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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l 05. 2020

기차여행은 처음이라 쩝!

오늘은 순둥이(우리집 반려견)와 첫 기차여행을 하는 날이다. 시어른 생신 때문에 시댁에 가는데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기차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를 했다. 막내도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했다. 다른 식구들은 전날 이미 시골에 내려간 상태다. 나와 막내 순둥이만 남았다.


우선 순둥이를 캐리어 안에 집어넣는 것부터 너무 힘들었다. 처음 캐리어를 접한 순둥이는 통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캐리어를 다 분해해서 겨우 안으로 집어넣었다. 캐리어만의 무게만도 꽤 무거웠는데 순둥이까지 들어가니 무게가 10kg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캐리어가 좀 부실해 보여 뚜껑이 열릴 것 같아 순둥이가 들어간 캐리어를 손으로 안고 들고 다녀야 했다. 물론 힘센 막내의 몫이었다. 염려대로 순둥이는 택시에서부터 낑낑거렸다. 마음이 약한 막내는 낑낑대는 순둥이가 불쌍하다면서 바로 꺼내어 안아주는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서 순둥이를 겨우 캐리어에 다시 집어넣고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데 막내는 계속 투덜댄다. 왜 차를 놔두고 기차를 타고 가느냐? 순둥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줄 아느냐? 순둥이 수명이 줄어들 것이다. 기차표 취소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엄마가 운전해서 내려가면 되지 않느냐? 막상 순둥이보다 막내가 더 찡찡거리고 나를 힘들게 하였다.


나는 순둥이도 적응해야 한다. 이렇게 적응해야 지하철도 타고 다니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반려견을 캐리어에 넣어서 비행기도 탄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설득했지만 막내는 계속 뿌루퉁해 있었다. 막내는 왜 자가용을 타지 않고 기차를 타서 순둥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냐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럼 엄마가 운전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떡하냐고 말했지만 막내의 마음속엔 순둥이뿐이었다.


드디어 기차 시간이 되어 순둥이를 안고 플랫폼으로 내려가야 했다. 원래부터 겁이 많아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걸 무서워하는 막내는 순둥이가 들어가 있는 캐리어를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못 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나도 덩달아 정신이 없어 기차를 탔는데 아마 좌석번호가 헷갈렸나 보다. 19번과 20번이었는데 29번과 30번 자리로 착각을 했다. 29번 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에게 기차를 잘 못 타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확인해보니 좌석번호가 19번과 20번이었던 것이다. 아주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해프닝까지 겪고 보니 시댁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몸속에서 진액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막내는 계속 불만에 툴툴거리고 순둥이는 무서워서 낑낑거리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혜민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화가 났을 때는 잠시 그 상황에서 떨어지라고. 화를 내는 자신을 바라보라는 말씀이 생각나 쏟아오르는 화를 겨우겨우 억누르고 마음을 진정했다.

캐리어 안에서 쌔근쌔근


순둥이는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자가용을 타고 갈 때는 불안해서 잠도 잘 자지 않더니 캐리어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아마 기차가 조용히 편안하게 별다른 진동 없이 가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포근한 담요까지 깔아준 캐리어 안의 자신만의 공간이 편안했으리라. 그러자 씩씩대던 막내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그런지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순둥이의 캐리어 적응에 혼을 빼는 상황에서 갓난아기를 아기 돌보시는 이모님께 맡기고 출근하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첫 애를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께 맡겨서 키운 나는 둘째와 셋째는 절대로 시댁에 맡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첫딸과 생이별을 한 나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딸을 보러 왕복 6시간이 넘는 길을 매주 달려갔다. 그러면서 아마 내 몸과 마음은 다 무너져 내리고 망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둘째와 셋째는 생전 얼굴도 모르는 이모님들께 맡겼다. 핏덩이를 어떻게 남에게 맡기냐? 시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사람들도 다 말렸지만 나는 강행했다. 어차피 좋은 이모님 만나는 것도 다 아이들의 복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복이 있어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서 지금은 건강하게 잘 자랐다.


단 3시간 동안 캐리어에 들어가서 받는 순둥이의 스트레스에 마음 아파하는 막내를 보면서 엄마는 너네 핏덩이를 떼어놓고 직장을 나갈 때 마음은 어땠을 거 같니? 라로 말하고 싶었다. 딸은 아마 이해 못 할 것이다. 아직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막내도 지금 나처럼 엄마가 되면 이해하지 않을까? 나의 이 마음을. 엄마가 얼마나 아프게 너희들을 키웠는지. 눈물 콧물 다 빼면서 키운 엄마의 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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