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에 잠을 통 이루지 못한다.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일찍 누워 보지만 잠은 오질 않는다.
수십 번을 뒤척이다 잠깐 잠이라도 들면, 새벽 두 세시에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정말 못할 노릇이다. 머리가 잠들지 않으니 항상 '스모그브레인' 상태다.
맑은 머리로 아침을 맞이한 게 언제였던가, 기억나지도 않는다.
밤새 얼마나 뒤척였는지, 침대 커버 끝이 다 벗겨져 있다. 언제 교체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어젯밤, 오늘은 잠 좀 잘 자보겠다며 침대 커버를 교체하고, 바삭바삭한 이불을 골라 새로 꺼내고, 배게 커버도 갈기로 했다.
그런데, 침대 커버를 걷다가 그만, 폴더 접듯이 이마를 침대에 콕 처박고 엉엉 울고 말았다.
아빠 생각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왈칵,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아낸다.
이 침대에, 아빠가 누웠더랬다.
지방 대학 병원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빅 3 병원은 다른 결과일 거라고, 급히 상급병원을 예약했다. 병원이 우리 집에서 그나마 가까워 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다. 생각해 보니 이사직후 잠깐 집에 왔다 가신 이후 거의 7~8년 만이다.
나는 화장실이 붙어있는 안방을 부모님께 내어 드렸었다. 사실 부모님은 침대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우리 집 안방에는 침대를 사용하고 있어서 괜찮을지 걱정을 좀 하긴 했다. 그래도 거실 화장실보다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안방 화장실이 낫지 않을까 했고, 부모님께 거실을 내어 드린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당연히 안방을 내어 드려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아빠는 많이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평생 바닥 생활을 해 오신 부모님께, 침대는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게다가 아빠는 안방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으셨다.
거실에서 자고 있던 나는, 거실 화장실을 사용하러 나오는 아빠를 보고 야심한 밤에 잔소릴 했었지.
아빠가 손님이냐고, 왜 손님처럼 안방 화장실 안 쓰고 거실로 나오냐고. 편하게 사용하시라고.
우리 아빠 참... 딸 집에 와서도 체면 차리신다. 그게 우리 아빠지.
나는 가끔 그때를 생각하며 '아빠도 참...' 하다가 눈물이 핑~ 돌곤 했다. 그런데, 어제 침대 커버를 교체하면서는 눈물이 핑~ 아니라 왈칵, 하고 쏟아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아빠생각이 가슴을 훅! 때리며 부서진 수도꼭지처럼 콸콸 눈물을 토해내게 만들 때는 감당이 되질 않는다.
나는 침대보를 부여잡고, 그대로 머리를 침대에 콕, 처 박았다. 누가 보면 참 웃겼을지 모를 폴더 자세로, 그렇게 나는 한동안 엉엉 울었다. 아빠... 아빠.... 중얼거리면서.
같은 시각, 거실에서 야구 프로그램을 보며 아들과 남편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집, 다른 공간에서 나의 슬픔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도 넘쳤다. 문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나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울음소리를 이불속으로 꾹꾹 눌러 뱉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무리 내 감정을 표현해도 남편과 아들이 같을 수는 없더라. 오롯이 아빠를 그리워하는 내 감정은, 그대로 내 몫으로, 그렇게 방해받지 않은 채로 아빠를 기억하고, 슬퍼하고 싶었다. 힘들어도, 그게 내 방식이고, 사랑하는 아빠에 대한 예의다.
한바탕 울고 고개를 들었더니 눈이 떠 지질 않고 머리가 띵~ 하더라. 아빠는 이용하지 않았던 안방 화장실로 가서 코를 팽~ 풀고 세수를 했다.
하.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다시 침대보를 벗기고, 새 침대보를 갈았다. 바삭바삭한 새 이불과, 배게 커버를 씌우고, 세탁할 이불을 한데 모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생각의 한 모서리만 비켜 나가면,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그 비현실적인 사건의 문턱을 넘어서 너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거 같아서, 나는.
마치 길 모퉁이에 숨어서 훔쳐보는 사람처럼 그렇게,
천천히, 한 부분씩, 아빠를 생각하며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쉬운 이별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