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온도, ‘미안’ 대신 ‘진짜 마음’
관계는 늘 저울질을 요구합니다. 균형, 균형, 또 균형.
그런데 이상하죠? 그 무게추가 대체로 제 쪽으로 쏠리곤 합니다.
누군가 화가 나 있으면 내가 먼저 사과했고, 서운한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관계가 어색해질 틈도 없이, 늘 내가 먼저 웃었죠.
“사실은 나도 속상했는데… 또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버렸어.”
머릿속으로 수십 번 다짐했습니다. “이번엔 절대 먼저 연락하지 말자.”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또 손이 먼저 움직여 버립니다.
“미안해. 내가 너무 경솔했어.”
그리고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답장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요, 답장은 없어도 마음 한 구석은 좀 편해집니다.
아… 또 그랬구나. 이번에도 내가 먼저 웃었구나.
돌아보면 오래전부터 그랬습니다. 다툼이 생기면, 내가 먼저 사과했습니다.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괜히 책임을 느꼈습니다.
친구가 인상을 쓰면, 내 말투가 그랬나? 내가 실수했나?
머릿속에서 자동재생 버튼이 눌리는 거죠.
그래서 결국 연락을 먼저 하고, 작은 선물을 보내고, 분위기를 풀었습니다.
아무도 “너부터 사과해”라고 말한 적 없는데, 내 마음속에는 늘 긴장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등 돌리면 어쩌지?” 그게 너무 무서웠거든요.
결국 먼저 움직이는 게 내 생존 기술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가짜 미소’ 전략이었죠.
며칠 전 상담실에 온 한 여성도 저와 똑같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회사에서는 팀을 이끄는 중간관리자.
겉보기엔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먼저 사과해요. 잘못하지 않았을 때도요. 그게 편하거든요. 그 순간만은요. 근데 나중엔… 속상해요.”
그녀의 말투, 표정, 힘없는 웃음.
마치 거울 속 제 모습 같았습니다.
왜 우리는 먼저 사과할까요?
불편한 감정을 오래 견디지 못해서입니다.
누군가 찌푸린 얼굴만 해도, 내 잘못처럼 느껴집니다.
머릿속엔 익숙한 목소리가 속삭입니다.
“분위기 망치지 마.”
“네가 먼저 풀면 괜찮아져.”
사실은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들이죠.
그런데 반복해서 듣다 보니 내 생각인 것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진짜 내 감정은 구석에 밀려나고,
익숙한 가짜 미소만 남습니다.
우리는 자주 착한 관계, 매끄러운 관계를 ‘좋은 관계’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친밀함은 다릅니다.
불편함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서운함도 말할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굳이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는,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건 무례가 아니라 건강한 거리입니다.
너무 자주 사과하는 사람은 오히려 상대를 헷갈리게 합니다.
“이 사람은 늘 잘못하는 건가?”
“왜 이렇게 불편해하지?”
사과가 습관이 되면, 진짜 내 마음은 영영 묻혀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연습 중입니다.
“지금은 제 감정을 좀 정리하고 싶어요.”
“그 상황이 저에겐 서운했어요.”
“시간이 좀 필요해요.”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관계가 깨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나에게 솔직해질수록, 상대도 나를 더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여전히 상대의 표정이 굳어 보이면 움츠러들지만, 그럴 때마다 속으로 말합니다.
“괜찮아. 이번엔 먼저 웃지 않아도 돼. 네가 잘못한 게 아닐 수도 있어.”
누군가와의 거리에서, 서두르지 않기.
먼저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지켜보기.
그렇게 조금씩, 내 감정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괜히 먼저 미안하다’라고 말해본 적 있나요?”
� 안내
이 글은 출간 예정인 『관계의 온도』의 일부 내용입니다.
앞으로도 관계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법에 대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관계에서 늘 내가 먼저 사과하는 습관은, 사실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생존 방식이다.
하지만 자주 사과하면 진짜 내 감정은 묻히고, 상대에게도 혼란을 준다.
“불편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오히려 진짜 친밀함을 만든다.
“미안해” 대신, “나는 서운했어”, “시간이 필요해” 같은 진짜 마음을 말해보자.
먼저 웃지 않아도 괜찮다. 그 순간, 관계와 나 사이의 건강한 거리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