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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Sep 28. 2024

내가 사라진 세계, 현실이 되다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8화

“무슨 그런... 아니야. 그냥 이야기를 좀 해 보자는 거야.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 그리고 더 전에 일어난 일들까지. 우리의 거울은 어긋났어. 하나를 둘로 나눌 만큼 완벽하게 어긋났다고.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으려면 일단 무엇이 거울을 기울였는지부터 알아야 해. 힘들겠지만, 감추고 덮어둔 것들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나도 가만히 있었잖아요!”     


내가 버럭 고함을 내지른다.     


“당신이 그렇게 죽자고 길길이 날뛰었는데도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 말도! 그런데 그깟 거짓말 한 번 한 걸 가지고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어요?”     


식식대며 고래고래 외친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자꾸 위대하게 만들지 마요! 자꾸 그 저주받은 재주를 온 사방에 늘어놓지 말라고요!” 


발에 걸치고 있던 슬리퍼를 내동댕이친다. 쾅! 온 집이 부서져라 문을 닫는다. 

다시는 그를 보기 싫다. 조금도 보고 싶지 않다.

침대에 뛰어든다. 이불은 조금 전 빠져나온 그대로 어질러져 있다. 베개에 머리를 묻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몸을 내던진다. 나는 내가 사라진 세계에서 비로소 평온을 찾는다.      




베개 위에 켜켜이 쌓인 뜨거운 공기가 코를 막는다. 더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얼굴을 든다.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컴컴한 방, 공기가 탁하다.


테이블 램프를 켜자 전등이 오렌지색으로 물든다. 서랍장을 열어 작은 손거울을 꺼낸다.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거울. 거울을 잠시 품에 안고 생각을 정리한다. 그에게 할 말을 되짚어 보고서 짧은 한숨을 내쉰다. 눈을 감는다. 거울을 집어 든다. 눈을 뜬다.     


“있잖아요, 아까는 내가 좀 흥분해서...”     


말을 멈춘다. 거울 저편이 공백이다. 완벽한 빈칸이다.

맞게 본 건가 싶어 거울을 뒤집어도 보고 바로도 본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눈앞에 놓인 거울이 텅 비어 있다. 텅 빈 방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과 함께 방을 한 바퀴 돈다. 거울에 방 안의 물건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살구색으로 찰랑거리는 커튼, 나무 옹이가 드러난 원목 탁자, 겉옷과 가방이 두서없게 걸린 옷걸이, 전선들로 지저분한 책상.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 책장에 다다르자 시선이 흩어진다. 그만 보고 싶다.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책장에서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돌아온 침대. 급하게 젖히고 일어난 이불이 뒤집혀 있다. 정리되지 않은 주름들이 제멋대로 우글거린다. 이불 한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다. 엎어 놓은 복숭아처럼 둥글둥글한 하트 모양이다. 다시 나를 비춘다. 침대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내 앞으로 거울이 다가온다. 코앞까지 거울을 가져다 댄다. 하지만.


거울 속에는 주황으로 물든 램프만이 빛을 발하며 서 있다. 뒤를 돌아 램프를 본다. 그리고 거울을 본다. 거울과 램프 사이에는 내가 서 있다. 하지만 거울에는 아무것도 비치질 않는다. 램프와 거울 사이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다. 


맙소사. 거울에서 내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사라진 세계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렸다. 


“거기 있어요?”     


대문 밖에서 집주인을 부르듯, 큰 소리로 외친다. 거기 누구 없어요? 

그러나 답이 없다. 그는 듣지 못하는 것일까, 대답하지 않는 것일까.     

 

“거기 누구 없냐고요!”     


다시 한번 그를 부른다. 애달프게 그를 찾는다. 

거울을 침대 위로 던진다. 책상 서랍을 뒤져 또 다른 거울을 꺼낸다. 한쪽 눈만 간신히 담아내는 작디작은 거울. 하지만 두 번째 거울에서도 텅 빈 방뿐이다. 눈은커녕 눈동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방에서 나와 신발장을 향해 달려간다. 집 안에 있는 유일한 전신 거울 앞에 선다. 서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른다. 불빛 하나 없는 짙은 회백색의 복도에는 어떠한 생명의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나는 이곳에 있지만, 존재하지 못한다. 그가 사라지자 나는 세상에서 삭제되었다. 실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는, 한 자락의 혼령으로 변해버렸다.


그래선 안 된다. 내가 사라진 세계는 현실이 되어선 안 된다. 그건 상상과 가설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해방이다. 내가 사라진 세계는 더 이상 어떠한 세계도 될 수 없다. 그런 형체 없는 곳에서는 해방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는 세상은 더 이상 내게 ‘세상’일 수 없다. 유와 무의 경계가 사라진 무한의 진공일 뿐. 

나는 울적했던 것뿐이지, 죽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를 찾아야 한다. 찾아내야 한다. 지금 당장.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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