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털 관리
처음 지금 병원에 취직했을 때, 병원 이사장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정형외과 의사로서 50년 넘게 일하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 때 많은 동료들이 있었는데 결국 남은 건 나 하나뿐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거더라. 제풀에 나가떨어지지만 않으면 언제든 기회는 온다”
그냥 식사자리에서 가볍게 하신 이야기였는데, 나는 뭔가 크게 와닿았다. 20대 때 나는 자기 연민과 극심한 감정기복으로 힘들어 했다. 사실 지금도 그 감정의 파도는 높낮이만 조금 낮아졌지 여전하다. 의사일만 그런 게 아니겠지만, 삶의 난이도는 가면 갈수록 높아진다.
인생은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딱 맞다.
네이버 영수증 리뷰에 나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가 올라온 적이 있다. 위내시경 내원하신 중년 남자분이었는데 처음부터 비용에 대해 크고 작은 시비를 하셨고, 병원 시설에 대해 트집을 잡았다. 나중에는 조직검사 결과를 전화상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청을 하셨는데, 개인정보 보호상 할 수없다 설명드렸더니 콜센터 직원에게도 폭언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런 환자분 한 명을 만날 때면 자괴감이 밀려온다. 아무리 나의 의도가 순수했음을 설명해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들이 원하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를 좋아하고 믿어주시는 환자분들에 대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한 분의 환자분은 악플을 달았지만, 나머지 100분은 나를 지지해주고 계시다 정신무장을 해본다. 요새 나는 행복은 어떤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좋게 말하면 정신승리, 나쁘게 말하면 자기 합리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무엇.
5년 전인가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전, 해운대에서 열리던 성시경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성시경은 노래도 잘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유머감각이 있었다.
그가 ‘희재’라는 노래를 열창하고 나직이 말했다.
“화장실 두분 가셨네요. 노래 다 듣고 가시지”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저렇게 슬픈 노래를 부르고 나서 화장실 간 사람 이야기라니.
사람이 막 웃었다. 그도 물론 웃으라고 한 이야기일 테지만, 왠지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 것 같아 대놓지 웃지 못했다.
성시경은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수많은 명곡을 세상에 남겼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그의 노래에 빠져서 열심히 감상하는 998명의 관중들보다 중간에 객석을 떠난 2명이 더 커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나도 매일 같이 그러니까.
지인 중 한 분은 매일 아침마다 스윙스의 <나는 자기 암시>라는 곡을 듣는다고 하는데, 가사가 참 재밌다.
나는 엄청난 그릇을 가진 사람이야
나는 무엇이든 해내
나의 집중력은 놀라워
나는 조 단위를 버는 사람이야
나는 용감해
나는 배짱이 두둑해
나는 쩔어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어
나는 앞만 보고 달려 나 자체가 기적이야
나는 자신감이 무한해
나는 원하는 건 다 가져
나는 천재야
나는 습득력이 남달라
나는 위대해
(후략)
-스윙스, 나는 자기 암시
https://www.youtube.com/watch?v=AFbwbWuBzK0&t=52s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는 진심이 담긴 그의 랩을 들으면 처음에는 큭큭대며 웃다가 진지하게 경청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몰래 듣고 있다. 정말 도움이 된다. 신기하게도
자존감을 지키기 힘든 세상이다. 다들 힘들고 날이 서있다. 조금 서로 양보해주면 좋을 텐데 여유 부리면 뒤쳐질까 봐, 침묵하면 손해 볼까 봐. 반칙하고 먼저 큰소리친다. 나도 마찬가지 상황이니까 이해한다. 나 하나라도 큰소리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어찌 됐든 끝까지 살아남고 버티자.
좋을 날이 있을 거다.
나는 ‘조 단위를 벌 사람’ , 곧 있으면 ’ 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