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 깨달음
어느 날 누군가와 만나고 난 후 뭔가 석연찮은 불편감이 있을 때가 있다. 그냥 날씨 탓이거나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았을 수도 있지만, 반복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 때면 시간을 내어 그 감정에 대해 질문한다.
한 번씩 멈춰서 질문하는 이유는 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은 무엇이 불편했을까?
누군가에게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다분히 노력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답답함이 그에게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답답한 말투에 미온적인 공격을 하고 있었고, 그의 질문에 긍정하듯 답했지만 사실 그건 교묘한 속임수를 섞은 부정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나는 마음속에서 상대를 깎아내리고 하찮게 만들어 버렸다. 만남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내 마음에는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남았다.
또 어느 날은 자신을 겹겹의 벽으로 둘러싼 사람을 만났다.
겉으로 무척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속을 좀체 내어주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뾰족한 것이 그 벽을 갑자기 뚫고 나오기도 했다.
그걸 통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가늠이 되었다.
뾰족함으로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아 만져주고 싶었다.
그러자 더 견고하게 벽을 쌓았다. 가끔 내뱉는 말에서 독성이 느껴졌다.
바라보는 것도 아프기 때문에 거기서 물러서며 어쩔 수 없다 고개를 저었지만, 곁에 있어줄 만큼 애정이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 한켠에 돌 한 덩이를 묻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상대를 우스꽝스러운 미물로 만들고도 죄책감조차 없는 듯 당당한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했거니와, 마치 내가 그 대상이 된 듯해 내심 불쾌했다.
도대체 왜 그 상대는 그런 상황에서 웃기만 하고 있는 걸까? 둘 사이 이미 형성된 관계의 역동이 나를 일렁이게 했지만 거기서 무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가슴속 불쑥 솟은 정의감을 고이 묻어 두는 데에 또 하나의 돌덩이가 필요했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관계의 매 순간 나는 돌덩이를 마음에 안고 돌아왔다. 내 감정을 다루기에도 미숙했고 타인을 바라보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게 돌덩이가 쌓이면 언젠가 무거워서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알게 된다. 이렇게 차곡차곡 돌탑을 쌓을 일이 아니란 걸….
대부분의 감정은 주관적인 인식에서 온다.
자신의 감정이 객관적이란 건 순전한 착각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평온하고, 어떤 이는 흥분하며, 또 다른 이는 별생각 없이 지나간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감지되었다면 그 이유를 다른 데서 찾아봐야 소용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잃어버린 열쇠는 우리 집에 있는데, 다른 데에서 열심히 찾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불편함이 있는 그 지점에 들어가면 내가 어떤 잣대로 상대의 점수를 매기고 있거나, 사랑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불필요한 오지랖을 부릴 때가 대부분이다.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지점을 느끼게 된다.
단번에 찾았다면 그런 날은 행운이다.
돌덩이 하나가 내 맘 속에서 스르륵 빠져나간다.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지.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내 감정은 주관적인 실체이다.
그래서 나를 종종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 맘 같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그건 그의 몫이다.
내 마음을 챙기고 나를 좀 더 자주 바라봐 주고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여전히 불편하다면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하루에 딱 하나만 무언가를 발견해도 좋다. 무수한 돌들을 한꺼번에 치울 생각은 버리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