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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09. 2024

프롤로그

'오탈자 하나 쯤은 있어도 괜찮아'

말과 글로 밥벌이를 한다. 그런데 오탈자를 많이 내는 편이다. 한 땀, 한 땀, 한 문장, 한 문장 타자기를 치듯 글을 쓰는 스타일이라면 오탈자가 없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생각과 고민을 하다 정리가 되면 문장을 우다다다 써 나가는 편이라 그렇다.


그게 내 인생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글에 오탈자가 보이면 성의가 없는 것을 넘어 기본이 안된 것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있었고, 처음에 난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용인데 왜 다들 오탈자 하나로 사람 자체를 평가하고 판단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시선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더라. 맞춤법은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맞춤법을 틀렸단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글을 한 땀, 한 땀 고민하고 신경 쓰면서 쓰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단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학문적인 글에서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 적어도 수 개, 많으면 수 십 가지의 생각, 고민과 자료들을 참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탈자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 글을 쓰는데 임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문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지를 생각해 보면 그 문화가 조금 더 잘 이해가 될 수 있다. 컴퓨터가 발달하기 전, 타자기로 글을 쓸 때 사람들은 한 글자, 한 글자에 심혈을 기울이며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탈자가 하나 나오면 당시에는 그 종이에 인쇄된 글은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생긴 오탈자와 '성의 없음'의 상관관계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탈자에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린 인쇄하기 전까지는 컴퓨터로 언제든지 글을 수정할 수 있는 시대에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자기를 쳐서 글을 쓰던 시절보다 최근에 나오는 책들은 훨씬 두껍고, 많은 정보를 다루고 있다. 그렇게 두꺼운 책은 여러 명이 수 차례에 걸쳐서 오탈자를 검수해도 여전히 오탈자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 박사학위 논문도, 대중서로 나온 책도 마찬가지였다.


오탈자가 한 개, 아니 몇 개 있다고 해도 그 글이나 책의 내용이 가치가 있다면 그 책을 쓴 사람은 그만큼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에서 실수나 실패를 한 번, 아니 몇 번 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해서도 안된다. 이는 스포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처럼, 우리 인생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LG트윈스의 오지환 선수가 치명적인 실책을 해서 경기가 넘어갈 뻔했지만 막판에 홈런으로 팀을 구해냈듯이, 축구에서 자책골을 넣은 선수가 역전골을 넣어서 팀을 구할 때가 있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이 시리즈는 많은 고민 끝에 연재하기로 결심을 하게 됐다. 브런치북에서 특별상을 받아 출판이 된 '돈벌이란 무엇인가?'란 책이 내가 30대 내내 실패를 하며 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면, 이 시리즈는 그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접 겪은 상황과 경험한 마음,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일 수 있는 학교의 로스쿨에 진학했지만, 그 뒤로 거의 10년 간 내가 목표로 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한 이야기.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내가 살고 있는 모습과 하고 있는 일이 부끄러워서 주위 사람들에게 숨기는 현실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이 시리즈에 담고자 한다.


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고 망설여졌던 부분은 '내가 버틸 수 있을까?'였다. 나의 실패담을 사람들 앞에 내놨을 때 어떤 비아냥거림과 조롱이 날아올 수 있는지를 몇 년 전에 경험했기에 다시 그런 상황에 나를 내놔도 괜찮을지를 잘 모르겠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고민 끝에 이 시리즈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30대에 방구석에서 우울해하며 어떤 것도 새로 시작하지 못하겠는 상태였던 나와 닮은 모습으로 오늘날을 버티는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글, 시리즈 하나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겠나. 누군가 내 글이나 시리즈를 읽고 영향을 받는다면, 그건 그만큼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밭이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 시리즈에 담긴 내 생각과 경험이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바탕의 작은 부분이라도 구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이 시리즈를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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