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16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친한 동생들이 한 때 '눈물의 여왕'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런데 개인적으로 [눈물의 여왕]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그 표현이 눈물은 여자가 많이 흘린단 선입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남자인 내게 '여왕'이란 표현을 붙인단 건 결국은 눈물을 자주 흘리는 게 여자 같다는, 눈물은 여자들이나 흘리는 것이란 선입견이 무의식 중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린 시절을 그런 선입견 속에서 살아왔다. 툭하면 우는, 자주 눈물을 흘리는 내게 부모님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우는 거다. 태어났을 때, 부모가 죽었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라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삐딱했던 나는 '태어나고 나서 아기가 한 번도 울지 않지 않고, 부모는 둘이니까 두 번은 울 수 있고,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더 이상은 울지 말라는 건가?'라며 속으로 짜증을 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눈물은 곧 약한 것이라고, 그리고 힘들면 안 된다는 선입견을 언젠가부터 갖고 있다. 산업화 이전, 힘으로 서열을 가리던 시기에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눈물을 보이고, 빈틈을 보이는 순간 상대가 치고 들어올 것이고 그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됐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자연 상태에서 물리적인 힘으로 서열을 가리던 게 도대체 언제 적 얘기인가? 그런 기준이라면 무조건 헬창들이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겠지...
내 일이나 상황으로 인해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는 건 단순히 감정표현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곪아있는 힘듬을 배출해 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군가에게 분노하면 표현하듯이, 그렇게 표현하고 나면 안정되듯이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눈물을 흘려 감정을 흘려보냄으로써 내면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우는 건, 눈물을 흘리는 건 우리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실제로 눈물을 구성하는 성분 중에는 카테콜라민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들어있는데, 눈물을 통해 이 호르몬을 배출하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몸이 대신 아프다는 것을 여러 연구들이 밝혀낸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만 울어'라거나 '울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얘기는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강할 것을 강요받는 남자들이 더 자주 듣긴 하지만, 여자들도 그런 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그런 말은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상대가 울 때 상대가 우는 것이 자신이 나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거나, 두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될 때 사용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런 이유로 그만 울라고 하는 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만 울어'라거나 '울지 마'라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어린아이에게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울면 '그만 울어!'라면서 강제로 울음부터 그치게 만들려고 하는데, 사실은 그보다 우는 아이에게 '왜 우는 거야? 뭐가 힘들어? 뭐 때문에 우는 거야?'라고 물으면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울음을 그치고 자신을 표현하도록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 두 표현은 꽤나 큰 차이가 있는데, 이는 울지 말라는 얘기는 '너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뭘 잘했다고 지금 울어.'라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깔려있는 반면 아이에게 왜 우는지 묻는 것은 아이에게 '일단 네 입장을 얘기해 봐'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강압적으로 우는 것을 멈추라고 하는 것과, 네 얘기를 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는 호르몬의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 눈물이 줄어든다. 이는 사회적인 영향도 있고, 빡빡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돌볼 여유가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건 그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든 정말 감정적으로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자신이 힘든 것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 사람이 덜 힘들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려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럴 때 '마음껏 울어도 돼'라는 말 한마디는 '내 앞에서 얼마든지 약해지고, 약점을 보여도 돼. 그리고 네 감정이 우선이야'라는 의미를 갖는다. 내 약점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해주는 사람에겐 항상 고마움을 느끼곤 했다. 나를 이해해주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주는 느낌을 받아서.
이성적인 얘기는, 조언은 눈물이 멎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이성과 헤어지거나 삶의 큰 실패를 했어도 밥도 입에 대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 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도 일주일 정도다. 그보다 더 길게 힘든 적이 있다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건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껏 힘들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가 힘들어도 된다고, 힘들어도 괜찮은 거라고 받아들이고 눈물을 흘리고 마음껏 힘들어하고 나면, 힘듬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아도 이성으로라도 버틸 수 있게 되기까지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그 아픔과 빈자리가 쉽게 가시지는 않지만 마음껏, 힘들어하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힘듬을 표현하고 나면 일주일 정도 후에는 조금씩 주위를 챙기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돼도 그러한데, 그보다 덜한 일에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울어도 된다고, 마음껏 울라고 말 한마디 해주고 그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건 돈이 드는 것도, 본인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공감하지 못해도 상대가 정말 힘들단 것을 인정해주고 그 옆에서 있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못하고,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그만 울라고, 울지 말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말인가? 눈물이 흘리거나 힘들 때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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