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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Nov 06. 2021

헤겔을 읽던 시간 : 1997년

[정신현상학](1806) - 게오르그 헤겔

헤겔을 읽던 시간 : 1997년 가을

- [정신현상학](1806), G.W.F. Hegel,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97.





1.


"말하자면 이제 '의식'은 오직 자기 자신을 음미하고 검증하는 것이라고 할 때 바로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는 순수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기만 하면 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의식'은 한편으로는 '대상'의, '대상'을 향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만 관여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 G.W.F. Hegel, [정신현상학], <서론>, 1806.



그 해 여름이 더웠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해 12월이면 전역이었고, 전 해 가을에는 생전 처음 '사랑'이란 걸 시작한 터였기에, 스물다섯 내 청춘은 가장 뜨거웠을 거란 기억만이 남은,

1997년의 늦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독일 사변철학을 완성했다는 19세기 '객관적 관념론' 철학자 헤겔(Georg W. F. Hegel)의 [정신현상학]을 사서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의 수신인 미선이는 이제 더 이상 나의 학교 후배가 아니었다.

1996년 10월, 상병 진급휴가 복귀 전날 새벽까지 손을 잡고 함께 별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구박하고 골려먹던 대학 2년 후배였다. 하지만 '취중진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한 술취한 군바리의 사랑고백에 흔쾌히 응해준 그날 밤부터 미선이는 나의 실질적 '첫사랑'이 되었다. 그건 사실, 두 사람이 동의한 '객관적' 현상부터의 이야기였고, 나의 '주관적' 의식 속에서는 아마도 오래 전부터 그녀가 줄곧 떠나지 않은 터였다. 신병훈련소에서 빡세게 구르거나 자대배치 후 야간보초를 설 때 온통 내 머릿속에는 '자주국방'이나 '멸공방첩'이 아닌 소주 한 잔과 그녀 뿐이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98


아마도 그렇게 싫던 군대가 아니었다면 헤겔 철학의 원전인 [정신현상학] 따위는 읽을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게다. 헤겔의 거꾸로 물구나무 선 '변증법'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유물변증법)'으로 150년 전에 바로 세워진지 오래고,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으로 완성된 19세기 독일 사변철학은 부르주아의 유산일 뿐, 진정한 철학인 '유물론'의 유산은 엥겔스에 의하면 이미 19세기에 독일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이 물려받은지 오래였다. 엥겔스는 아예 내친 김에 1888년에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1분에 5백타 이상 치는 한글타자 실력으로 운좋게 사령부처 행정병 보직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옆 공병대로만 갔어도 나는 공구리 치고 삽질하며 짬밥 더 먹기 위한 전우들과의 생존투쟁에 치어 철학책 따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시 돌아보면 인생이란 '우연'으로 점철된 거 아니면, 헤겔의 아이였던 '의식'이라는 꼬마가 '이성의 간지(奸智:간교한 지혜)'에 의한 길고 긴 여행을 통해 '절대정신'이라는 궁극의 '일자(一者)'를 만나는 '필연'의 과정일 터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며,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썼다는데, 그에게 '현실'은 '이성의 간지'에 의해 '절대정신'이 궁극에 실현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 [정신현상학]으로 시작된 그의 방대한 세계관은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으로서 [대논리학]으로, '법철학'과 '골상학', '미학'과 '역사철학'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순환되고 확장되었다. 어쨌든, '현실'이란 그게 무엇이었든 스물다섯의 한 젊은이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중년의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세상 모든 철학적 이치를 다 안다고 자부하던 이십대의 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의하면 이제 겨우 '2장' 자기의식의 즉자성을 지나 대자적 관계에 접어들어 '이성'의 '3장'에 들어선 '의식'이라는 작은 아이였다.



헤겔이 주저 [정신현상학]을 탈고한 때는 그가 독일에 나타난 나폴레옹을 보고는 "저 분이야말로 말을 탄 '절대정신'이다"라고 일갈한 그날 밤이란다. 오래전부터 철학의 주체인 '의식'이 절대적 일자로서 '절대정신'을 만나 그야말로 신과 같이 절대적인 '학(學)적 지식'이 되는 철학적 여정을 고민했을 헤겔이 그 일단의 철학 프로그램을 후다닥 완성한 순간이었다. 18~19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근대주의'를 접했던 당대의 혁신적 '모더니즘' 철학자 헤겔에게 지적 혁명은 철학과 종교가 결국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성'적 논증이었다. 헤겔로 인해 철학은 '주관적 관념론'을 벗어나 세상의 운동원리인 '변증법'과 일치하는 거대한 '객관적' 세계관이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에 의하면 '거꾸로 선' 관념론자였지만.

[정신현상학]으로 사상의 개관을 마친 헤겔은 '의식'이 아닌 '개념'의 동일한 여정을 그리는 [(대/大)논리학]을 완성하고 또한 마지막에 같은 논리로 돌아가는 '역사철학'까지 진격하는데, 과연 이 거대한 일관성의 철학자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서양 철학사에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대(大)사상가였다.



나중에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기를 넘긴 장대한 '5년 연애'를 얘기하는 나에게 "웃기지 말라. 3년도 안된다"고 말하던 그녀는 나름의 셈법이 있었나 본데, 아무튼 새롭게 만난지 10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생뚱맞게 '100일 기념(?)'으로 미선이는 [정신현상학] 두 권을 소포로 부치면서 "성경책만큼이나 빡빡한 이 두 권의 책을 보기에는 100일은 커녕 1000일도 모자랄 듯..."이라고 앞 속지에 썼다. 아마도 '니 제대할 때까지 읽는다고 다 보겠느냐'는 의구심이었겠지만, 미선이는 결코 사령부 민심처 행정병의 남아도는 시간까지는 알 수 없었으리라. 마르크스가 엄청 욕해대면서도 영향을 크게 받았고 넘어서야 했던 철학의 큰 산,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나는 1차 세계대전의 전야였던 1914년의 좌파 사회민주당 의원들마저 '조국'의 제국주의 전쟁공채에 찬성표를 던지던 암울한 유럽 정세에서의 레닌이 하라는 혁명은 하지 않고 바로 앞 선배인 마르크스처럼 대영도서관에 짱박힌 채 헤겔의 [대논리학]을 읽고 [철학노트]로 정리했을 그 마음으로 열심히 줄치고 메모하며 읽었다.



2.


"이제 '이성'은 그 자신이 곧 전체를 포괄하는 실재라는 데 대한 확신이 진리의 단계로까지 고양되며 또한 자기자신을 바로 자기의 세계로, 그리고 다시 이 세계를 자기자신의 세계로 의식하는 가운데 스스로 '정신'이 된다... 이제 (즉자대자적 존재로서의) '의식'으로서의 구체성을 띠면서 동시에 스스로 자기자신을 표상하는 즉자대자적 실재는 다름아닌 '정신'인 것이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은 사물의 '현상'적 흐름을 추적하는 서술기법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필연'이라는 '이성의 간지'를 부리는 '절대정신'은 절대로 '의식'의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지옥에서 단테를 안내하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도 같이 "순수한 방관자"(같은책, <서론>)이자 관찰자인 헤겔의 손을 잡고 높은 곳에 서서 '의식'(1장)이라는 작은 아이가 스스로를 깨닫는 즉자적 '자기의식'(2장)을 거쳐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이성'(3장)으로 발전하는 현상의 궤적을 묵묵히 따라간다. '의식'에서 '이성'으로 성장하는 이 철학적 아이는 '정신'(3장 6절)과 '종교'(3장 7절)를 거치며 '절대정신' 또는 '절대지'를 만나는데, 이 궁극의 단계에서는 '이성'이라는 아이 자신이 곧 '절대이성'이 된다. '즉자'(의식)-'대자'(이성)-'즉자대자'(절대정신)로 완성되는 헤겔 철학은 후대에 의해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도식화되었고 이러한 완성의 체계를 비판한 마르크스는 물질로부터 시작하는 유물론을 역시 변증법적으로 완성하나 결국 말년의 주저 [자본론]에서 그렇게 비판하던 헤겔의 '현상학'적 서술방식을 따른다. 즉, '상품'이라는 작은 아이가 '생산'과 '노동착취', 그리고 '잉여가치'와 교환 및 확대재생산 등의 형태와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생산'이라는 거대한 체제의 비밀을 폭로하는 과정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서술체계다.

19세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방식으로 헤겔을 뒤집었고, 20세기 레닌은 그런 헤겔의 [대논리학]의 '개념 운동'을 통해 역설적으로 헤겔의 '유물론'적 측면을 발견하면서 [철학노트]를 작성했다. 혁명을 준비하던 레닌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물구나무 선' 철학 스승 헤겔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스물다섯의 나 또한 포천의 군부대 구석에서 하라는 '자주국방'은 아랑곳 없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팠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73



3.


"실제로 지(知)의 근원을 이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적작용을 하는 보편적 요소일 뿐더러 이것이 궁극적 의미에서는 다름아닌 '절대정신'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절대정신'은 신앙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순수의식이나 혹은 사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서만 본다면 오직 절대적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자기의식'으로 보면 이것은 바로 자기에 관한 지(知)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이십대 초반의 나는 '소설가'를 꿈꾸었고,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으나, 사실 '연애'를 하고 싶었다. 입대 후 일년 간 짧은 머리카락만 쥐어 뜯다가 휴가 때 구박은 했지만 귀엽게 아끼던 후배 미선이한테 다가갔고 전역을 하고도 그 후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상처만 주다가 결국 헤어졌다.

아프기도 했고 당시 나로서는 어쩔 수 없기도 했던 미안함이 가장 크지만, 다시 그 때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해도 나로서는 더 잘해볼 도리는 없었을 게다.


그 당시 나의 '절대정신'이었던 그녀는 결국 그녀를 통해 투영했던 나 자신이라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식'이 타자를 만나 대자적 관계를 맺으며 '절대정신'으로 성장하는 잊지 못할 청춘의 과정.

미안함에도 가끔 그 때가 문득 떠오른다면, 그 당시 모자랐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상념이리라.



헤겔을 읽던 시간,

1997년 가을의 이야기다.


***


1. [정신현상학](1806), G.W.F. Hegel, 임석진 옮김,<지식산업사>, 1997.

2. [자본론] 1권(1867), K. Marx,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1996.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철학노트](1914), V.I. Lenin,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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