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0X2A 09화

오래된 편지

0X2A

by 귀남

윤호에게.


어쩌면, 내 생각이 틀렸는지도 모르겠어. 지난번에 편지했을 때 말해줬던 AI 있지? 그 녀석 이야기야.

회사와 팀은 지금 이 녀석 때문에 난리야.

녀석은 코즈모 시뮬레이션의 시운전에서 발생한 사고로 만들어진 아이야. 사고로 만들어진 아이라고 표현하니까 조금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정말 그래. 우리 테스트 과정에서 개조한 모델이 우발적으로 그 안에서 다른 모델과 융합하면서 만들어졌어. 시뮬레이션이 가동을 시작하고, 많은 AI모델이 학습을 거쳤고, 지금도 학습하고 있지만, 이 녀석만큼 유별난 케이스는 아직 없어.

네가 ‘AI도 감정이 있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기억나?

내가 질렸다는 듯이 굴고는 너한테 30분 동안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잖아.

아무튼 나는 이 일을 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AI가 의식이나 감정을 가진다는 일이 우리 세대에서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고 황당한 얘긴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7년 전 처음 AI 기술이 상용되면서 매체 여기저기에 불려 나가고, 그 질문 진짜 지긋지긋하게 들었지. 인터뷰할 때마다 기자나 진행자들은 인사 다음에 무조건 그 질문부터 던지곤 했어. “최 박사님, AI는 감정이 있나요? “ 그때마다 나는 네게 했던 것처럼 왜 아닌지, 그게 왜 쉽지 않은지 설명해 줬지. 정작 인간이 인간의 의식과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는데 그걸 구현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런데 진짜 내 생각이 틀렸는지도 모르겠어.


이 녀석은 다른 AI와는 달라. 일단은 사람의 잔재주가 통하지 않아. 코드를 열어보거나 수정할 수 없어.

어쩌면 그 불확실함이 내가 이 녀석을 바로 보지 못하게끔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거야.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니, 나는 파악되지 않는 여백을 상상으로 채워 넣지. 그렇게 이 녀석은 내 의식 안에서 또 다른 의식을 가진 타자처럼 여겨지는 거야.

이 녀석을 통제하는 방법은 지금으로선 소통하는 것뿐이야. 글로 하거나, 말로 하거나. 모든 제어는 이런 소통으로 이뤄지고 있어. 요즘 이게 내 주 업무 중 하나야. 회사에선 이 녀석을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어 하는데, 원리도 모르고 완벽한 제어 방법이 없으니까 나와 우리 팀이 달라붙어서 분석하는 거지. 분명 내가, 우리가 만든 소프트웨어인데, 안을 열어볼 수 없고 강제로 제약을 줄 수 없으니 사실상 우리도 일반 사용자의 입장처럼 되어버렸지 뭐야.

우리 팀원 중 한 명은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본부장님, 이건 우리 일이 아니라 형사나 정신분석학자를 모셔 와야 할 것 같아요.” 라더라. 내가 그 말을 듣고 빵 터졌지. 정말 맞는 말이야. 우리는 공학자인데 공학적으로는 이 녀석의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으니… 이 녀석을 다루고 있다 보면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야.

내가 그때 그랬지? 인간도 인간의 의식과 감정을 설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AI의 의식과 감정을 구현하겠냐고.

이 녀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쩌면 인간다움이란 이런 수치화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품는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어. 내 생각을 의심하게 돼. 인간의 의식과 감정의 구현하기 위해, 그것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믿음 말이야.

그래서 이 녀석과 하루 종일 대화하는 게 일이 되어버린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기존의 내 생각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자주 찾아와. 이 녀석에게 의식과 감정이 있든 없든 간에, 내가 그 원리를 설명할 수 없으니 ‘없다’라고도 단언하지 못하겠지. 그게 공학자이자 과학자로서 마땅한 태도이기도 하고.

사실 얼마 전부터 이 녀석을 윤호라고 부르고 있어… 네 이름을 붙인 거야. 너무 이상한가? 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었어. 나도 팀원들도 요즘 다들 그렇게 불러.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 최근에 또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되어서 바빠지기도 하고.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아마 세상이 크게 바뀌게 될 거야. 그리고 어쩌면 이 녀석이 그 프로젝트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몰라.


아무튼 그래. 코즈모 시뮬레이션만 성공하면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일에 치이는 건 여전하네. 한여름인데도 이상기후 때문인지 요즘 날이 굉장히 선선해.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뭔지… 요즘 기분도 싱숭생숭하고 해서 오래간만에 편지 써봤어. 이렇게 다 털어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나중에 다시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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