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11화
“난 유행을 따르는 것뿐이에요.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한다. 내 말에 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대꾸한다.
“유행에 뒤처진 촌스러운 일이라고.”
“유행한 지는 좀 됐죠.”
유행을 선명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어떤 날을 떠올린다. 웅장함과 화려함이 깃든 장대한 연회장. 왁자지껄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웃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뒤 한참이 지나 재회한 얼굴들. 서로를 만나 즐거워 보인다. 그러나 반가움은 겉모습뿐, 재회의 순간에서 감정은 배제되어 있다. 그리운 벗을 만난다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동창이라는 미명 아래 집결한 사회 공동체를 엮는 건, 의무감이다. 자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집념이다. 그 속에서 감정은 사치다.
서로가 서로와 ‘팔로우’되어 있는 이 시대에, 학교를 매개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처진 일이라 느껴졌지만, 알면서도 향한 건 순전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직장을 구한 첫해였다. 사회인으로 발돋움했다는 자부심은 나를 전에 없던 방향으로 떠밀었다. 매년 오는 초대장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 믿었다. 이제야 진입한 ‘사회’를, 이 미지의 세계를, 모조리 탐험해 보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들의 일부였는지 모른다. 유행을 의식한 건 아니었지만, 나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어떤 문화적 장치가 나를 그렇게 움직이도록 떠밀었을지도. 아니다. 이건 너무 모호한 회피다. 정정한다. 그건 아주 속물적인 결정이었다.
동창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외계인을 만난 것마냥 서로를 신기해했다. 타인의 안부를 들으며 나의 세계에서 맛보지 못한 신선한 해방감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했다. 한때 같은 시간을 견뎠지만, 우리는 더 이상 동족이 아니었고, 다름은 모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다양성은 지루함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근황을 공유하는 짧은 대화가 끝나자 어색한 웃음만이 감돌았다. 때마침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구원받은 얼굴로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수저를 들었다. 음식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끝없는 칭찬. 거대한 홀이 음식에 대한 평론으로 가득하다. 다들 무척이나 음식을 좋아한다. 술도. 그리고 음료도.
음식이 바닥을 보일 때쯤 우리는 다른 주제를 찾는다. 하이에나처럼 서로를 훑는다. 이 모임을 어떻게든 견고하게 유지하고자 강박적으로 소재를 찾는다. 덧없는 공백은 우리가 그간 얼마나 서로에게 소원했는지를 부각할 뿐이다. 그런 건 돋보여선 안 된다. 적어도 친목을 빌미로 모여든 이곳에서는. 그러던 중 누군가가 타인의 물건을 포착한다. 곧 자신의 시선을 낚아챈 물건을 모두의 앞에 들어 올린다. 덩달아 우리는 그것을 본다. 그가 여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를 본다.
“가방 예쁘네.”
“너 차 샀네? 바꾼 건가?”
불씨가 되었다. 그 말은 불씨가 되었다. 칭찬의 불씨가 되었다.
“얘 이번에 올린 사진 봤어? 호캉스 제대로 즐겼더라. 그것도 해외에서.”
“너 요즘 만나는 사람 있지? 그래. 그런 것 같더라. 어떤 사람이야? 와. 실루엣만 멋있는 게 아니구나?”
“매주 주말마다 필드 나가는 거 힘들지 않냐? 체력 장난 아니다.”
“바디프로필! 올라온 거 봤어. 엄청나던데? 진짜 부지런해야만 할 수 있는 거잖아.”
서로를 추켜세우는 건 사전 행사다. 대망의 마지막 쇼를 돋보이게 하려는 수작질이다. 오늘의 본격적인 불꽃놀이. 진짜 쇼는 지금부터다.
그래서 마지막 쇼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바로 나. 나 자신이다.
“너 이번에 새로 나온 차 시승해 봤냐? 내가 이번에 바꾸면서 타 봤는데.”
“어, 맞아. 신상 오픈런.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말도 마. 정말 줄이 끝도 없더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생각보다 잘 살던데?”
“야, 승진 경쟁 장난 아니야. 회사 이름은 좋은데 힘든 것도 많아. 아니라니까.”
“전문직은 뭐 쉬운 줄 아냐? 너희들 모르는 고충도 많아. 연봉? 뭐 그런 걸 물어.”
“맞아. 주식 한동안 좋았지. 추천해 달라고? 야, 그런 걸 그렇게 대놓고 말하냐.”
서로를 향하던 칭찬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걱정과 근심으로 포장한 말 뒤에는 어김없이 웃는 얼굴이 있다. 우월감에서 오는 안도의 미소가 있다. 모두가 작정하고 한통속인 그곳은, 베일에 싸인 장기 자랑이다.
나는 인파 속에 멀뚱히 앉아 있다. 묵묵히 접시를 비우고서 짐을 챙겨 일어난다. 홀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온다. 가방이 왠지 모르게 묵직하다. 안을 들여다본다. 나도 모르게 들고나온 칭찬들이 가방 안에서 굴러다닌다. 몇 개 안 되는 칭찬들에서는 하나같이 썩은 내가 난다. 내가 뱉은 침 냄새와 남이 뱉은 침 냄새로 얼룩진 어설픈 칭찬들. 하나씩 집어서 풀숲에 던져 버린다.
그날 이후로 나는 추억과 연관된 어떠한 공식적인 만남에도 나가지 않는다.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