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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Sep 29. 2024

당신과 나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9화

거친 발놀림으로 화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거울 앞에 선다.     


“좋아요. 어떻게든 끝을 보죠.”     


주먹 쥔 손으로 거울을 쾅쾅 두드린다. 익숙한 슬리퍼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봐?”     


그의 배배 꼬인 말투를 의식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무조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해결해야 해요. 둘로 분리되다니. 내가 둘로 분리되다니. 이런 망측한 상황을 어떻게든 돌려놔야 해요!”

“왜지?”

“왜냐고요?”

“응.”

“왜긴요! 당연히!”     


침이 기도를 침범한다. 쿨럭쿨럭 기침을 내뱉는다. 사레가 들렸다. 너무 흥분한 탓이다.   

   

“내일은 정말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그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켈록대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꼴로.. 이 꼴을 하고서 밖에 나갈 수는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을 볼 생각하니 이제야 고민이 되나 보지? 귀신으로 오인할까 봐? 왜? 내가 아까 놀랐을 때 좀 그렇게 놀라 보지.”


“지금 상황에서 토라지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요. 어쨌든 당신도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니에요. 거울이 없으면...”

“거울이 없으면, 뭐.”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증명할 길이 없어요.”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양쪽 팔에서 솜털이 부스스 일어선다. 올록볼록 돋아난 닭살이 팔꿈치를 돌아 어깨를 타고 오른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한 건 너야. 너라고.”  

   

그는 여전히 시큰둥하다.      


“그래요. 알았어요. 누구 책임인지는 나중에 정하고. 일단 결과가 중요해요. 우리는 하나로 되돌아가야 해요.” 


문제의 근원부터 되짚어 보자고요. 내가 단호하게 말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해요.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테니까. 일단 어제부터 생각해 보죠. 어제 무슨 일이 있었죠? 어제 아침에는 늘 그렇듯 회의를 했고, 점심을 먹었고, 오후 업무를 봤고, 야근은 다행히 하지 않았어요. 그저 그런 하루였어요. 아, 그런데 음료수를 먹었어요. 음료수. 탕비실에 있던 건데. 선물 받은 거라고 했는데. 누가 선물해 준 거였죠? 기억이 안 나는데. 잠깐만. 김 대리라고 했던가? 아니면 거래처 직원이었던가? 혹시 기억나요? 뭐든 기억나는 거 있으면 말해 볼래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들 앞에서 그가 고개를 젓는다. 세차게, 아주 세차게 젓는다. 아니야.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런 건 문제가 될 수 없어. 그가 중얼거린다.      


“성급해. 당신 지금 많이 성급해.”

“시간이 없으니까 당연히 그렇죠. 내일 아침이 올 때까지 12시간도 채 안 남았어요. 동트면 이제 곧 출근이에요. 정말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요.”


“사람. 사람. 사람. 거, 참. 사람 되게 좋아하네.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거듭 얘기했잖아. 이제야 제대로 대화할 기회가 왔는데, 자꾸 그렇게 밀린 일 해치우듯 할 거야?”


“시간에 쫓기고 있어서 그래요. 급하게 해치우는 게 아니라, 정말 급하다고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는 거야, 마음이 없는 거야?”

“뭐가 있든 없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마음이 없으면 만들어낼게요. 만들어서라도 가져올 테니까, 제발...”


“애원하지 마,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니까.”

“알았어요. 알겠으니까, 그 빌어먹을 이야기나 좀 하자고요, 제발!”     


그와 나는 다른 이유로 초조하다. 젠장. 같은 사람이 둘로 분리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이렇게 끔찍하도록 답답하다니.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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