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3화
“아아아아악! 너 뭔데, 어? 너 뭐야?”
필사적이었던 생존의 소망이 무색해지는, 금 하나 가지 않은 깨끗한 거울. 그의 망치는 유리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온 힘을 다해 수없이 내리쳤는데도 거울은 여전히 티 없이 맑다. 그는 적잖이 당황한 모양새로 한참을 길길이 날뛰다 결국 망치를 내동댕이치고는 청테이프를 갈기갈기 찢어 거울에 덕지덕지 붙인다. 내게 분노한 만큼 그의 손길은 거세고 재빠르다. 온 거울이 청테이프로 뒤덮였지만, 그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그를 볼 수는 없지만, 들을 수 있다. 들을 수 있기에 그릴 수 있다. 그는 좀처럼 잦아들지 못한다.
그리고. 그리고 찾아온 정적. 마침내. 간헐적으로 들리는 지친 숨소리. 뚜껑 덮은 변기 위로 내려앉는 발소리. 그는 완벽하게 탈진한 모양새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의 관심에서 처음으로 해방되었다고 느낀다. 밑도 끝도 없이 가해지던 살해 협박에서 마침내 풀려났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그제야 깊은 한숨을 뱉는다. 헉헉대며 몇 번이고 숨을 내뱉는다. 이건 절망하는 헐떡임일까 안도하는 호흡일까. 나는 무엇을 절망하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안도하고 있는가. 심장이 아프다. 폐가 저릿하다. 이건 나의 감각이다. 오직 나만의 감각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 그래야만 한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타일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꼬리뼈를 정면으로 부딪친다. 통증이 밀려온다. 우습게도 엉덩이가 아니다. 손바닥이다. 손바닥이 아프다. 꼬리뼈가 아니라 양손이 욱신거린다. 손을 들어 눈앞에 펼쳐본다. 양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마디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다. 안간힘을 써서 무언가를 잔뜩 그러쥐었던 손이다. 사용할 줄 모르는 도구를 애써 휘두른 듯한 무른 손이다. 예를 들어, 망치 같은.
고개를 든다. 주변을 확인한다. 몇 번을 확인해도 이편에는 망치가 없다. 건너편을 본다. 닫혀버린 초록색 벽을 응시한다. 곧 터질 듯한 부푼 두 손을 부여잡고 곰곰이 그를 생각한다. 별안간 깨닫는다. 잔뜩 부어오른 나의 두 손은 어쩌면 그의 손일지도 모른다. 나의 현재는 그의 과거에서 파생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일단. 일단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그를 부른다. 목소리가 화장실 벽을 타 넘으며 공허하게 공명한다. 세상에. 오늘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듣는 나의 목소리다. 외이도를 타고 흘러들어온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두개골을 진동하며 퍼지는 진짜 나의 목소리.
저편의 기척이 다급해진다. 타일 바닥에 직직 끌리는 슬리퍼 소리가 들린다. 그는 내가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잠깐만. 소리 지르기 전에 일단 내 말부터 들어 봐요. 혹시 오른쪽 검지 두 번째 마디에 작은 생채기가 났어요?”
그는 답이 없다. 나는 계속 묻는다.
“나무 가시가 긁고 지나간 것 같이 아주 작고 까탈스러운 상처예요. 약지 세 번째 마디에도 혹이 하나 났어요. 아마도 물집이 잡힌 것 같네요. 그쪽은 어때요?”
답을 해 줘요. 이건 중요한 문제예요. 당신도 나와 같아요? 그래요?
“뭐야... 너.. 어떻게 아는 거야?”
의심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그의 목소리. 분명 손을 열심히 살피고 있으리라. 한쪽 눈을 모로 뜬 채로 보이지도 않는 나를 경계하면서.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뭐라고?”
“같은 사람인 것 같다고요. 당신과 나. 내 두 손은 지금 화상을 입은 것처럼 쓰라리고 화끈거려요. 아마 당신도 그렇겠죠. 당신과 내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내가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겠어요? 어떻게 당신의 통증을 내 통증처럼 느낄 수 있겠냐고요. 우리는 같은 처지예요. 같은 상황을 겪는 동일한 존재라고요.”
“웃기는 소리 마. 만약 네가 나와 같은 처지라면, 왜 아까 나처럼 펄쩍 뛰며 놀라지 않았지? 넌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나를 지켜보기만 했어.”
그가 거칠게 묻는다.
“당신이 나보다 더 놀랐으니까요. 둘 중 하나는 좀 진정할 필요가 있었어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다를 뿐, 나도 적잖이 놀랐어요. 당신이 망치를 먼저 집어 들지 않았다면 내가 그랬을 거예요.”
“아니야. 넌 날 보고 웃었어. 내가 똑똑하게 기억해. 무서웠다면 어떻게 웃을 수 있었겠어?”
“어색하고 당황스러워서 그런 거예요. 당신도 알잖아요. 우리는 어색하면 일단 웃는 버릇이 있는 거. 뭐든 일단 덮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거.”
“우리라고 부르지 마. 함부로 나랑 너를 묶지 마. 징그러우니까.”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