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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Oct 22. 2023

월 200만 원 받는 백수가 되고 싶다

다시 취업준비생 

오뚜기 '참깨라면' 뒷면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 EBS ‘자본주의’ 책에 수록된 글귀로 격한 공감을 했다. 또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에 지쳐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곰국 우려내듯 우려야 하는 걸까. 그래도 안되면 누가 책임질 건데. ‘노력하면 성공한다’라는 공식은 무너졌다. 황무지에서 노력으로 성공한 엄마도 시대의 현실을 인정하고 나를 포기하셨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직업이라는 것을 가져보려고 노력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을 구하려다 사기도 당해봤다. 그 당시는 사기인지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사기였다.      


녹즙기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갔는데 다단계 같은 느낌을 받아서 도망쳐 나왔다. 글 써주는 아르바이트로 어떤 글을 그대로 따라 쓰기만 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먼저 3만 원을 입금해야 한다고 해서 돈도 없는데 돈을 보냈다. 그런데 막상 일거리를 하는데 전해준 프로그램이 켜지지 않았고, 회사에 전화하지 받지를 않았다. 사기를 당했다. 어쩐지 생각보다 쉽게 돈을 많이 벌더라니.      


20대에는 쉽게 고수입의 돈을 벌게 해주는 일이 대부분 사기인 줄 몰랐다. 지금도 보면 무슨 일인지는 제대로 말도 안 해주면서 돈만 많이 준다고 구직 글이 있다. 세상에 공짜 없고, 쉽게 버는 돈은 구린 경우가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평균수명도 100세가 기본이 되었다. 수명이 긴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축복이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재앙이다. 수명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돈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삶이 연장된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 같다. 결국 삶을 포기하는 현상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 시대에 직업이란 어떤 의미일까? 직장을 구하는 것을 포기한 세대. 직장을 관두고 그냥 쉬는 청년이 29만 명이 넘어가는 시대이다. 나도 작년에 취업 준비하다 포기한 상태다. 학력이 높으면 좋은 곳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자격증이 많으면 온갖 것들을 도전해 보았다.    

  

대기업만 가려고 하니까 일을 못 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그들이 대기업만을 원하는지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대기업은 일은 힘들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높은 편이며 복지가 잘 되어 있기에 선호하게 된다.   

   

N 잡러 가 늘어나는 이유도 하나의 직업으로는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의 직업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미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고, 괜찮게 사는 기준도 상승했다. 만족이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남들만큼 살아야지라는 생각에 피로사회를 만들어간다. 남들만큼은 얼마만큼일까.     


국민 MC로 유명한 유재석이 유튜브에서 ‘월 500만 원 받고 엄청 일하는 사람’ VS ‘월 200만 원 받는 백수’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을 했었다. 패널로 나왔던 배우 이동욱은 월 500만 원 받으며 엄청 일하는 사람을 선택했고, 개그맨 남창희는 월 200만 원 받는 백수를 선택했다.      


두 사람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전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일’이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간이 가지게 되는 자존감이나 생활의 활력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의견이었다.    

  

후자를 선택한 사람은 200만 원 받는 백수로 지내는 이유로 개인적인 여유를 지향하기에 적게라도 하고 싶은 일을 소소하게 사는 백수로 살고 싶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월 200만 원 받는 백수를 선택했다. 모아놓은 돈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도 있고, 잘 나가는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울 때도 있지만 월 500만 원 벌면서 일하는 상상을 하면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동안 체험한 직업들을 반추하며 삶에서 돈을 많이 버는 비율보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성취욕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라는 존재이다. 명품백이 없는 것에 대한 부끄럼보다 다른 이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서울시 청년정책 책자
마포오랑 방문 상담하고 받은 선물

다시 취업을 위해 마포오랑센터를 방문했다. 청년 일자리를 알려주고, 필요한 교육이나 자리들을 소개해준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매니저와 시간을 잡고 방문, 메신저, 전화 등의 방법을 선택해서 상담을 할 수 있다.    

  

취업상담, 마음상담, 주거상담의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거기서 ‘취업상담’을 신청했다. 처음에는 가장 빠르게 취업하고 싶어 가지고 있던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고 나니 생각보다 여러 가지 지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서둘렀던 이유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청년 기준이 만 39세까지로 청년 정책에 막차를 탔기 때문이다. 상담하고 직업에 대해 고민하면서 어차피 늦은 거 제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님이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쇼핑백에 한가득 무언가를 들려주셨다. 센터 방문자에게만 준다고 하셨다. 열어보니 텀블러, 발포 비타민, 숲이 우거진 엽서가 보였다.      


세심한 배려에 감사했다. 취업준비생이 저렴한 가격의 밥은 먹어도 비싼 비타민을 챙겨 먹기는 힘들다. 컴퓨터와 책을 파기 바빠서 숲을 볼 여유는 없는데 뜻밖에 선물에 감동했다.   


업에 대한 나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국민연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고 삶을 살 수는 없다. 건물을 물려받지 않은 이상. 물려받아도 일해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대안은 나를 지키는 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그건 일하면서 찾아봐야겠다. 언제나 나를 잃어버리지 말 것을 다짐하며 연습을 해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한병철은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라고 말했다. 외부로부터 받는 착취도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내는 착취도 있다. 이 중에서 내가 지켜낼 수 있는 것은 내부로부터 착취를 막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자신에게 혹독해진다. 


반대로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하는 가해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자. 분별력을 가져야 할 시대다. 


이제 내 꿈은 월 200만 원 받는 백수로 변했다. 

이뤄지기 힘들어도 꿈이라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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