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1화
분명 보았다. 거울이 움직였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동트기 전 아침은 살을 애일 듯이 차갑다. 이불을 박차고 나온 찰나의 몇 분, 늦겨울 한복판에 내던져진 알몸이 된다. 사시나무처럼 파들거리며 화장실 거울 앞에 선다. 저편의 나도 이편의 나처럼 몸을 으스스 떨며 손을 비빈다. 수돗물을 켠다. 손을 대기 싫을 정도로 시린 온도가 얼룩진 세라믹을 타고 흐른다. 칫솔을 집어 든다. 솨아아. 쏟아지는 물에 칫솔을 밀어 넣는다. 칫솔이 나 대신 아침의 뭇매를 맞는다. 곧 나의 입 안으로 들어가 구역질 나는 냄새도 대신 맡을 것이다.
그렇게 이를 닦는다. 멍한 눈으로 손을 앞뒤로 움직이며 아침의 안개를 머릿속에서 밀어낸다. 아침 안개에는 몽환적인 신비로움과 불유쾌한 게으름이 동시에 배어 있다. 같은 장소와 시간에서 미적거리고 싶다는 바람과 그 마음을 통째로 걷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미 칫솔을 입에 물었으니 갈등은 곧 허무하게 끝날 것이다.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거품을 뱉으며, 내면의 요란함을 매듭짓는다.
아침에 이를 닦는 건 그래서 좋다. 양치는 치아의 건강을 위해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 아침마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내면의 전투력을 잠재우기에도 제격이다. 또 한 번 시작된 하루와 어떻게든 싸워 볼 요량으로 꿈틀대는, 반항심 충만한 또 다른 나를 해치워버리기에는 양치만 한 것이 없다.
입을 부시고 거울을 본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마주한 거울이다. 거울 속 나는 여느 때처럼 초췌하다. 코를 훌쩍인다. 한 차례 휘몰아친 아침 한파의 부작용이다. 코를 킁킁대며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한다. 보잘것없는 녀석. 생각하며 실없는 미소를 짓는다.
적어도 난 그랬다. 난 웃고 있었다.
하지만 거울 속 나에게는 표정 변화가 없다. 그가 침을 삼킨다. 뒤따라 나도 침을 삼킨다. 우리의 행동에 시차가 발생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울과 나 사이에는 어떠한 간격도 있을 수 없다.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긴다. 이번에는 상대도 나와 같이 움직인다. 순간적인 착각일까. 아니면 잠깐의 신기루였을까.
생각을 멈춘다. 의도적으로 중지한다. 물을 틀어버린다. 얼굴을 씻기 위함이다. 눈을 감는다. 비누 거품을 평소보다 더 많이 낸다.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때까지 얼굴을 벅벅 문지른다. 거품을 씻어내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 일지만, 두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얼굴에 물을 흩뿌린다. 눈주름 사이로 물방울이 고인다. 물에 젖은 눈으로 수건을 찾아 더듬거린다.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대강 닦는다. 곧바로 화장실을 빠져나가려 하지만, 습관은 다짐보다 무섭다.
다시 거울 앞이다. 파리한 얼굴로 또 다른 나를 마주한다. 자꾸만 그가 의심스럽다. 내가 내가 아닌 듯 수상하다. 거울 속의 그는 본체에서 외따로 떨어진 부속품처럼 호젓하다. 그에게 가만히 다가간다. 어깨를 앞으로 기울여 목을 내민다. 턱을 들어 인사한다. 마치 그의 아침은 어땠는지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본다. 거울 속 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모습을. 두 눈동자가 순식간에 선뜩선뜩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다급한 경고음. 그는 곧 두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주저앉는다. 힘없이 뒤로 눕는다. 그대로 고꾸라지고 만다.
이로써 모든 게 분명해졌다. 나는 보았다. 거울이 움직였다. 분명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건 꿈결의 허상이 될 수 없다. 거울 속 그와 달리, 나는 여전히 이렇게 두 다리로 버티며 서 있지 않은가.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