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 집에서 가늠해 보는 나라는 사람의 그릇 크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근처 빌딩 숲 사이 오래 다닌 순댓국집이 있다. 인근을 지나다 느끼하고 세련된 건 당기지 않고 간단하고 든든하게 식사를 챙겨야 할 때, 고민 없이 향하는 곳이다. 패스트푸드 뺨치는 속도는 기본, 그릇이 넘칠 만큼 푸짐하게 내장이 들어간 순댓국을 내준다. 가격은 야금야금 올랐지만 인근에서 만 원짜리 한 장 가지고 그만큼 알차게 속을 채워주는 곳은 없었다.
정수리를 쪼갤 듯 내리쬐는 한여름 햇빛을 피해 그 순댓국집으로 향했던 며칠 전. 점심 피크도 지났으니 한적하게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가게 문을 연 순간, 눈앞에는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피에 굶주린 좀비들이 아우성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이 한창이었다. 사방에서 순댓국을 달라고 야단이었다. 지금 당장 순댓국을 내 놓지 않으면 무슨 험한 일이라도 벌일 기세였다. 순댓국은 선지, 즉 돼지 피로 만든 순대가 주재료니 크게 보면 전혀 동떨어진 얘기는 아니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었는데도 땀에 절은 채 서빙하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일찌감치 영혼은 가출하고 그 자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잠시 밖으로 나가 차례를 기다린 끝에 테이블에 앉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순댓국이 나오자마자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사람들... 전문가 뺨칠 세심한 분석과 냉정한 평가. 그래 이건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 슬쩍 옆 테이블의 대화 속 흘러나온 단어들을 조합해 보니 답은 단순했다. 최근 유명 가수가 자신의 유튜브 콘텐츠에서 이곳을 단골집(정확히는 여의도에 있는 본점)으로 소개했단다. 하... 방금 그릇에서 꺼내 여전히 뜨거운 순대를 식혀가며 씹던 입에서 진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의도 본점의 번잡함을 피해 찾았던 곳. 물론 이곳도 본점 못지않게 사람으로 붐빈다. 그래도 점심 피크만 아니면 그나마 쫓기듯 식사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이 꽉 차는 곳이 됐다. 나만의 숨은 맛집은 아니지만 이렇게 유명인들이 한 번씩 언급하고 갈 때마다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초토화된 농경지 상태가 된다.
모든 그릇에는 담을 수 있는 양이 존재한다. 그 용량을 넘게 남으면 흘러넘치고 만다. 흘러넘친 음식은 테이블을 망치고, 먹는 사람의 기분도 망친다.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음식의 양, 친절하게 응대할 수 있는 직원의 에너지 양, 테이블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 부지런함의 양이 있다. 그런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밀려드는 손님을 수용하는 순간 음식의 맛은 무너지고 친절의 밸런스도 망가진다. 텍사스 소 떼처럼 달려드는 손님들이 기다릴까 봐 덜 끓은 순댓국을 내 올 수도 있고, 덜 치워진 테이블로 손님을 안내할 수도 있다. 소문을 듣고 처음 이곳에 온 손님들의 기대치는 에베레스트산보다 높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일부러 시간을 내서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의 입에 평소 컨디션과 전혀 다른 순댓국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뻔하다. 오래 발걸음이 닿았던 단골들도 달라진 분위기와 맛에 서서히 발길을 끊는다. 주인의 티타늄보다 단단한 결심이 없다면 맛집은 그렇게 망가진다.
맛집에 굶주린 좀비들이 가득한 혼돈의 순댓국집 한가운데에서 내 그릇을 생각해 본다. 예민 떨지 않고, 짜증 내지 않고, 신경질 부리지 않고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고, 제 실력대로 일을 할 수 있는 내 그릇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왜인지 눈앞에 식어가는 순댓국 뚝배기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유명세라는 지독한 홍역을 치르고도 변함없이 맛을 굳건히 지켜낸 맛집에 답이 있다. 순간의 이익을 좇아 무리하지 않기. 길게 보고 멀리 보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자신의 방식과 속도로 걸어가는 것, 그것뿐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그 단순한 방법을 외면하고 빠르고 쉬운 방법만 찾다 보니 이렇게들 망가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어렵게 쌓고 쉽게 무너지기를 반복해 왔던 내 눈에는 스러져가는 맛집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