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6화
“누군가의 통과의례를 보고 들으며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가늠하게 되지. 어릴 때부터 보던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다거나, 군에 간다거나, 장성해 결혼이라도 하면, 우리는 으레 그에게서 나를 찾아. 벌써 저 아이만큼의 세월이 흘렀구나. 나도 그만큼의 시간을 지나왔겠구나, 하면서.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있던 나를 뒤적여. 내가 벗어놓은 허물을 헤집으며 그와 견줄 만한 것이 있는지를 찾게 되지.
하지만 과거를 되짚는 건 어색하고 서먹한 일이야. 지나온 시간 속의 나는 생각보다 낯설거든. 분명 나의 허물인데 처음 보는 듯 기이하고, 구역질이 날 만큼 흉측할 때도 있지. 그래서 우리는 자주 오만 가지 감정에 휩싸이게 돼.”
거울 너머의 실루엣은 여전히 턱을 괸 채로 나를 본다.
“오늘 당신에게 찾아온 감정은 씁쓸함이네. 무엇이 당신을 씁쓸하게 만들었을까.”
실루엣이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말한다.
“당신에게는 신기한 재주가 있어요.”
“어떤 재주?”
“아주 작은 것도 위대하게 만드는 재주.”
“보통 그걸 말주변이라고 하지.”
“아니요. 말을 잘하는 것과는 달라요.”
당신에게는 내게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혀끝까지 밀려 내려오는 그 말을, 나는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나는 오늘 결혼식에 못 갔네. 지호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그가 두 팔을 높이 올려 기지개를 켠다.
“축의금 보냈잖아요. 우리 둘이 같이.”
내가 심드렁하게 답한다.
“축의금만 보냈나. 결혼 선물도 했잖아. 큰 걸로. 우리 둘이 같이.”
“그럼 됐어요.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으니까.”
“시간은 늦었지만, 그래도 축하한다고 연락이라도 해야 할까?”
“굳이 연락을 왜 해요, 이 밤에. 그것도 신혼부부한테.”
“그런가.”
물을 켠다. 여태 미뤄두고 있던 손을 씻는다. 미지근한 물이 손등을 타고 흐른다. 축축하다. 비누 거품을 내어 손을 벅벅 닦는다. 손톱 밑까지 벅벅. 쏟아지는 물속에 손을 가두고서 거품을 밀어낸다. 벅벅. 또다시 벅벅. 손등에 손톱자국이 벌겋게 올라온다. 하지만 나는 물을 끄지 않는다. 그저 손을 끝없이 비벼댄다. 비누 거품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간 손을, 씻어내고 또 씻어낸다.
세찬 물줄기 사이로 그가 무어라 말을 건넨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가 가볍게 거울을 두드린다. 똑똑. 똑똑. 마치 다른 이의 방을 노크하듯 부드럽고 조심스럽다. 한껏 격식을 차린 손짓이지만, 나는 어쩐지 그의 격식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시해 버린다. 물을 더 세게 틀어 그의 목소리를 지워버린다. 한참을 웅얼대던 그가 결국 단념하고 자리에 앉는다. 엉덩이의 온기로 조금은 데워진, 하지만 여전히 싸늘한 변기 뚜껑 위다.
물을 끈다. 손을 바지에 대강 닦는다. 얇은 실내복에 물이 스며들며 허벅지에 착 달라붙는다. 천 아래로 살구색 살갗이 비친다.
“오늘은 이만 자러 갈게요. 피곤한 하루였어요. 잘 자요.”
상투적인 인사를 건네며 슬리퍼로 타일 바닥을 긁는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를 움직이려고 매번 신을 신고 벗어야 한다니. 이보다 더 비효율적인 일은 없을 듯하다.
“정말 이대로 갈 거야? 정말로?”
발등에 대강 걸고 있던 슬리퍼 한 짝을 막 내던지려 할 때쯤, 그가 묻는다. 나는 퍼뜩 고개를 든다.
들켰나?
순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자야죠. 밤인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답한다.
“잠이 오겠어?”
“잠이 안 오겠어요? 난 누구랑 달리 온종일 돌아다녀서 피곤하다고요.”
하지만 거울 너머의 사람은 침묵할 뿐이다. 그의 고요함에서 서서히 투명한 가시가 돋아난다.
“설마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차갑게 덧붙인다.
“내게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는 않아.”
서릿발 같은 기운이 공기를 타고 전해진다.
“무슨 소리예요.”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맞받아친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가 다시 시작되지는 않는다고.”
“그러니까 무슨 소..”
“너 결혼식 안 갔잖아.”
발바닥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진다. 열기는 천천히 발목을 타고 올라와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귓불이 화끈거린다. 심장 소리가 규칙적으로 귓바퀴를 울린다.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쿵 쿵 쿵 쿵 강렬하게 박동한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들키는 순간만큼 곤혹스러운 건 없다. 만약 그 ‘스스로’가 내게서 파생된, 독립된 인격체라면 더더욱.
“오후까지 내내 잠만 자다가 이제야 일어난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는 뒤로 돌아도 나고, 바로 서도 나다. 거울 속에 있어도 나고, 거울 너머에 있어도 나다. 그는 나를 속속들이 꿰뚫는다.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다.
그는 곧 나이고, 나는 곧 그이기 때문에.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