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딸 셋의 엄마가 되었다. 내가 딸이 세명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꼭 묻는 말이 있다.
"아들 낳으려고 셋을 낳으신 거예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내가 애를 셋이나 낳으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첫애를 놓고 시어머니가 둘째도 낳아야지! 하실 때
"요즘 공해도 심하고 얼마나 살기 힘든 세상인데요. 자꾸 애를 낳으면 어떡해요? 그 애가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고 되바라진 대답을 하던 나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셋째까지 낳게 되었다. 세상사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더 기가 막힌 건 세 딸 모두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모두 비혼 주의자이다.
세 딸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다. 큰 딸은 외국물을 좀 먹고 오더니 한국 남자들에게 희망이 없단다. 둘째는 외모에 관심이 없다. 막내는 검도를 하고 경찰대 입학을 꿈꾼다. 딱히 페미니즘을 가르친 것도 아닌데 우리 집 딸들은 모두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이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니 좀 거창하게 여겨지는데 풀어말하면 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평상시 패션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둘째가 못마땅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 둘째가 교생실습을 가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나는 내 고정관념상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고 여성스럽고 단정하게 출근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원피스와 블라우스 등 이것저것 옷을 사주었다. 하지만 딸은 계속 바지에 편한 티셔츠만 입고 다니는 것이었다.
"야, 치마도 좀 입고 다녀!"
"엄마, 단정하게만 하고 다니면 되지. 왜 꼭 치마를 입어야 돼? 바지가 편하단 말이야."
"......"
나는 대학교 다닐 때 거의 바지는 입지 않았다. 치마와 블라우스만 입고 다녔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성스럽고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던 것 같다. 오십이 넘은 지금도 그 욕망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항상 여성스럽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 불편한 것쯤은 감수하는 편이다. 이런 내가 볼 때 둘째는 정말 이상한 계집애였다. 전혀 꾸미지도 않고 사치도 하지 않고 오로지 편안함과 실용적인 것만을 추구한다. 처음에는 딸을 내 방식대로 고쳐보려고 달래도 보고, 예쁜 옷도 사줘 보았지만 항상 츄리닝 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예쁜 옷은 옷장 안에서 고이 잠자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성적인 고정관념에 갇혀 살았던 것이었다.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하고, 예뻐지려면 불편한 것쯤은 참아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세뇌당한 결과였던 것이다. 나의 생각과 관념도 다 시대와 문화의 산물이고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세대를 살아가는 딸들은 나보다 훨씬 성적인 고정관념에서 자유롭다.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해온 여성스럼움을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여자이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의 완전한 인격체가 되고 싶어 한다. 여자인 내가 아니라 나 자신 그대로의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딸들이 나보다 훨씬 성숙하고 앞선 생각을 지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항상 깨어있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여전히 나이 든 꼰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딸들아~~ 엄마가 반성한다. 너희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여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격체로 홀로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