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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고, 그냥 쓴다.

에브리맨. 필립로스.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9.

by 묻는 사람 K Nov 09. 2024

 반복된 말과 글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해 함부로 요약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설령 미화하려는 의도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개 압축된 표현은 믿기 어렵고, 성의도 없으며, 폭력적일 때가 많다. 무엇보다 누구의 삶도,  줄로 요약될 만큼 간단하지 않다.


 선하거나 악하다고, 숭고하거나 타락하거나, 운 좋거나 나쁘거나, 정의롭거나 부패하다고 손쉽게 판단 내릴 수 없다. 외할아버지께서 늘 그러셨듯이 "내 인생, 책으로 쓰면 열두 권쯤 될 거"라는 말씀에 공감한다. 사람들에게 그 열 두권 어딘가에서 펼쳐 이야기를 듣는 게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직업병일 수도 있겠다. 나는 조현병 진단받은 환자의 말이 모조리 부정되는 것을 목격했고,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의 호기심이 실수이거나 산만함으로 치부되는 것을 목도했으며, 한 젊은이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조증이라는 이유로 펼쳐지지 못하고 사장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열명의 우울증은 열 개의 형태를 갖는다. 저마다 다른 자극에 무너지고 각자의 방법대로 일어서고, 몸부림치며 적응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모두 우울하거나 실패자가 아닌 것처럼 오롯이 혼자만의 능력과 실력으로 성공한 사람 역시 매우  드물다.


 다섯 살 아이의 삶에도 희로애락이 있고, 질풍노도의 청소년에게도 평온과 만족이 있듯이 모든 노년의 삶이 단조롭고 지루한 건 아니다. 그들만의 격랑과 생동감 있, 피할 수 없는 괴로움, 슬픔, 고통이 있다. 그리고 간절하게 피하고 싶은 수치가 있다.


 필립로스의 <<에브리맨>>에서는 평범한 개인 삶 속에 녹아있는 욕망과 감정, 고독과 덧없음 예리하고 유쾌 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 저자의 글 위안과 감동을 는 이유는 복잡함을 외면하지 않고 우회하지 않으면서도 정돈된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책이 좋은 이유를 투박하고 거칠게조차 표현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월요일 강의에서는 반복 잔소리 대신 에브리맨 일독을 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심리 평가 보고서를 쉽게 썼다면, 의심하세요! 그렇게 쉽게 읽히는 사람, 없어요. 함부로 판단하거나 압축하지 맙시다!"  월동준비는 필립로스로 해야겠다. 바람이 한층 차가워진걸 보니 맥없이 가을이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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