바닷물 위에 누워 배영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  나도  바다 같아서 정말 커다란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나로만 가득 찼던 마음이 먼지처럼 쪼그라들며 비로소 밖을   있게 된다.


"고흐는 정신 착란이   물감을 먹기도 했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자신의 몸에 넣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W 말했다. '빈센트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좋아해서 여러번 읽었다는 그는    보면서 예술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너무나  그리고 싶어서   마저 집어 삼켰던 고흐처럼 W 정말 자신의 음악을  해내고 싶어하는  같았다.  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 마저 그는 음악으로 담아   있겠지. 고흐의 불안한 열정이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처럼 W 하나의 스타일이  것이다.  같은 사람을 나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으니까.


책 '빈센트 반고흐 영혼의 편지'에는 고흐가 가난한 예술가였던 그를 경제적으로나 정서적 으로 도와주던 동생 테오와 나누었던 편지글이 담겨 있다. 책의 말미엔 '이제 형의 그림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전하는 테오의 편지가 있다고 한다. 오베르쉬르우아즈라는 고흐와 테오 형제가 나란히 묻힌 곳이 있는 도시에 갔었다. 고흐가 인생 말미에 정신병으로 고생하 며 그림을 그렸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풍경이 눈에 걸려 멈춰서 면 발 아래 '고흐'라는 표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돌리면 그 장소에서 고흐가 그린 그림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은색 동그란 '고흐' 표식을 밟고 올라서서 고흐처럼 풍경을 바라 보았는데 어쩐지 지독히 외로웠다.


  변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며 쪼그라들 때가 있다. 시간이라는 기회가 남아 있을 때 바 라는 이상에 다다를 수 있을지 손가락으로 세어보다 발 뒤꿈치를 위로 치켜 올리곤 손을 뻗 는다. 후회가 두렵고 시도는 더 두려웠던 날들.

엊그제 막걸리를 빚으러 다녀왔다.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밥을 고슬하게 쪄내고 넓게 펼쳐서 식혀야 했다. 25도 정도로 차갑게 식혀야 해서 밥을 이리 저리 뒤집어 가며 밥을 식 혔다.


"길을 내어 놓으면 빨리 식어요."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김을 내뿜으며 식어가는 넓게   중간에 좁은 길을 내었다. 열기가 그곳으로 흘러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인지 100도로 끓었던 밥은 금세 25도쯤으로 식었다.   끓던 W 나도 남해가 만든  길로 빠져 드렁 다른 무언가로 익어가기에  적당한 온도  식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번 해볼까, 안 되면 다른 것을 해보지뭐. 어쩌면 될 지도 모르겠지.' 하며 조금은 마음 가 볍게 시도해볼 수 있는 정도의 온도로. 더 많은 것을 툭툭 던져볼 수 있는 여유가 함께 발효 되고 있다.

"요즘 서쳐스의 Love Portion no.9 같은 음악들을 다시 들어. Bad case of loving you Califonia Dreamin' 같은 옛날 록음악들 말야. 그때의 그 퇴폐미 알지?"

W는 말했다.


나는 웃었다.


알지. 잘 알지. 그때를 추억하며 우리 또 다르게 익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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