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이시다. 58년 개띠가 유명한 이유는 박정희 아들 박지만을 육사에 보내야 되는데, 박지만이 공부를 워낙 못해서, 최초로 중학교 입학 무시험, 고등학교 입학 무시험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 혜택을 보지 못했다. 국민학교 졸업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고향은 경남 사천과 고성 경계에 있는 정동면인데 어머니는 그곳을 객방이라고 하신다. 정동면은 고성으로 넘어가는 교통 요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쉬어가던 손님방이 있었고, 그 지명이 남아있는 것 같다.
시어머니는 좋은 분이시지만 내가 처음 결혼했을 때 반찬을 해주시면서 나한테 꼭 물어보셨다. 반찬을 가져갈 건지 안 가져갈 건지.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반찬을 가져가라는 건지, 아니면 반찬을 주기 아까우신 건지 몰라서.
나중에 <가족의 두 얼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언어가 이중메시지라고 생각했다. 휴게소에서 음식을 안 드신다고 해서 안 사 왔는데, 다시 음식을 사 오라고 하신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남편은 군대에 갈 때 어머니가 안 우셔서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아직도 한다.
어느 날 저녁 우리 가족이 시댁에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과일가게에 주문한 수박을 반나절 동안 기다렸다고 한다. 저녁 먹고 수박을 먹고 싶은데 수박이 오지 않을까 봐. 수박은 제시간에 맞게 도착했고 남편과 내가 수박을 막 자르려고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게 웬 수박이야? 너희가 사 왔니?" 나는 아직도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던 게 기억난다.
어머니는 2020년 병원에서 치매 확진을 받았다. 65세 이전에 발병한 경우로 초로기 치매라고 한다. 내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서 배웠다.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시댁에 아들을 맡기지 않았다.
치매 진단 후 가장 큰 문제는 어머니의 수치심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걸 누구도 모르기를 바랐다. 친구들과 30년 넘게 보아온 동네 사람들이. 평소 말씀이 별로 없으시던 시아버지는 갑자기 시골집을 구입하셨다. 어머니와 아버님의 신혼집이었던 집을 다른 사람이 리모델링하여 살던 집을 시세보다 비싸게 주고.
초로기 치매 진행은 우리 예상보다 빨랐다. 어머니가 겪은 두 번째 감정은 분노였다. 어머니는 1억이 넘는 돈이 어디 갔냐고 화를 내셨다. 아버님이 돈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20년 넘게 색연필 공장에 일하시며 돈을 모으셨다. 힘들게 돈을 모았던 기억은 나는데, 돈을 쓴 기억은 나지 않으니 그렇게 화가 나는 게 당연했다.
시부모님은 사천에 있는 시골집으로 이사를 하셨다. 병원에 가는 날만 부산으로 오신다. 아버님은 100평 땅에 농사를 지으셔서 우리에게 과일과 야채를 많이 싸주신다. 어떻게 이렇게 뚝딱뚝딱 농사를 짓는 거지? 내가 신기해하니 남편이 하는 말. "우리 아버지 농고 나오셨거든." 시골집에 마당이 있어서 여름에는 우리 아들이 물놀이를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