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15화
이 시리즈를 14화까지 쓰면서 꽤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내가 힘들었을 때 들었던 말과 그때의 상황들이 계속 떠올라서. 지금까지 이 시리즈의 글들은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눈물로 써내야 했다. 이제는 내가 생각하는 위로의 말들로 이어갈 생각이니, 그 과정은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계속 시험에 떨어지고, 인생의 기나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잘 안돼도 괜찮아"였다. 지금 내가 목표로 하는 게,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잡히지 않아도, 내가 성공하지 않아도,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 그 한 마디가 엄청나게 간절했다. 그게 안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안된다고 해서 내가 나쁘거나 모자란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고, 그냥 너는 너고, 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게 제일 중요한 거리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가족은 나보다 내가 떨어진 것을 더 힘들어했다. 아버지께서 회사를 그만두시고, 집에 수입이 줄어들면서부터는 심지어 내가 시험을 준비하느라고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다시 한번 준비하겠다는 말을 꺼낼 때면 그건 마치 우리 가족 전체를 터널 속으로 밀어 넣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런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독립을 해야 했다.
친구들도 '괜찮아'란 말을 하지 못했다. 차라리 가볍게, 작은 실패를 했다면 관성적으로 의례 그렇게 말하듯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했겠지만, 힘들게 스스로를 쥐어짜서 오래 준비한 시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받지 못하는 내게 친구들도 괜찮다고 말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다. 가족은 나와 가장 가깝기 때문에 나의 힘듬과 고통은 곧 가족의 힘듬과 고통이 되었고, 친구들은 본인들 앞가림을 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 내 삶이 꼬여가는 상황에 대해 쉽사리 '괜찮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가족들에게는 진심 어린 '괜찮다'는 말을 간절히 듣고 싶었는데 그 말을 하기가 쉽진 않았을 것이고, 친구들은 내게 '괜찮다'는 말을 했어도 내가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란 말은 작지 않은 힘을 갖는다. 이는 그 말은 그 사람의 현실이, 마음이, 상황이, 스펙이 어떤지와 무관하게 말 그대로 '넌 괜찮아'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말엔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위로가, 위안이 된다.
물론, 이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화를 돋구는 방식으로 쓰일 수도 있다. '뭘 그런 걸 갖고 그래, 괜찮아'라는 식으로 판단이 붙은 말이 붙으면 '괜찮아'란 말도 위로가 되기는커녕 인간관계를 끊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누군가가 토닥여주면서 괜찮다고, 힘들겠지만, 지금은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지금 힘들면 울어도 된다고, 마음껏 힘들어해도 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해주는 말은,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된다. 이는 그 말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나도 다른 사람과 같다고, 그리고 지금 날 힘들게 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란 마음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그런 게 괜찮냐고, 실패한 게 어떻게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내가 노력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이 잘 안됐는데 그게 어떻게 괜찮은가 싶었었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럽고, 화도 냈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깨달았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괜찮지 않은 건 없다고. 우린 심지어 주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도 짧으면 몇 주, 길어도 몇 달 후에는 일상을 살아내지 않는가?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 그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다가도 배가 고파서 끼니를 챙겨 먹게 되지 않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것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고, 큰일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우리 삶이 소멸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실감도 결국은 이겨내고 버텨낼 수 있게 된다면, 세상에 괜찮아지지 못할 일은 없다. 인생이란 게 참으로 묘해서 때로는 내 인생의 중대한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를 다른 길로, 더 좋고 내게 더 맞는 길로 인도해 주기도 하더라. 그리고 우리가 '저것만 가지면 행복해질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게 막상 손에 쥐어보면 그런 행복과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오히려 그로 인해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더라.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에 실패했다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힘들어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실패했다면, 아무리 작은 실패라 하더라도 실패를 했다면 그로 인해 힘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힘들지 않아 보이는 사람은 그 힘듬을 버티고 있거나 그게 무의식 중에 안에 축적되고 있을 뿐이다. 우린 힘들어도 된다. 다만, 그로 인해 완전히 무엇인가의 손을 놔서는 안된단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그 실패로 인해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 결국은 괜찮아질 수 있다.
괜찮다는 말이 너무나도 간절할 때, 누가 이런 말을 지금 내게 해주면 그 말이 내 마음에 닿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같은 아픔과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 말해주는 게 아니면, '괜찮아'란 말에 그렇게 공감이 되지 않을 것 같더라. 주식으로 돈을 엄청나게 날렸는데 이재용 회장이나 수 십억 대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 옆에 와서 '괜찮아'라고 말해준다면 그게 위로가 될까? 안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지금 괜찮은 사람이 괜찮다고 한다면, 그 말은 위로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
그걸 깨달은 이후에 내가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감사했다. 이젠 내가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괜찮다'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나와 비슷한 아픔과 고통,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나의 경험과 당시의 마음,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났던 변화들을 나누며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그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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