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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r 28. 2017

스킨십, 끝까지 가야 하나?

혼전순결을 둘러싼 문제에 대하여

이상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나는 '혼전순결'을 율법으로,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고 살았다. 군대에 갈 때까지도 난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으니까. 그런 내게 군대에서 선임들이 종종 막내들이 망을 보게 하고 야동을 내무반에서 틀게 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휴가를 다녀오면 모험담처럼 여자들과의 잠자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선임들의 말을 들면 내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곧바로 생선 뒤집듯 성향을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뒤집지 못했다. 20년 넘게 살아왔던 인생이 어디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하지만 그때부터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내가 맞는 것일까? 아니면 비정상인가?


친구들이 결혼하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친구들이 생각보다 일찍 결혼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물론 사고를 쳐서 결혼한 이들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 안에 있는 욕구, 20년 넘게 받은 교육, 군대에서의 경험, 남자들과 술자리에서의 대화들이 어우러지며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애를 볼 때마다 저 00만 아니었어도 저 0이랑 결혼 안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어 미치겠다'


사고를 쳐서 결혼한 이들이 술을 진탕 마시고 종종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아기가 생겨서 결혼한 이들 중에는 그 말에 동의를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은 상태, 가정을 꾸릴 준비도 안된 상태. 아니 두 가지가 어떤 의미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20대 초중반에 아이가 생겨서 가정을 꾸린 이들의 결혼 생활이 마냥 행복해 보이지 않은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물론 그들의 결혼생활이 항상, 모든 면에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혼전순결'이라는 말

그 이후로 스킨십에 대해서 내 나름의 기준이 섰지만 난 여전히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표현은 잠자리를 갖는 것이 사람이 더렵혀진다는 것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결혼 전과 후에 같은 행위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야만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 행위는 영혼의 소통창구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건 나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능하다면 스킨십은 두 사람이 아이가 생기면 가정을 함께 꾸리겠다는 정도의 신뢰가 있을 때 끝까지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물리적으로 결혼식장을 들어갔다 나왔느냐, 혼인신고를 했는지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잠자리를 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언제든 잉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야 본인들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만약 새로운 생명체가 생긴다면 그 아이는 무슨 죄가 있어서 온전히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환경에 태어나야 한단 말인가...


잠자리를 둘러싼 논쟁

이런 말에 대해서 내가 가장 많이 받는 피드백은 피임, 여성의 생리주기, 낙태에 대한 얘기다. 세 가지 주장 중 '낙태를 하는 시점의 아기는 세포일 뿐이지 생명체가 아니다'라는 것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기에 일단 넘어가더라도 피임과 여성의 생리주기에 대해서는 설명이 조금 필요할 듯하다. 학창 시절 생물 과목을 좋아하지도 않았던 이들이 갑자기 언제부터 생명을 생명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철학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 것인지...


이러한 대화에서 피임에 대해서 가장 많이 하는 주장은 '요즘 피임기구가 잘 나온다'는 것인데 나는 그에 대하여 '그렇게 확실하게 피임기구를 착용할 정도로만 흥분될 수 있다면 아예 거기까지 가지 않는 것도 자제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남자들의 욕구가 항상 그렇게 절제되고 자제되진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남자인 나도 알기에... 피임기구의 성능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고 말이다.


이와 같은 얘기를 하면 남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먹는 피임약' 얘기를 꺼낸다. 망설임 없이. 그런데 어디까지나 내가 들은 얘기와 찾아본 바에 의하면 그 경구 피임약들은 여성의 신체에 도움이 될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독이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실제로 사후 피임약 같은 경우 여성들이 먹은 이후 신체적으로 짧아도 하루 정도는 컨디션이 극도로 저하된다고 한다. 굳이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그런 상태로 몰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항변은 여성의 생리주기를 맞추면 된다는 것인데, 죄송하지만 여성의 생리주기가 완벽하게 규칙적이지는 않다.


스킨십은 어디까지 해야 하나?

'혼전순결'이 절대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가능성'과 '확률'의 문제에 있어서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 주관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삶의 방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스킨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스킨십을 통해서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고, 관계를 깊게 형성해 나갈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그래서 사실 굳이 그 '정도'에 대해서 집착할 필요는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두 사람이 모두 스킨십의 '정도'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오고, 두 사람 모두 스킨십을 사랑받고 존중받는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다만 남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최소한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성관계에 있어서 여자들의 첫 경험에 대한 기억이 아름다운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 기억이 혐오스럽거나 소스라치게 싫지는 않을 수 있어도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부부라는 울타리 밖에서 이뤄진 첫 경험 이후에 일정기간 동안에는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필연적으로 그녀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무엇이든지 처음 하는 것은 두려움을 수반하는데, 만약,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러면 본인 인생은 어떻게 되는지, 생기면 지워야 하는 것인지,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그녀들을 어떻게 볼지, 그것을 본인이 견딜 수는 있을지, 그런 생각과 고민이 첫 경험 이후에, 아니 그것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는 그 두려움이나 걱정들이 그녀들을 어느 정도는 사로잡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잠자리를 해보고 맞춰봐야 한다는 여사친이 지금도 항상 사후피임약을 집에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런 두려움이 사라질 정도로 자연스러워지는지 마저도 남자인 내가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얘기일 것이다.


10대들의 스킨십

이처럼 스킨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마음이지만 개인적으로 10대들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고 싶다. 10대들에게 다른 스킨십은 몰라도 끝까지는 가지 말라고 강하게 조언하고 싶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우리나라의 인프라에서는 혹시나 아기가 생기면 그 자체로 본인이 가는 길 자체에 제한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기가 있는 미혼여성, 아니 기혼여성이라고 해도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은 잘못된 것이고, 미혼모의 아기는 남자도 같이 만든 것인데 여자들만 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 잘못되었고 폭력적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사회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많은 측면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10대 때는 선을 분명히 해 놓는 것이 본인을 위한 길이다.


스킨십과 사랑

스킨십은 연인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특별하며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좋은 것은 더 아끼는 것처럼, 스킨십도 그것이 아름다운 만큼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스킨십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행위다. 그렇다면 내 스킨십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그것도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둘이 모두 그 과정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스킨십의 '정도'에 대한 문제는 두 사람에게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둘 모두가 만족하고 불편하지 않아야 한단 것이다.


불편하다면 불편하다고 말하자. 그것을 수용해 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헤어지는 것이 낫다. 세상은 넓고 생각보다 이성은 많다.


http://m.podbbang.com/audiobook/channel?id=177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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