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마주하는 거울 속 얼굴은 늘 웃고 있었다. 억지로 만든 미소가 아니라, 그저 습관처럼 굳어진 표정이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눈동자는 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말끝마다 붙는 “괜찮아요”는 마치 내 존재를 지키는 주문처럼 따라다녔다. 착한 사람, 싫은 소리 하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사람. 그게 내가 오랫동안 쓰고 있었던 ‘친절한 가면’이었다.
이런 내가 정말 나였을까? 아니, 이런 나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우리 집엔 따뜻한 말보다는 긴장이 먼저 있었다. 아빠의 기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고, 엄마는 늘 그 기분에 맞춰 살아갔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며 자리를 지켰다. 엄마의 눈빛 하나, 아빠의 발소리 하나에도 나는 숨결을 줄였다.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누군가 무례한 부탁을 해도 “싫어요”라는 말은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누가 내 물건을 빌려가면, 속으로는 아쉬웠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올렸다. 감정을 숨기고, 불편함을 넘기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일. 그것이 내가 배운 생존 방식이었다.
착함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 같았다.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내가 문제 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유일한 무기였다. 그런데 그렇게 쌓은 방패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의무처럼 들리기 시작한 건, 아마도 그쯤부터였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상대가 상처받을 거야.”
“넌 너무 이기적이야. 좀 더 배려해.”
“분위기 좀 생각해. 너 하나 때문에 다 불편해져.”
이런 말들이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말해준 적은 없는데도, 마치 내 안에 다른 사람이 사는 것처럼 스스로를 다그치고, 억누르고 있었다. 그 말들은 내가 어린 시절 들었던 익숙한 말투들이었고, 어느 순간 내 안에 자리 잡아 내 목소리처럼 굳어버렸다.
그건 사실 ‘나’의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자란 내가 배운 ‘말투’였고, 그 말투는 점점 나를 진짜 나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어느 날, 상담실에서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거절을 못 해요. 그냥 싫은 부탁도 다 들어줘요. 그러고 나서 혼자 속으로 화가 나요. 그런데 말은 못 하니까, 그 사람은 전혀 모르죠.”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그건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살았다. 거절하지 못하고, 감정을 숨기고, 그러다 결국 혼자 지치고 서운해하는 패턴. 내 마음을 말하지 않으니, 상대는 몰랐고, 나는 점점 외로워졌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거절하는 건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에요. 진짜 가까운 사람이라면, 당신의 거절을 이해할 수 있어요. 오히려 계속 예스만 하는 사람이 더 혼란을 줘요. 이 사람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날 이후, 나 역시 나 자신에게 그 말을 자주 되뇌었다.
‘거절은 나쁨이 아니라 건강함이다.’
그 문장을 내 삶에 조금씩 데려오는 일. 그건 생각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일정을 바꾸자는 연락을 했고, 나는 속으로는 불편했지만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했던 건, 일정이 아니라 내가 또 내 마음을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오늘 일정 바뀐 게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솔직히 마음은 불편했어요.”
상대는 미안하다며 이해를 표현했다. 그리고 오히려
“앞으론 마음 있는 그대로 말해줘서 고마워”
라고 했다. 그 말이 낯설 정도로 따뜻하게 다가왔다.
마음을 말하면 관계가 멀어질까 봐 늘 조심했지만, 오히려 솔직한 말이 관계를 더 깊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을 꺼내놓는 연습을 시작했다.
나는 이제 ‘착한 사람’보다 ‘진짜 나’로 살고 싶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불편한 감정은 솔직히 표현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나로. 물론 아직도 쉽지는 않다. 누군가 실망할까 봐 망설이고, 내 말에 상처받을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진심을 표현하는 것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할 때, 상대도 나를 존중할 수 있다는 걸.
가끔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누군가 속삭인다.
“그렇게 말하면 다 떠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이제 묻는다.
“떠나더라도, 나는 나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나를 꺼낸다. 꾸미지 않은 내 목소리로,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그렇게 나는 ‘친절한 가면’을 벗고, 조금씩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 안내
이 글은 출간 예정인 『관계의 온도』의 한 챕터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앞으로도 ‘관계’와 ‘나’를 주제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 요약 정리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은 나를 보호하는 방패이지만, 점점 진짜 나를 숨기게 만든다.
내 안의 목소리라 생각했던 다그침과 억압은 사실 타인의 잔소리였을 수 있다.
거절은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건강한 표현이다.
솔직한 마음 표현이 관계를 더 깊고 건강하게 만든다.
진짜 나로 살아가는 데는 작은 용기와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