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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장편. 문학동네. 24.

by 묻는 사람 K Oct 28. 2024

하나, 나는 잘해 내려다 되레 일을 그르친 적이 있다.


 한강의 시린 고통, 황정은의 쓸쓸한 공허 그리고 김애란의 명랑한 슬픔. 이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지만 또한 같은 이유로 그들의 글을 읽기란 쉽지 않다. 모두 다른 속도와 방법으로 읽어야 하고, 더러는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김애란의 두 번째 장편이 십여 년의 간격을 두고 나왔다고 해서 주저 없이 사두었다. 어차피 읽을 테고, 아무 판단 없이 좋아할 것임에도 상 책장을 펼치려니 주저하게만 됐다.


둘, 나는 낯선 땅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단둘이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십여 년 시간 부담감이었을 거라는 염려는 오롯이 내 것이었다. 난데없는 감정 때문에 나름의 준비가 필요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이라는 걸 안다. 내 익숙지만 설명하기엔  적당한 낱말조차 떠오르지 않아, 차마 문장 되지 못한 그 복잡함을 말이다.


 그 순간 그랬다.  가능한지 불가능인지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손에 닿을 듯 말듯한 곳에  조각 희망이라도 남겨둔다면 안간힘을 쓸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미신일 수도 종교적 신념일 수도 허망한 바람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확고했다고만 말해야겠다. 그 복잡함을 설명하기에 내 어휘력이 너무도 빈곤하다.


셋, 나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기억을 잃어가는 시어머니에게서 시작되었다. 말이 거칠어지고, 행동이 사나워지고, 표정이 사라지 때였다. 이전부터 진행되었을 테지만 설마 했다. 둔한 사람마저 알 수 있을 만큼 진전되었을 때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했다. 지만 희망을 품을 만큼 대화가 가능한 순간이었던가. '막내아들 보러 가려면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 하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몰아세웠. 6개월 뒤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지금부터 노력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의사도 말했노라고 했다.


넷, 나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첫 번째 거짓말 성공으로 자신만만해진 나는, 아버지에게도 유사한 방법을 썼다. "아빠가 2kg만 찌우면 수술이 가능하대."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 건 아빠가 노력하지 않는 거야. 충분히 수 있대." 수술받고 회복되면 다낭 여행 가자. 항공권도 끊어둘 거니까 실망시키지 마." 허둥대고 갈팡질팡 하 두 번째는 실패로 끝났다. 2kg  량도, 동네 산책도, 다낭 여행도, 포항 바다도, 강원도 비빔밥도 아무 소용없었다.


 시아버지에게는 바티칸을 약속했다. 체중이 줄어들수록 거리를 좁혀 함께 갔던 패낭으로, 해남으로, 바다낚시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니 조금 더 힘내보시라고 부탁했다가,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채근했다가, 이 만큼은 해볼 수 있으면서 왜 그러냐고 원망했지만 세 번째도 실패로 남았다.  


다섯, 나는 음식에 침을 뱉은 적이 있다.   


 그들과 나만 아는 부탁, 협박, 애원! 우리의 비밀. 나는 누구에게도 절박하고도 공허한 약속을 남발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모든  나를 위한 거라서, 들키고 싶지 않다. 원하지 않는 이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거짓말뿐이다. 이토록 미숙하고 조악하고 형편없는 방법밖에는 떠오르지 않다. 묻어 둔 비밀을 조심스럽게나마 꺼낼 수 있었던 건 <<이 중 하나는 거짓말>> 덕분이다.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부끄러운 진실을, 거짓에 기대 털어놓는다.



" 규칙은 간단해.

담임이 여유로운 태도로 주위를 둘러봤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해. 소개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어떤 게 거짓인지 알아맞힐 거고 그럼 나머지 네 개는 자연스레 참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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