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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Nov 24. 2023

[아주 짧은 소련사](2022) - 실라 피츠패트릭

- '우연'한 혁명이란 없다

'우연'한 혁명이란 없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2022.





"나는 인류역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삶이 그렇듯이, 인류역사에서 불가피한 사건은 거의 없다고 본다. 우연한 만남, 세계적인 대변동, 죽음, 이혼, 세계적인 유행병을 제외하면 상황은 항상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다. 더욱이 소련의 경우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과 상대해야 한다. 이들은 특정 역사단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략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적, 경제적 환경을 인간의 계획에 따라 개조해야 한다는 사상에 투신한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은 1917년 10월에 권력을 잡고 자신들도 놀랐다. 이것은 당시 상황에 대한 그들의 이론적 분석과 반대로 거의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서론 : 가장 짧은 역사(1922~91년)>, 실라 피츠패트릭, 2022.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인류역사는 경제관계의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정치와 문화 등 상부구조의 변천과 이행과정이다.

즉,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사유재산'과 '생산수단'의 소유형태를 나타내는 생산관계가 우선 변화하고, 그에 따라 제도와 관념 등의 변화가 뒤따른다.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은 생산력 발전의 주요동력인 생산수단과 자본을 소수의 지배계급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특수한 생산관계의 물적토대가 형성된 후에,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와 법, '사유재산'을 신성시하는 종교, 체제순응 노동자들을 대량양산하는 교육 등 제도와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유물론에 의하면 만물의 변화와 발전의 변증법을 기반으로 특정 역사단계는 해당 '사회구성체(경제적 하부구조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내적 모순에 의해 다른 역사단계로 이행하는 '필연성'을 지닌다.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토대의 내적 모순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소유' 간의 모순이다. 즉, 생산의 '사회성'과 생산수단 소유의 '소수배타성'은 상호모순의 질곡에 빠진지 오래다. 이는 '공동소유'와 '집단소유'의 '경향성'을 지닌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73


다만,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이 아니기에, '필연'적인 '법칙'으로 정립될 수 없고, 특정한 방향과 흐름을 예측하는 '경향성'으로 표현된다.

내가 보기에 역사의 '필연성'과 '경향성'은 같은 말이다.


그럼에도, 인류역사 속에서 수많은 별처럼 명멸해간 위인과 인물들은 중요하다. 그들이 없다면 역사무대는 주인공 없는 연극이 된다. 그러나 '우연'하게 등장한 인물의 위업과 사건들에는 반드시 배경이 있다.

나는 이 배경을 역사의 '경향성'으로 본다.


이렇게 역사의 '우연성'과 '필연성(경향성)'이 조화되기를 바라던 중에 '우연'하게 호주 역사학자 실라 피츠패트릭의 책을 읽게 되었다.



소련과 현대 러시아 역사를 연구하는 실라 피츠패트릭은 [아주 짧은 소련사]라는 책을 통해 1917년 10월 러시아소비에트혁명부터 레닌의 사후 스탈린의 승계 및 제2차 세계대전, 국제적 연쇄혁명의 불발로 인한 소련의 '일국사회주의' 및 계획경제 발전 과정, 스탈린 이후 소련의 몰락까지 "아주 짧게" 서술한다.

저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의 산물인 소련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에 입각하고 있지는 않다.


그녀의 역사관을 역시 '아주 짧게' 요약하면,

역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없는 것처럼, '역사는 우연성의 연속'이다.


저자는 "소련 역사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면서, 이는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보편적인 역사해석 도구를 갖췄다는 혁명가들의 확신에서 비롯된다"(같은책, <서론>)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은 역사유물론을 통해 세계를 본다. 그러므로 특정 정치경제 체제는 '필연'적으로 붕괴되며 새로운 체제로 이행한다고 믿는다.

칼 마르크스의 제자들인 이 혁명가들은 이러한 체제이행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자본가와 다수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첨예해지는 자본주의 체제는 '필연(경향)'적으로 다른 체제로의 이행을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과학적 사회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와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비롯한 이 과학적 예언가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 단지, 이행의 '경향성'만을 보았다.

여기서도 역시 역사의 '필연성'은 '경향성'의 다른 말이다.


실라 피츠패트릭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즉, 역사는 그저 '우연'한 사건의 연속인 것이고, 역사의 '필연'을 믿는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의 과학적이고 굳은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획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체제이행의 '필연'적 경향성'을  믿고 시작했으나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이 고도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러시아에서 실제로 1917년 10월에 혁명이 성공한 후 이들 혁명가들조차도 놀랐고, 내친 김에 자본주의 이후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들의 예측과 계획과는 달리 소련은 멸망했다.

결국, 소련역사를 보아도 역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과연,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러시아에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이라는 '우연'한 '세계적 대변동'이 없었더라도 1917년 10월 소비에트혁명이 즉각 가능했을까.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슬로건을 바꾸고 집요하게 권력투쟁을 했던 레닌이라는 '우연'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볼셰비키 혁명이 가능했을까.

오랜 내전과 내부 권력투쟁으로 취약했던 스탈린의 리더십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또 한 번의 '세계적 대변동'이 없었다면 수십년 간 그리 공고할 수 있었겠는가.

1930년대의 중앙계획적 소련경제정책이 고유가라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어도 그만큼의 비약적인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외에도 소련역사에서 '우연'한 인물과 사건들로 인한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역사전개를 서술하며, 이런 "우연한 만남과 세계적인 대변동"이 없었다면 "상황은 항상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다"(같은책, <서론>)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자본주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계급모순과 19세기말 러시아 대기근에 대해 무능했던 차르권력, 민중들을 대거 전쟁터로 내모는 현실에서 다수 민중들이 혁명을 선택하는 것은 '필연'이다. 계급투쟁과 억압적인 독재권력,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벌인 세계대전은 인류역사에서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 서유럽처럼 의회민주주의란 '우연성'이 혁명의 '필연성'을 막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주주의' 또한 분명한 인류역사의 '필연'적 '경향'이고, 러시아의 특수한 억압적 상황에서의 혁명 또한 '필연'이었다.

레닌이 아니었더라도 위와 같은 억압적인 러시아의 조건과 정세가 변함없다면 다른 지도자가 혁명을 이끌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스탈린의 경제정책과 농업집산화는 이후의 중국공산당도 거의 그대로 따랐으며, 이념만 뺀다면 우리나라 1960~70년대 계획경제와 다르지 않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실패한 농업정책은 역시 '필연'적으로 다수 농민들을 농토로부터 쫓아내고 도시노동자가 되도록 내몰았다. 이 또한 생산력 발전을 도모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경향성'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경제발전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대 국가의 의무도 역시 '필연'이었다. 장하준 교수가 주장했듯, 전세계 자본주의 발전에서도 계획경제는 '필연'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동력은 다수 민중이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9

https://brunch.co.kr/@beatrice1007/242


다수 민중의 막강했던 '이중권력'인 소비에트에게 권력을 집중하며 혁명을 성공했고 다수 민중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역시 다수 민중들의 열망에 부합하지 못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련은 결코 '우연'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다수 민중들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체제나 권력의 몰락은 다시 강조하건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필연'인 것이다.

소련도 그러했고, 그 이전의 제국과 왕조 시대에도 그러했으며,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또한 이러한 역사의 '필연'적 '경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나는,

다수 민중의 역사는 '필연성(경향성)'의 역사로 규정하며, 다음 책으로 중국 역사가 이중톈의 [삼국지강의(品三国)] 2권을 펼친다. 수년 전 1권을 읽을 때는 미처 몰랐으나, 2권에서 이중톈 선생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 관점에서 '조건과 정세'에 기반한 역사해석을 선언하고 있다.

[삼국지]의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사뭇 궁금하다.

삼국시대 등장한 '우연'한 영웅들의 '혁명' 또한 '필연'이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우연'한 혁명이란 없다.


***


1. [아주 짧은 소련사(The Shortest History of the Soviet Union)](2022), Sheila Fitzpatrick, 안종희 옮김, <롤러코스터>, 2023.

2. [E.H.카 러시아 혁명 1917~1929](1979), E.H.카, 유강은 옮김, <이데아>, 2017.

3. [1917 러시아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1976), A.라비노비치, 류한수 옮김, <책갈피>, 2017.

4. [러시아혁명사](1932), L.트로츠키, 볼셰비키그룹 옮김, <아고라>, 2017.

5. [혁명의 러시아 : 1891~1991](2014), Orlando Figes, 조준래 옮김, <어크로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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