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이상주의자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낙관적인 편이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잘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기대하면서 일을 벌인다.
그런 이상주의자인 것의 가장 큰 단점이자 어려움은 자신이 에너지를 쏟은 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성공으로 여기거나 그 결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는데 있다.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잘했다고 하는데,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아쉬움이 있으면 이상주의자들은 만족을 할 줄 모른다. 그렇다 보니 이상주의자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타협을 하는 법도 잘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다니고,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무려 16-7년 전에도 완전히 칼퇴까지는 아니어도 7시 전후에는 퇴근을 할 수 있었고, 기업문화도 요즘에 동기들이 모여서 '우리나라 회사들 중에는 기업문화가 제일 좋은 편이지'라고 인정할 정도로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난 만족하지 못했다. 홍보실에서 일하면서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너무 좋은 것들만 조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좋지 않은 것은 숨기는 식으로 일하며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란 생각에 현타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타협하지 않고, 로스쿨에 합격하자마자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데 역시나 이상주의자인 나는 로스쿨에 진학해서도 갈등을 하게 되더라. 대형로펌에 취업을 하면 돈을 많이 벌긴 하지만 결국 나의 신념과 가치와는 무관하게 의뢰인의 승리와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삶이 행복할지 여부가 자신이 없었던 반면 또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현실적인 부분을 포기하면서 일하는 인권변호사와 같은 삶은 살 자신이 없었다. 이미 또래들 중에 높은 연봉을 받았다 보니 현실을 간과하지는 못하게 되더라.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생각이 이렇듯 너무 많았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나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내 가치와 신념에 맞는, 보람과 의미가 느껴지는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이상의 수입은 올리고 싶었는데 그건 쉽지 않아 보이니 '이 길이 맞나?'란 회의감이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졸업 후 5년 이내에만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인해 나는 시험을 계속 봐야만 했다. 혹시 모르니까, 시험을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타협할 줄 모르고, 머리로 생각만 많았던 나는 내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도달해서야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타협도 남들이 생각하거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래디컬 한 타협이었다. 그래도 알아주는 로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놓고도 내가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나는 당연히 학위로 뭔가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 또 내 안의 이상주의자가 나오더라. 국책연구원으로 가면 내가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없다는 게 보이는데, 또 대학으로 간다고 해도 법 관련 전공들은 대학원이 대부분 죽은 상태여서 교수들이 행정적인 일을 다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연구와 가르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보니 또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이 많아지니 어디에도 집중을 못하게 되는데, 먹고는 살아야 하다 보니 나는 내게 주어지는 일들을 일단은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드라마에 작가팀에서 법률 관련 리서치를 하고 사건을 짜는 일을 하게 된 것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도와주던 지인의 마케팅 대행사에 잠시 정직원으로 들어갔던 것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그게 타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으니 먹고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단 생각에 주어지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결국 타협이었더라. 다른 박사들은 본인이 그래도 공부한 게 있는데 어떻게 다른 일을 하냐면서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어떻게든지 학교로 가려는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반면에 나는 내가 박사학위를 받았어도 그건 지나간 일이니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는 거이라고 생각했고, 일단은 현실적으로 내가 필요한 일을 선택하면서 살았다.
어르신들은, 심지어 내 또래들도 요즘의 10-20대, 어쩌면 30대들까지도 보면서 '눈만 높고 노력은 하지 않는다'라고들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항상 조용히 있는 편인데, 그건 나는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못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리가 아니면 가고 싶지 않은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이해하는 건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단순히 논만 높고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손만 뻗으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내가 목표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제 포기한단 말인가 싶은 마음도 있으며,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런 생각, 고민과 번뇌가 그들을 너무 괴롭혀서 움직여지지 않는 영향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인생에서 어느 순간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타협을 해야만 한다. '근육질인데 마른 남자요'나 '귀엽고 섹시한 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매우, 극히 드물기 때문에 타협을 하지 않으면 사랑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생에서도 어느 순간엔가는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내게 돈을 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면서 그들에게 나를 맞춰야 하고,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위해 살고 싶다면 금전적인 보상은 일정 부분 포기해야만 한다. 아주, 매우, 드물게 지누션의 션처럼 돈과 가치를 다 잡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유니콘과 같은 존재다. 아니, 그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타협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올해 하반기에 일을 줄였다. 들어가 있던 드라마에서도 나오기로 해서 이 업계에 발을 들인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어떤 작품에도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이고, 강의도 한 학교는 기간이 끝나서 하지 않게 되어 올해 하반기는 상반기 수입의 1/2도 되지 않을 듯하다. 이 역시 내게는 '타협'이었다. 이제는 내 글을 쓰고, 내 일에 집중을 해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고 지금 당장의 금전적 보상 때문에 일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올해 하반기는 긴축재정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어'라는 식의 세뇌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한계를 갖기에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갖고 싶은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엔가는 우리가 추구하는 여러 가지 가치나 목표 중에 무엇을 더 우선시할지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을 함으로써 다른 것들을 포기하면서 타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고, 우리가 원하는 건 다른 사람들도 원하다 보니 누구도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대까지는 이상주의자이고 낙관적인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면서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기면서 생물학적으로 노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면 우린 포기하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포기한 것과 타협한 것을 돌아보지 않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테니까. 또 그런 후회가 남지 않는 타협과 포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20대까지는 이상주의자이자 낙관론자로 살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포기와 타협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말 치열하게 살아봐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잘 포기하고 타협하면서 집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30-40대에는 집중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