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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왜 보복하지 말라고 하세요?


층간소음에 관한 내 글을 읽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을 것이다. 실질적인 해결 방법이 없으면 보복이라도 해서 이웃집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건만, 무슨 내용이 죄다 견디고 참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몸에서 사리가 나올 만큼 참고 참다 못 참겠어서 인터넷을 뒤졌건만 애써 내 시간 투자해 찾은 방법이 배려와 양보라는 형식적인 소리라니 라는 생각에 화가 날지 모른다. 나 역시 공감하는 바이다.     


오랜 시간 층간소음에 시달리면서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봤다. 시도를 하면서 느껴지는 건 아래층은 위층에 무력(無力)하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짐승이고, 공포가 이성을 집어삼키는 시대라면 층간소음 해결은 어렵지 않다. 온갖 진상을 다 피워서 위층을 쫓아내면 그만이다. 헌데 우리는 사람이고, 이미지가 있으며, 요즘 같은 SNS 시대에 말 한 번, 행동 한 번 잘못했다간 평생 미친놈으로 낙인이 찍힌다.     


한국은 자력구제의 범위가 굉장히 좁은 국가다. 상대가 칼을 들고 덤벼 들어도 더 긴 물건으로 상대를 때리면 내가 폭력행위를 한 게 될 만큼 스스로를 보호하는 걸 엄격하게 막고 있다. 그 대신 공권력의 힘이 강하다. 국민을 위협에서 보호해 줄 만한 힘이 국가에 있기에 자력구제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다만 공권력도 법이 있어야 실행될 수 있다. 현재로는 층간소음과 관련된 강제성을 지닌 법 규정이 없다.     


층간소음 소송을 걸어도 측정부터 소송까지 1년이 넘는 기간을 견뎌야 한다. 그 사이에 관계가 틀어진 이웃이 벌금 낼 각오로 실컷 층간소음을 저지르면 견디기 힘들다. 여기에 위층이 소음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유지에 들어가려면 수색영장이 필요한데 층간소음 문제로 내줄 리가 만무하다. 그랬다간 대한민국 아파트의 8/10은 경찰이 한 번씩 발자국을 찍게 된다.     


보복은 최후의 수단이다. 마음의 분노와 증오가 더는 견디지 못할 때 보복을 택한다. 헌데 이 보복을 해도 상대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히려 보복에 대응한다면 그 순간 정신은 버티지 못한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 여길 때, 그래서 이 지옥이 끝나지 않을 거 같다 느껴질 때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고 죄책감 없이 살인으로 이어진다.     


보복은 살인으로 가는 문에 발을 들인 것과 같다. 보복이 성공한다면 발을 뺄 수 있지만, 실패하면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대한민국의 집값과 이사비용을 생각했을 때 층간소음 때마다 집을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이 더 보복에 대한 마음을 키우게 만든다. 힘든 상황이지만 남을 망치고자 하면 자신도 망가질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이다. 보복으로 현재도 미래도 망치기보다는 손해를 보더라도 이사를 택하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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