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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gon May 28. 2020

ABC가 전부인 사람의 어학원 입성기

첫 어학원 이야기, 난다신은 어학원에서 무얼 배웠는가?

어학비자인 F-1 비자는 말 그대로 오로지 어학공부를 위한 비자다. 그러니 F-1 비자 소지자인 나 역시도 어학을 공부해야만했다. 한국에서 이미 시카고에 있는 어학원을 1년치 등록하고 그 댓가로 비자를 받아 시카고를 향한 것이다. 내가 다니던 어학원은 우리 동네였던 업타운에서 CTA를(Chicago Transit Authority) 타고 약 한 시간을 가면 나오는 Chicago Loop 이라는 곳에 위치했다. 시카고 루프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의 중심 지역 중 하나로 '밀레니엄 파크' '윌리스 타워' '존 행콕 타워' '미시간 애비뉴' '시카고 빈/클라우드 게이트' '시카고 아트 미술관' '시카고 극장' 등 시카고 관광명소가 전부 모여있는 곳으로 볼 거리가 굉장히 많은 곳이자 규모가 큰 회사들도 많이 위치한 중심가였다.

어학원 마치고 자주 들렸던  밀레니엄 파크 와 클라우드 게이트

Loop 에는 어학원들이 많이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어학원도 그 중에 한 곳이었다. 학원비가 굉장히 저렴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학비가 저렴한것을 빼고 학원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배경으로 나오던 CTA 브라운 트레인(우리나라 1호선,2호선,7호선 같은 라인 의 한 종류)이 어학원 교실 창문에서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브라운 트레인이 배경으로 나온 영화로는 '스파이더맨2' '메트릭스 1' '스팅' '사탄의 인형' '쉐임리스'등이 있다. CTA 브라운 트레인이 가진 오래된 낡은 운치가 배경 선택에 한 몫을 한 모양이다. 브라운 트레인은 오래된 만큼 달릴 때마다 소리가 엄청 시끄러워서 수업시간에 굉장히 방해가 됐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 CTA 브라운 트레인

어학원을 가기 위해 이용하던 CTA역 안에는 언제나 공연 허가증을 받은 예술가들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덕분에 전동차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주곤 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승객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째즈, 힙합 장르를 불문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역마다 있었는데 흥이 많은 나에게 그것은 참 좋은 볼거리였다. 지하철 이용 비용이  편도에 $2.50 였다. 어학원을 다니기 위해 드는 1일 CTA 이용 비용만 왕복 6천원 꼴이 됐다.(돈을 아끼겠다고 학원까지 세시간 넘는 시간을 걸어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돈이 조금 덜 아까울 수 있었던 것은 전철역 내 예술가들의 멋진 연주 덕분이었다. 가끔 내 마음을 울리는 아티스트를 만나게 되는 날이면 '에잇 기분이다! 빵 한 조각 덜 먹고 말지!'라는 맘으로 1불을 팁으로 드리기도 하였는데 그만큼 공연의 질이 상당히 높았다.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집도 알아보고 일도 알아보는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국 생활이 어떤 것인지 서서히 읽히기 시작했다. 미국에 대한 환상이 어느정도 깨질때 쯤 어학원 오리엔테이션 날이 다가  왔다. 


어학원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 그날이 대낮에 시내로 나가는 첫 CTA 이용날이었다. 첫 등교날의 설레이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시카고의 전동차 풍경은 한국의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유사했는데 다들 분주한 모습으로 전동차에 올라타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의 분주한 모습에서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옷 걸쳐입고 대충 빈 속을 채우고 목적지에 늦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달려 나온듯 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이 모두에게 익숙한 루틴 같아 보였는데 그들 중 나 혼자만이 혹시라도 역을 지나쳐서 내리진 않을까, 혹시 소매치기라도 만나는건 아닐지 긴장과 두려움에 휩쌓여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기저기를 관찰을 하느라 바빴다. 낯선 CTA 안에서 긴장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적마냥(?) 성경책을 펼쳐 두 손에 꼭 쥐고서는 틈틈이 읽다가 구글맵으로 현 위치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어느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Lake 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다행이 역을 지나치지 않고 제대로 내리게 됐다. 지상의 계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 마다 어둠 속으로 빛이 점점 강하게 들어왔다. 드디어 밖으로 다다랐을때 내 눈에 보이던 시카고 시내는 생각보다 멋졌고 어느새 나는 긴장감 보다는 황홀감에 빠져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엇다. 

어학원은 '시카고 극장' 뒷 편에 오래된 건물에 위치했다. 모든것이 낯선 나는 역시 '총기 소지 금지' 스티커가 단단히 붙어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 갔다. 건물 내부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나한테 말을 걸까 겁이나 잰 걸음으로 엘레베이터 앞으로 후다닥 향했다. 내 옆에 딱 봐도 나와 같은 어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저 사람을 따라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리는 층에 내리자 어학원 사무실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난 통로를 향해 가니 친절하게 'TEST' 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게시판을 잘 훑어 보니 내 이름이 적혀있었고 그 옆엔 내가 시험치러 가야 할 교실의 번호도 친절히 적혀있었다. 영어라고는 ABC밖에 모르는 나인데도 눈치껏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 차리는걸 보면서 서른 셋 인생 헛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로 들어가보니 이미 많은 학생들이 착석하여 있었다. 그런데 이 곳이 미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교실에는 태국인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기가 미국인가 태국인가?' 싶을 정도였다. 거의 모든 학생은 머리가 흑발이었다. 태국을 제외 하고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가장 먼저 찾아 본 사람은 역시나 '한국 사람'이었는데 아무리 둘러 보아도 한국인은 나 뿐이었다. 그나마 익숙한 흑발의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는 일본 여성이었다. 나는 그 일본인 여성 옆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태도로 반갑다고 인사를 건내줬다. "아임 코리안." "아임 재패니즈" 이런 식의 아주 기본적인 문장을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눴다. "언제 여기 왔니" "어디에 살고 있니" 등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하고 싶은 말들을 전부 구사하지 못 할때는 더듬더듬 단어를 나열하기도 하고, '번역기'를 돌려가기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서로의 처지에 대하여 수줍어 하면서 동병상련을 느끼는 눈빛을 주고 받으며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였다. 그렇게 어색한 교실에 어느정도 적응하다 보니 교실로 금발의 백인 남성이 들어왔다. 한 손에 시험지를 잔뜩 들고 있는 모습이 '나는야 선생님'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영어와 함께 손짓 발짓을 하면서 우리에게 시험지를 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희한하게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들 전부 영어 구사가 어려운 사람들인데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시험은 필기와 대화 시험으로 이줘졌는데 시험지엔 간단한 문제부터 어려운 문제까지 나와있었다. 시험지를 다 푼 사람은 차례를 기다리며 다음 방으로 건너가 선생님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아주 간단한것이었다.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더듬더듬 영어를 뱉어내는 나를 보자 5분도 안 돼서 선생님은 "오케이! 댓츠 잇!" 하며 집에 가도 된다고 하였다.


엘레베이터를 타러 내려가는 복도에 태국 친구들 여럿이서 모여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보더니 "나이스 드레스! 알 유 코리안?" 하며 반가워 하였다. '이 옷이 멋지다고?' 그때 당시 나는 대충 남색 트렌치 코트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예뻐보인다고 하니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아무말이나 막 던지는건가 싶기도 하였다. 그래도 먼저 말을 건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어찌나 고마운지! "예스. 아임 코리안" 내 대답에 그들은 '꺄악' 신나하면서 자신들은 '한국 화장품과 성형수술이 너무 멋지다! 나도 성형수술 하고 싶다. 한국에서 산 옷이냐? 너무 예쁘다!' 하면서 한국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데 어쩌면 이들의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나보다 큰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인이라는것 자체만으로도 큰 점수를 먹고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날 시험을 마치고 나는 절망하였다. '건들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댄 기분'이 들었다. 그냥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그날 나의 한심한 영어실력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울쩍한 기분을 안고 밀레니엄파트 뒷쪽에 있는 강가로 향하였다. 강가에는 시간이 이른데도 불구하고 연인들이 서로 짝을 지어 앉아서 뽀뽀를 하는 등 애정행각을 벌여 내 기분을 더 망쳐놓았다. 더이상 눈꼴이 시려서 앉아있을수 없었다. 


다음날 부터 어학원을 정상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학원을 향하는 길은 출근 하는 사람들로도 붐비는 길이었다. 그 길목에는 큰 탄산음료 컵을 든 거지가 동전 몇입 든 컵을 흔들어 대며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큰 키에 다리를 꼬고 나무에 기대어 서서 구걸을 하는 모습이 굉장히 당당해 보였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면 컵을 흔들어 대면서 돈을 구걸하다가도 내가 다가가면 딴청을 피우는 것이었다. 아마 거지도 사람 봐가면서 구걸을 하는 모양이었다. 딱 봐도 돈 없게 생겨서 그랬나보다. 아마도 '똥개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먹지' 싶어서였던가? 영어도 못하고 구걸도 못 하는 내 자신에 대하여 점점 쪼그라 들었다. 


어학원 복도 게시판엔 시험 결과가 붙어 있었다. 내 이름을 한참 찾았다. 구석 쯤 종이에 내 이름이 적힌 종이가 보였다. 내 이름 옆에는 친절하게 내가 가야 할 클래스가 적혀있었다. 나는 아래에서 아주 쬐꼼 높은 반인 기초반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빨 잘 털기로 날렸는데. 이게 뭐람...' 


교실 안은 역시나 이 곳이 미국인지 태국인지 모르게 태국 친구들로 가득했다. 드문 드문 태국인은 아닌 검은 머리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약간 금발을 가진 파마머리의 엄마뻘 되어 보이는 분도 계셨고, 오우! 저길 보니 히잡을 쓰고 있는 친구도 보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다양한 인종과 함께 한 자리에 앉아 있기는 처음이었다. 빈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내 양 옆에는 역시 태국 여성 친구가 앉아 있었다. 태국 친구들의 사교성은 정말 끝내줬다. 예쁜 눈을 반짝이며 그들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줬다.


다들 영어 구사가 서툴렀지만 희한하게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잘 못 알아 듣는 말이나 잘 표현이 안 되는 말들은 그림을 그려가기도 하고 사전을 찾아 보여주기도 하면서 (가끔 '태국어->한국어' 사전을 사용하는 영어에 전혀 도움 안 되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우정을 이어갔다.


우리 반은 태국, 브라질, 콜롬비아, 아랍 학생들로 이루어졌다. 영어공부도 영어공부였지만 문화 공부를 더 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어 공부를 해야하는데 서로 '나 태국어 알아' '나 한국어 알아' '나 아랍어 알아' 이런식으로 자신들이 아는 각국의 언어를 나누며 신기하다고 깔깔 웃기도 하고 각자 고국의 언어를 서로에게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쁜 편견이 깨지기도 하였고 반면에 오히려 편견이 생기기도하였다.


학원은 오전 8시30분에 시작해 오후 1시 정도에 마쳐서 늘 점심을 싸가야 했다. 점심시간에는 '카페 테리아'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양 옆의 태국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러 갔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녀들의 다른 반 태국 친구들과 동석을 하게 됐다. 모두들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늘 함께 먹던 무리들 중에 멋쟁이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야리야리한 몸매와 환하게 웃는 밝은 얼굴이 유독 눈길을 끓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미국에서 활발한 연애를 하고 있어서 언제나 점심 시간이면 자신의 화려한 연애사를 들려주느라 바빴다.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로워서 모두가 귀를 쫑끗하며 그녀에게 집중하였다. 걸크러쉬 폴폴 풍기는 그 친구는 주변 친구들의 눈빛을 반짝이게 만드는 매력이 넘치는 재담꾼이었다. 

수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저 선생님은 하루 나오시고 그만 두셨다.

"저 친구는 진짜 인기가 많은가봐."

매력적인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나 역시도 그녀의 팬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그녀는 참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하자 "응. 근데 저 친구 트렌스젠더 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이 대답했다. 나는 태어나서 트렌스젠더를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놀랐다. 그녀의 여리여리한 몸매와 말간 피부는 천상 여자였다. 내가 상상하거나 이태원 밤길에서 가끔 봤던 트렌스젠더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충격을 받았지만 그런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학급에 들어가기 몇 개월전에 내가 다니던 학급은 이미 시작된 학급이었다. 그래서 나 빼고 모두들 친숙한 분위기었는데 어느날 태국 친구들이 "난다! 우리반에 한국인 언니가 한 명 더 있어." 라고 하였다. 우리 학급에 브라질 아주머니 빼고는 거의가 20대 초반이었기에 서른 셋이었던 난 '한국인 언니가 아니라 동생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어떤 사람일지 기대가 되었다. 몇일 뒤 우리반에 새로운 얼굴이 들어왔다. 그러나 나만 새로워 하는거 같았고 다른 학우들은 모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반겼다! 딱 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것이 보였다. 하지만 먼저 다가가 환하게 말을 건내기엔 상황을 좀 파악해야 했다. 왜냐면 어학공부를 하러 미국에 가는 사람들 중에 같은 나라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지양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비싼 돈 들여서 영어 공부하러 왔는데 같은 나라 사람끼리 친해져서 한국 말만 하다보면 영어가 안 늘기 때문에 같은 나라 사람을 피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혹시라도 상대방이 한국 인과 친해지는 것을 꺼려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저 간단한 목례 정도만 하였다.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신가봐요."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 네! 저 서른 셋인데요 더 늦기 전에 미국에 와보고 싶어서 왔네요."

일부러 내 나이를 먼저 밝혔던 것이다. 

"그래요? 저는 83년 생인데 제가 한 살 많네요.모르는거 있음 물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반에 한국인 언니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큰 위로가 됐던지~ 그 뒤로는 수업 시간에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언니를 불러 방금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반에서만 대화를 나누는 격이었는데 언니는 가정 주부라 바빴고 나 역시도 학원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스타일이었기에 우리는 밖에서 만나는 등 아주 깊이있게 사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언니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참 든든했다.


생각보다 어학원에서의 생활은 그리 힘들지 않았고 영어 실력도 그리 늘지 않았다. 짝꿍들은 사랑스런 어린 친구들이었다. 내 짝은 룸메이트들이 너무 시끄럽다며 수업시간에 잠 좀 자겠으니 선생님이 부르시면 깨워달라고 하였고 가끔씩은 향수병에 걸렸다며 슬픈 눈으로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태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기도 하였다. 다른 쪽 옆에 앉은 친구는 영어 실력이 굉장히 좋아 수업을 혼자 다 이끄는 격이었다. 그 친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실력 차이가 있으니 서로 이야기 하다 지쳐서 긴 대화를 이어나갈수 없었다.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따로 놀고 싶어도 모두들 수업 이후에 스케쥴이 있었으며 또 나이 차이도 많이 났고 코드도 달라 어학원 책상 친구로만으로도 적당했던것 같다.

똑똑하고 귀엽던 친구들

난 그저 친구들을 관찰하는게 나의 낙이었다. 콜럼비아에서 온 친구는 커피공부를 하고 싶어서 미국에 온 것이었고, 카자흐스탄 사람은 굉장히 한국인과 유사하게 생겼다. 브라질에서 온 아줌마는 늘 에너지가 넘쳤으며, 아랍에서 온 남학생은 자존감이 굉장히 높았다. 관찰 결과 우리반 남자 친구들의 놀림의 대상이었는데 혼자만 자신이 그런 존재인것을 몰랐던거 같다. 자신의 집에는 낙타가 3마리 있다고 하였고 학급 남자친구들의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에 "미국에는 없다!"라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당장이라도 미국인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거 같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딱 봐도 얼굴은 아니지만 태도가 부잣집 도련님 같아 보였다. 그리고 아랍에서 온 여학생도 한 명 있었는데 늘 화려한 화장으로 안 그래도 예쁜 이목구비를 더욱 빛나게 만든 그녀는 언제나 호탕하게 웃고 늘 히잡을 쓰고 학원을 왔다. 난 그 친구가 굉장히 맘에 들었다. 그 친구 역시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하며 나에게 관심을 갖어 주었다. 그 친구의 여동생 또한 같은 어학원 다른반 학생이었는데 친구의 말로는 동생이 본인보다 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하였다. 그녀의 동생은 나를 만나자 자신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다며 휴대폰을 꺼내 드라마 사진들을 보여주며 "너 이 드라마 아니? 이 드라마도 알아?" 하며 이것저것 보여줬는데 그녀가 좋아하던 드라마 중에 내가 출연했던 이승기,신민아 주연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가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녀들에게 '비밀인데 내가 거기 출연 했었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출연 당시 사진을 보여주니 깜짝 놀라며 본 적이 있었던거 같다며 반가워하였다. 드디어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난거 같았다! 

신분세탁을 꿈꾼다고 하고는 필요할때면 자랑이 되었던 나의 과거
작은 역할이었지만 이걸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한인 마트에 갔다가 친구네 집에 놀러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함께 시카고에 한 한인마트를 향하며 엉터리 영어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나에게 "드라마에서 봤는데 한국 사람들이 까만 국수를 먹던데 그게 뭐냐?" "드라마에서 봤는데 한국 사람들이 막 먹는 하얀 빵 같은건 뭐냐?" "하얀색 국물인데 밥 넣어서 먹는건 뭐냐?" 등 특별히 한국의 먹는것에 대한 질문을 상당히 많이 하였다. 나는 "그건 짜장면!" "그건 만두!" "아마 설렁탕일거야!" 신나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보통 그런 음식들은 언제 먹는지, 뭘로 만들었는지 설명하다보니 한껏 신이 났다. 

친절하고 사랑스럽던 자매

택시를 타면 금방 갔을 거리지만 지하철을 타고 걸어 걸어 드디어 마트에 도착했다. 그 마트에는 만두가 유명했다. 지난번 인오빠의 부인이 함께 장보러 갔다가 만두를 하나 사줬는데 꽤나 맛있었던 생각이 나서 친구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주고자 만두를 사줘야겠다 다짐했다. "이게 바로 만두라는 건데 내가 사줄게!" 

친구가 믿는 종교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김치만두를 사줬다.

만두를 받아들고 신나하는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먹을 떡볶이재료를 사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보통 8시 전에 집에 갔는데 그날따라 해가 길었기에 친구네 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빨리 집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라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신나하던 자매

친구네 집은 처음 가보는 동네였고 내가 사는 동네와는 상당히 분위기가 달라서 색다른 맛이 있었다. 친구네 집도 3층에 위치했는데 집 앞에는 한 중년 남성이 '아랍' 방송을 듣고 있었다. 친구는 아랍어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였다. 친구 자매는 아랍계 미국인 예술가 여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예술가의 집 답게 곳곳에 멋진 그림들과 특별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잠시 후 거실에서 자고 있던 아랍계 미국인 룸메이트가 인기척을 듣고 깼는지 밖으로 나와 인사를 나눴다. 


늘 히잡을 쓰던 친구가 집에 도착하자 히잡을 벗었다. 히잡을 벗는 그녀의 모습을 봐도 되는건지 가슴이 괜시리 콩닥거렸다. 히잡을 벗자 그녀의 흑발이 드러났다. 세상에! 내가 상상한것 보다 더욱 멋진 친구였다! 세련된 숏커트를 한 그녀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매력있는데 항상 히잡으로 가리고 다녀서 몰랐어!' 나는 '히잡 벗은 모습을 내가 봐도 되냐?'고 묻자 낯선 남성이 아니면 괜찮다고 하였다. 잠시 방에 들어간 친구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한 꾸러미 들고 나왔다. 


"난다! 이거 내가 며칠전에 쇼핑한 옷들인데 한 번 볼래?"


친구는 나와 룸메이트, 그리고 자신의 동생 앞에서 자신이 구매한 옷들과 구두를 신어 보이며 패션쇼를 하였다. 그녀의 옷과 구두들은 최신 유행하는 옷과 구두들로 하나 하나 입어 볼 수록 히잡을 둘러썼을 땐 찾아 볼 수 없는 세련미가 철철 넘쳐났다. 친구도 새로 산 옷이 맘에 드는지 환하게 웃고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냥 저런 차림으로 밖을 돌아다닐수 있다면 좋을거 같다.'며 혼자 생각을 하였다.


나는 슬슬 배가 고팠다. 하지만 친구들은 배가 고프지 않았는지 나에게 '코란'에 대해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알라'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너무 안타깝다며 나에게 '코란'을 꼭 들어보라며 '유튜브'를 이용해 어떤 이가 읽어주는 코란을 들려줬다. 그녀들은 그 코란을 들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것 같아 보였지만 나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가 마치 자장가 처럼 들리기도 하였고 심지어 배가 고파서 정신 집중할수도 없었다. 

코란 과 친구가 준 캬라멜... 저날 앉은 자리에서 캬라멜을 몇개나 까먹었는지 모르겠다.

더이상 참지 못하고 용기를 내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 언제 떡볶이 해먹을까?" "지금 라마단 기간이라 해가 떨어지면 그때 저녁을 먹자."고 하였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해가 지려면 먼 것 같았다. 절망스러웠다. 울고 싶었다. 지금까지도 배고픈걸 꾹 참았는데 더 기다리란 말에 눈 앞이 깜깜했다. 더이상 안  되는 언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점점 지치고... 심지어 더 깜깜해지면 집에 가는 길이 꽤나 위험해 질텐데!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지금 몇시지?" 자연스럽게 시계를 찾는척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지금 저녁 6시?"

"아차차! 내가 7시에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 했네! 세상에... 미안해서 어쩌지 나 가야겠어."

"떡볶이는 안 먹고 가?"

"하... 미안해.. 다음에 먹으러 올게! 맛있게 해먹어!"

친구는 서둘러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나를 보며 아쉬워하였다. 나도 상당히 미안했지만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또 이해 안 가는 언어들을 이해하고자 머리를 너무 썼더니 당이 뚝뚝 떨어져 살기 위해선 어쩔수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때 까지 해는 지지 않았다. 나는 친구에게 잘 도착했다고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연락을 남기며 '김치만두'는 맛나게 먹었는지 물어봤다. 친구는 '김치 만두에 돼지 고기가 들어가서 버렸다.'고 하였다. 으아...버릴줄 알았으면 내가 다 가져오는것인데 싶어 아쉬웠다.

약 두시간 걸려 집에 왔는데도 해가 지질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기 보다는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시카고에 와서 보니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나는 내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를 배우면 가슴이 뛰고 가능성이 더욱 커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움츠려들게 만드는거 같아 당황스러웠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거 같은데 익숙하던 것들이 그리웠으며 새로운 문화에 대하여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가 가진 생각을 바꾸기엔 이미 나의 생각들이 강하게 고착되어 버렸나보다. 나도 낯선 곳에서 홀로 낯선 문화를 받아 들이는게 유연하지 못한 나이가 됐구나 싶어 씁쓸하였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언제나 넉넉하고 편안했던 세상의 테두리를 벗어 버리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몰랐던 나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는 것?  


미국에 오자 한국의 많은 분들이 '영어를 배우러 미국에 가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내가 겪어본 바로 할 수 있는 대답은 '미국엔 영어를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다.'이다. 말이 좀 이상한데 만약 돈과 시간의 여유가 많다면 영어를 배우기에 너무 좋겠지만 나처럼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에 영어를 배우러 온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 비추이다. 내 경험으로는 어학원에서는 언어도 배울수 있지만 그 보다는 문화와 세상을 더 배울 수 있는것 같다. 만약 내가 좀 더 어렸거나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서 영어를 구사하는 기회를 늘려 실력을 키울 수 있었을것 같다. 하지만 어학원만 다녀서는 영어실력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만약 미국에서 살거나 미국에서 어떤 일로 인정받을게 아니라면 다소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도 소통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 영어를 못 한다고 자책하기 보다는 자신감을 가지는게 더 우선시 될 것 같다. (우리에겐 '파파고'가 있으니까!) 만약 정말 영어가 너무 배우고 싶다면 '미국' 이 아니라 일단 '종로'로 가서 어학원을 등록하거나 이태원,동두천의 맥주집으로 가는것이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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