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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Oct 05. 2024

솔직해서 두들겨 맞은 겁쟁이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10화

“좋아, 그럼 우리가 왜 결혼식을 가지 않았는지부터 얘기해 보자.”     


다시 말문이 막힌다. 결혼식만 생각하면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다.

내가 말이 없자, 그가 입을 연다.     


“앞뒤 안 보고 직진하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럼 네 장단에 맞춰서 어제 일과부터 훑고 지나갈까? 어제가 끝나면 그제를 기억하고, 그게 끝나면 일주일 전을 추억하고? 이상하고 미스테리한 순간을 찾아서?”

“알았어요. 알았어.”     


결국 나는 목을 가다듬는다. 그는 내게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생긴 연차여서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어요. 아침에 당신과의 일도 있었고. 시간도 늦었겠다 가지 말자고 생각했죠. 어차피 며칠 전까지도 연차가 나올지 안 나올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가지 않기로 한 거예요. 가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없었으니까. 다들 내가 못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고요. 당신은 이런 단순한 문제를 그렇게 웅장하게 만든 거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한 눈치다.     


“이 속도라면 우리는 내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같은 자리만 빙빙 돌고 있겠는데?”     


그의 목소리가 담백하다.     


“이런 속도라뇨. 이보다 더 솔직할 수는 없어요.”

“그래. 그렇겠지.”


“마치 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네요. 그럼 이제 당신이 이야기해 봐요. 당신은 왜 결혼식에 가지 않았죠?”

“내가 직면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뭐라고? 순간 정신이 어지럽다.      


“그렇잖아. 그런 거 아니야?”     


그가 태연하게 묻는다. 나는 세면대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중심을 잡는다.

어떻게 저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     


“내가 직면한 현실이라니. 대체 무슨 말이죠?”     


일단 부인한다.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효과는 없겠지만.     


“솔직해서 두들겨 맞은 겁쟁이”     


또렷한 발음으로 한 글자씩 호명되는 단어. 나는 고개를 든다.  

   

“뭐라고요?”

“너 말이야. 그렇다고.”     


눈 밑 근육들이 미세하게 움찔거린다. 시야가 서서히 가늘어진다.      


“가면이라고는 도통 쓸 줄 모르는 바보. 매번 가면을 머리에 봇짐처럼 이고 다니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맨얼굴을 번쩍 들이미는, 그렇게 아둔한 사람.”

“날 비난하고 싶은 건가요?”

“동정하고 있는 거야.”     


측은하게 전해지는 그의 말투가 불쾌하다.     


“당신, 사람을 만나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지?”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한테. 이 거대한 도시에는 어딜 가나 인간들이 무순처럼 자라나 있다고요.”


“그런 거 말고. 정말로 사람을 만나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냐고.”     


멈칫한다. 잠시 고민한다.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답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답하지 않고 버틸까도 생각해 보지만, 어떠한 경우의 수를 따져 보아도 그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 비좁은 공간에서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다. 거울 건너편에 있는 그는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조차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몹쓸 사건을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싶은 건 우리 중 나뿐이다. 그러니 그는 내가 입을 열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또다시 아무런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다.      


“정확한 기간을 알지 못해요. 한 번도 세어 본 적 없으니까. 하지만 두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을 거예요, 아마도.”     


결국 내던져 버린 답. 그러고는 변명처럼 덧붙인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았으면 해요. 내가 이상한 건 아니니까. 요새는 그 누구도 정말로 사람을 만나지 않아요. 그건 유행에 뒤처진 촌스러운 일이거든요.”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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