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2화
으아아아아아악!
거울이 깨어났다. 깨자마자 발작한다. 벌써 몇 분 째 저 지랄 중이다.
시끄러워 미치겠다.
공포에 가득 찬 나를 보는 건 퍽 괴롭다. 무언가에 압도당한 나의 모습은 끔찍하리만치 추하다. 모든 근육에 날을 세우며 두려움에 휘감긴 그를 앞에 두고서, 나는 공포를 표현해야 한다는 의지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는 내가 정당히 느껴야 할 감정까지도 습자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다만 서 있다. 아무 반응도,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저 인간의 사이렌이 지치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구급차라도 불러야 할까. 이편에서 119를 부르면 구조대원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 저편으로 넘어갈 수는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거울 이편에 서서 저편의 내가 숨을 헐떡이는 모습만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 결국 아무도 그를 돕지 못해 이 세상에 나만 홀로 남게 된다면. 그렇게 거울에 비친 상을 상실한 인간이 되어버린다면.
난 그 현실을 견딜 수 있을까.
모골이 송연해지며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바싹 마른 땀이다. 피부에 달라붙어 엉금엉금 기어가는, 가루 같은 땀. 온몸이 경직된 채로 그를 본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갖가지 생각을 끄집어낸다.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순간, 고래고래 악을 쓰던 그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로 달려온다. 순식간에 날아와 거울에 이마를 치받는다. 시퍼런 눈으로 사납게 노려본다. 뒤로 한걸음 주춤 물러난다. 호흡이 가빠온다. 이제 내가 사이렌을 울릴 차례인가.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감히 내 인생에 침범해 들어와?”
거울에 바싹 붙어 그르렁거리던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화장실 밖으로 달려 나간다. 다급한 발걸음이다.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되돌아올 것이다. 엉덩이가 휘청이는 모양새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묘수가 생각난 것이다. 틀림없이.
그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들어온다. 둥글고 납작한 초록색 물체. 케케묵은 청테이프다. 찌익. 찌이익. 찌이이이이이이익. 그가 청테이프를 풀어 거울 위편부터 사선으로 붙여 내려간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묻고 싶지만 참는다.
거울 위로 초록이 차지하는 비율이 빠르게 늘어난다. 그는 내게 겁을 먹은 만큼 속력을 낸다. 질척거리는 접착제를 유리에 펴 바르고는 주욱 찢는다. 찌익, 찌이익. 신경질적인 테이프 소리가 귓가를 긁는다. 변기와 세면대를 밟고 끙끙 올라서더니 세로로 또 한 번 주욱 테이프를 길게 늘어트린다. 거울 틈으로 눈이 마주치자 ‘어쩌라고’하는 투로 표정을 번득이며 휘갈긴다. 그와 맞부딪쳤던 눈동자를 반대편으로 돌린다.
그렇게 옮겨간 시선, 그의 뒤편으로 누워있는 망치가 보인다. 화장실 입구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묵직한 철 덩어리. 대체 저걸로 무얼 하려던 걸까.
속도를 내던 테이프 소리가 급작스레 멎는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본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에라이. 겁은 많으면서 눈치는 빠른 인간.
그는 내가 망치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그가 내가 망치를 보았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나를 한 번 보고 망치를 한 번 본다.
나는 그를 한 번 보고 망치를 한 번 본다.
그가 망치를 향해 달린다.
나는 미친 듯이 뒷걸음질 친다.
탕! 타당.
힘 있는 울림. 미끄러지는 엇박자. 연약한 유리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린다.
드르르륵. 쾅! 콰광. 드르르륵. 쾅. 콰광!
묵직한 철이 타일을 긁으며 다시 일어선다. 허공을 가르며 몇 번이고 날아든다. 그가 금방이라도 거울을 깨부수고서 내가 있는 곳으로 기어 올 것만 같다. 어느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맨손과 맨발로 유리 조각들을 자근자근 밟으며, 등등한 기세로 내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칠 것만 같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한다. 거울에 가해지는 타격이 강해질수록 긴급하게 숨을 헐떡인다.
저게 깨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둘 중 누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우리 둘 중에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