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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Sep 22. 2024

왜 그런 거짓말을 해?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7화


“왜 그런 거짓말을 해?”     


한 치의 뭉그러짐도 없이 정확한 발음으로 전해지는 그의 육성.

머리가 멍하다. 답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변명거리가 없어서는 아니다. 무수히 많은 말들이 줄지어 떠오른다. 그중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을 골라 되는 대로 엮는다. 엉성하게 기워 놓은 말들을 정독한다. 아니다. 이런 말들로는 나를 속일 수 없다. 나는 나에게 있어 그 어떠한 검열관보다 치밀하고 엄격하다. 그는 나의 조그만 실수 하나까지도 전부 알아챌 것이다. 이런 어설픈 수작으로는 절대 그를 설득할 수 없다.     


“미안해요.”     


답은 사과다. 솔직하게 부딪치자.

그가 한숨을 내쉰다. 양손으로 얼굴을 끌어안는다.

그러곤 흐느껴 운다.     


“미안해요.”     


나는 다시 한번 사과한다. 들썩이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무어라 말이라도 건네야 할 것 같지만,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럴 능력도 없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단단한 장벽에 막혀 이어질 수 없다.     


그는 얼마간 더 울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다행히 그는 오래 울지 않는다. 어떻게든 눈물을 삼키려고 애를 쓰며 진득한 침을 꿀떡꿀떡 삼킨다.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북받치는 감정을 온통 쏟아내도 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그와 똑같이 눈물을 멈추려고 애썼을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우는 법을 알지 못한다. 울음은 어떻게든 끝내버려야 하는 성가신 잡일이다. 시작하지 않는 편이 제일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시작되었다면 황급히 마무리해 버려야 하는, 자질구레하고 귀찮은 일. 울음은 애초에 겪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 


그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들썩이던 감정의 파고가 잦아든다. 휴지를 걸어 둔 철제 고리가 철크렁거리며 타일 벽과 부딪친다. 두루마리 휴지가 둘둘 풀리다 뚝 끊긴다. 그가 코를 푼다. 요란스럽게도 코를 푼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가 코맹맹이 소리로 묻는다.     


“큰 문제는 아니에요. 그냥 결혼식을 안 간 것뿐.”     


내가 답한다. 위로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뒤바뀌지는 않으니까.     


“그거 말고. 우리 말이야.”

“우리요?”

“그래, 우리.”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가 콧방귀를 뀐다. 상당히 못마땅한 콧바람이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 말이야.”     


퉁명스러운 목소리. 그는 무언가 단단히 기분이 상한 듯하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젓는다. 짐작조차 되질 않는다. 그의 말뜻이 이토록 불투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처음이 아닌가. 그것조차 알 수 없다.      


“거짓말을 하잖아, 바보같이.”     


그가 징징거린다.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그 말투가 듣기 싫다. 왜 저렇게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걸까.  

   

“서로 거짓말을 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아. 우리는 같은 사람이야. 한 명이라고. 너는 나고, 나는 너란 말이야. 그런데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거지? 우리는 남을 대할 때 거짓말을 이렇게까지 많이 하지 않아. 오히려 진실을 위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 누군가를 기만하는 건 도덕적인 범죄니까.”

“잘 알죠. 거짓은 차라리 말하지 않거나 혹은 적당히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죠.”

“맞아. 그런데 왜 자기 자신을 앞에 두고서, 누가 들어도 명백한 거짓말을 자꾸 하는 거야?”     


잠깐의 정적. 내가 천천히 입을 연다.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다시 잠깐의 정적. 이번엔 그가 천천히 입을 연다.      


“그렇게 믿고 싶었어? 오늘 결혼식에 다녀왔다고?”     


생각의 고리가 뚝 끊긴다. 언어를 잃어버린 모호한 공황이 지속된다. 이런 상황에는 무슨 말이 어울리지. 무슨 말을 할 수 있지. 어떤 말을 해야만 하지.     


“모르겠어요.”     


가까스로 조합한 단어. 

무엇을 모르겠다는 걸까. 결혼식에 다녀왔다고 거짓말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걸까. 도대체 어쩌다 거짓말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모르겠다는 뜻일까.     


“그럼, 내가 도와줄게. 같이 이야기해 보자. 이야기하면 알 수 있을 거야.”     


저편에서 들리는 살가운 목소리. 그는 꽤 적극적이다. 

나는 순간 고개를 번쩍 쳐든다.     


“무슨 이야기를 한단 말이죠? 고작 결혼식 참석 여부에 대해 거짓말한 걸 가지고 나를 훈계할 셈인가요?”




*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어느 날, 거울 속 나에게 자아가 생겼다 >


평범했던 아침, 거울 속에 수상한 ‘내’가 등장한다. 겉모습부터 목소리까지 나와 도플갱어처럼 닮았지만, 독립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별개의 인격체인 ‘그’.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까뒤집고선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몸을 훔쳐 간 도둑이 주인보다 더 놀랄 수 있는 거지? 

정작 기겁해야 하는 건 나인데! 격분하고 경악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인데!      


아니, 아닌가? 혹시, 혹시 내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진짜’인 거지? 만약 그가 진짜라면. 내가 그를 하이재킹한 거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버린 두 개의 자아.

어긋난 거울을 바로잡기 위한 농밀하고 진솔한 고백의 여정.

현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문드러진 한 사람의 심리 분투기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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