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내과 의사면 모두 초음파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레지던트 트레이닝을 받을 때 초음파 정규 커리큘럼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지던트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교수님들은 가르쳐주고 싶어 하지만,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그 시간에 5분이라도 더 자두고 싶기 때문이다.
어느 날, 떡진 머리를 하고 ICU를 배회할 때였다. 멀리서 심장내과 교수님께서 초음파를 하고 계셨다. 힘차게 뛰고 있는 환자의 심장과 함께 여러 가지 도플러 신호들이 보였다. 그런 신호들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져 보였다. 가만히 교수님께서 술기 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교수님께서는 그런 내가 기특했는지 직접 해보게끔 해주셨다. 보기에는 쉬워 보였던 초음파는 너무나 어려웠고, 원하는 이미지는커녕 심장이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처음으로 초음파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후, 여러 가지 학회에 방문해서 핸즈온(직접 모의 환자를 가지고 술기를 연마하는 것)에도 참석하고, 동영상 강의도 여러 개 들어보았다.
초음파 실력이 본격적으로 늘었던 것은 군의관 때였다. 함정근무를 끝내고 운이 좋게도 군 병원 군의관에 배치되어 여러 케이스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숨이 차다고 왔던 젊은 병사였는데, 혹시 몰라 시행한 초음파에서 ‘심실중격 결손’이라는 선천 심질환이 있었다. 병사 및 부모님께 설명드리고 민간의 심장내과 진료를 보게 설명을 드렸다. 그때 초음파를 배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소화기 내과 의사로서 내시경을 전담으로 하고 있지만, 열심히 초음파도 하고 있다. 예전의 대선배님들은 청진기 하나로 희미하게 들리는 심잡음도 잘 잡아내시고 폐렴도 잡아 내셨다는데, 요새 시대의 청진기는 점점 초음파로 대체되는 추세인 거 같다. 최근에 본 초음파 중에서 가장 작은 모델은.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면서 스마트 폰과 연결해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해상도 문제 및 법적 문제만 해결하면 꽤 좋아 보였다. 가까운 미래에 주머니에 청진기보다 가벼운 초음파를 넣고 다니면서 진료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10년 전의 스마트 폰과 지금의 스마트 폰이 생긴 건 비슷하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듯이, 의료 환경도 비슷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차팅과 오더는 종이로 오갔지만, 지금은 컴퓨터 안에 모든 정보들이 다 있다. 앞으로 10년은 더욱더 어마어마한 변화가 몰려올 것이다. 그것이 기대도 되지만,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다. 내가 알던 나이 많은 영상의학과 선생님 한 분은 MRI를 볼 줄 모른다. 레지던트 트레이닝 당시 MRI라는 기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MRI를 볼 줄 모르는 것은 영상의학과 의사에게는 큰 결점이 된다. 내과도 마찬가지이다. 의료분야는 트렌드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지만, 항상 새로 나온 약이라든지 장비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꼭 자신의 전문분야와 직접적인 관련이 되지 않아도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스피노자
전문성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때론 나의 시야를 편협하게 하고 좁게 하기도 한다. 나는 IT기기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애플 워치에 산소포화도 기능과 심전도 기록은 놀랍기만 하다. 아직은 완벽히 의료용으로 이용하기는 한계가 있지만,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고 10년 뒤에 의료환경은 지금과 매우 다를 것이다. 지금은 나의 전문성과 관련이 없어 보일지라도 눈과 귀를 열어두고 배우려고 하여야 한다.
사실 다음 주 일요일에 심초음파 인증의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시험 자체가 3년이나 미뤄져 버려서 이제야 시험을 보러 간다. 막상 모든 게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시험 족보를 리뷰해보고 합격 수기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다.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