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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r 16. 2020

이상형과 이상향

연애의 풍경. 10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를 물어볼 때 이상형을 물어본다. 나 역시 소개팅을 주선할 때 이상형을 말하라고 했다. 다만 그런 이상형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항상 달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형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형은 매우 본인 중심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이상형으로 '애교가 많은 사람' 또는 '유머 있는 사람'을 말할 수 있는데 그 앞에는 [내가 필요할 때]라는 전제가 사실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항상 애교가 많고 유머러스한 사람은 누구나 피곤해한다. 그래서 그런 이상형은 사실 '적당히 애교가 많은 사람' 또는 '적당히 유머가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게 맞는데 '적당히'라는 것도 철저히 본인 중심으로 판단되게 된다.


그런 이상형의 정수에 있는 사례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를 갖고 있기를 기대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진지할 때 진지하고 웃길 때 웃긴 사람 또는 청순가련형이면서 털털한 사람과 같은 식의 이상형이 그런 예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그 두 가지를 다 갖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균형적으로 공존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정말 그런 매력을 입체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소개시켜주기 전에 이미 주위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어떤 이들은 외적인 조건이나 객관적인 스펙을 이상형의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예쁘거나 잘 생겼다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그리고 설사 보편적으로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조건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모나 스펙, 직장, 학력만을 이상형의 조건 만으로 모든 것이 충족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따라서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따지는 조건이 전혀 중요하지 않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이상형을 만난다고 해서 본인이 더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도 만나는 상대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연애를 하면서 '이 조건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구나'라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조건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조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더라.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장점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와 잘 맞는 연인이 되리란 보장은 없다. 그리고 이상형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연애를 하면서, 혹은 결혼 후에라도 행복하기만 한 경우는 없는 듯하다.


상대의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 내가 함께 있을 때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본인이 어떤 사람과 있을 때 가장 행복한지를 잘 모른다. 그리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이상형의 조건은 본인이 스스로를 모르기 때문에 틀릴 가능성이 높고, 경험적으로 추린 이상형의 조건 역시 그 사람이 A라는 특성을 B라는 경향과 함께 있을 때는 나랑 맞지 않지만 C라는 경향과 갖고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개팅을 많이 주선할 때 이상형을 최대한 자세히 말하라고 했다. 이는 그런 사람을 소개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느낌의 사람을 좋아하고 찾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이상형을 고집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런저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일종의 '이상향'은 갖고 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누군가를 만날 때 1차적인 이성적 필터링은 있어야 그 사람과의 연애가 나쁘지 않게 끝날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상향을 갖고 그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연애에 성공하기 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방법이다.


이상형을 추구하는 사람과 이상향을 갖고 있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이상형을 찾는 사람은 딱 그 틀에 맞는 사람이 존재할 것을 믿고 그런 사람만 찾는 반면 이상향을 갖고 있을 뿐인 사람은 큰 틀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갖고 있지만 이상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그리고 이상형을 만나려는 사람은 [이런 조건을 가진 사람]을 찾지만, [이상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런 조건은 없는 사람'을 찾게 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는 이상형을 찾는 사람은 '이런 사람 아니면 안돼'를 기준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하지만 이상향을 갖고 있는 수준의 방향성을 가진 사람은 '이런 사람은 안돼'를 기준으로 놓고 나머지 조건은 열어놓고 개별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상형 또는 이상향을 따지는 것은 연애를 함에 있어서 이성의 작용과 필터링을 어느 수준까지 하고, 어느 수준에서부터 감정, 본능과 무의식의 영역에 맡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형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폭을 확실하게 좁혀서 필터링을 해서 이성의 작용을 확대하는 것이고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은 이성의 작용은 필요 최소한으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다른 영역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이상형보다는 이상향 정도를 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연애를 함에 있어서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우리가 자신도, 상대도 완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어설프게 발휘하는 이성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영역에서의 작용을 믿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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