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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Oct 03. 2020

애증관계의 끝판왕, 큰 딸!

닮은 듯 하면서도 안 닮았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아이를 낳으면 나와 똑같은 아이가 나올 줄 알았다. 얼굴도 물론 나를 닮겠지만 성격이나 행동 양상도 모두 나와 똑같은 아이들이 나오리라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거기에 대해 별로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막상 세 딸의 엄마가 되어보니 애들이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와 다를 뿐만 아니라 한 뱃속에서 나왔는데 세명 각각 성격이며 생김새까지 각양각색이다.


특히 큰 딸은 나와 닮은 듯하면서도 안 닮았다. 우선 닮은 점은 이렇다. 감성이 풍부하다는 점, 눈물이 많아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잘 운다는 점, 마음이 여리고 착하다는 점,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한다는 점,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 적어보니 꽤 많네! 그래서 책과 글 쓰는 것에 관한 이야기나, 감성적인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요리를 할 때는 친구처럼 말이 잘 통한다. 하긴 큰 딸은 철없는 엄마를 만나 초등학교 오 학년 때부터 엄마의 인생 상담부터 시작해서 애인, 친구 노릇을 잘 해왔다.


그러나 안 닮은 점도 너무 많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나를 안 닮았다. 너무 잠이 많다. 안 깨우고 가만 놔두면 하루 종일 잘 기세다. 신생아도 아닌데. 어느 순간 포기하다가도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도 자고 있는 딸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어올라 소리를 지르게 된다. 잠이 많다 보니 게으르고 가끔 가다 지각도 하는 눈치이다. 시간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내가 보기에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어떻게 약속 시간을 안 지킬 수가 있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글로 적어보니 안 닮은 점은 잠이 많고 게으르다는 점으로 닮은 점보다 적다. 그러나 문제는 이 나를 안 닮은 점 때문에 큰 딸과 나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이 매일 충돌한다는 것이다. 원인제공은 항상 나이다. 딸의 게으르고 느리고 야무지지 못한 점을 끊임없이 못마땅해한다는 것이다. 항상 거기에 대해 잔소리를 해댄다. 큰딸은 이제는 나의 잔소리에는 내성이 생긴 모양새다. 워낙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내가 악다구니를 써대도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이다.


어제도 웬일로 큰 딸이 일찍 일어나서 부산을 떨고 있었다.

"너, 어디 가?"

"과외 가야 돼!"

또 늦었는지 후닥닥 채비를 하고 나가는 뒤꽁무니에 대고 나는 또 소리를 질러댔다.

"제발 시간 약속 좀 지켜! 일찍 좀 일어나서!"

과외하러 나가는 큰딸에게 아침부터 소리를 질러 내보낸 후 후회도 되고 마음도 아팠다. 마칠 때쯤 큰딸에게 전화를 했다. 아침에 일도 있어서 삐져서 전화를 안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게으르고 행동이 느리고 야무지지 못한 대신 성격이 낙천적이고 뒤끝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 단점은 어느 순간 장점으로 둔갑한다. 분석하기 좋아하는 둘째는 언니와 내가 매일 아웅다웅하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분석한다. MBTI 성격 유형에서 큰언니는 자유분방한 P형이고, 나는 규칙과 규율을 준수하는 J형이라서 잘 안 맞는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논리다. P형과 J형이 만나면 P형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J형이 그 꼴을 못 보는 듯하다. 나만 P유형인 큰 딸을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비록 내 딸이지만 내 소유물이 아니듯이 딸의 타고난 성정과 기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마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충고를 해줄 것이다. 정작 가슴으로는 용납이 가지 않으면서 말이다. 애증관계의 끝판왕! 큰 딸! 오늘도 끊임없이 나를 시험하고 있다. 지금도 저녁을 먹고 나서 잠시 눈을 부친다고 누워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참아야지! 그래, 딸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뜯어고치려 하지 말자! 오늘도 득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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