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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Nov 15. 2024

[시간을 파는 상점](2012) - 김선영

- '시간'을 사는 건가, 파는 건가

'시간' 사는 건가, 파는 건가

-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2012.




'시간'에 대한 관념에서,

당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93


대략 2  아버지가 폐암 말기 선고   1년만에 돌아가신 후부터였던  같다. 사실 당시에는  몰랐다. 작년에 아버지의 남은 형제인 백부와 숙부가 아버지를 따라가셨고, 올해 어머니가 당뇨쇼크로 오랜만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시고 뇌졸중으로 오래 누워계시던 장인이 돌아가시는 과정이 누적되면서 나는 '시간'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집 마당 지킴이였던 알래스칸 말래뮤트 에코마저 요단강을 건너갔다.


일련의 '죽음'에 대한 관념이 3년 동안 나를 '시간'의 깊은 심연에 빠뜨렸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44


원래는 아버지 세대의 '죽음' 그곳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어머니 세대, 하다못해 마당을 지키던  개까지 가세하는 과정을 반추하면서, 마치 '죽음' 필연적 종착점을 향해 직진하는 중세적 시간관으로부터 나는 벗어나고자 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68


그러나  후로도  개월  나는 '시간'에게 잡혀 있었다.


아니 사실 내가 '시간'을 붙잡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객체적으로는 '죽음'을 늘상 연상하는 83세의 노모가 내 곁에 계셨고, 주체적으로는 미욱한 솜씨라도 매주 글을 끄적여대야 내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나를 잡았고,

내가 '시간'을 잡았다.


이제 슬슬 '시간'을 조금씩 놓고 싶은 마음에 집어든 책이 김선영 작가의 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2012)이었던 거다.




"우리가 맞이하는 시간이 늘 처음인 것처럼."


소설의 첫 문장이 아니고 마지막 문장이다.


반복하는 듯 아닌 듯 흘러가고 다가오는 '시간'에 관한 작가의 결론인 것이다.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시간을 파는 상점]은 '백제'라는 이름의 소방관 아버지를 일찍이 먼저 떠나보내고 환경시민단체 활동가인 어머니와 둘이 사는 '백온조'라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의 짧은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백제'의 딸 '온조'의 시간은 1학년부터 2학년 가을까지 약 1년을 두고 있으되 주인공의 삶에서는 결코 짧다고만 볼 수 없는 '시간'에 관한 장기적인 성장과정으로 볼 수 있다.


2020년대 들어 '편의점'이든 '골동품서점'이든 대유행하기 전이었던 2012년에 일찍이 '상점'을 제목으로 다룬 소설인데, 고등학생 백온조의 알바가 '시간을 파는 상점'의 정체다.

일종의 심부름센터 같은 '상점'을 인터넷 카페에 개설하고 의뢰인들의 '시간'을 대신해서 써주는 일을 익명 및 비밀보장의 조건으로 맡아서 처리해주는 거다.


학교에서 발생한 우연한 도난사건에서 장물을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첫 번째 의뢰건부터 시작하여 할아버지, 아버지와의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이어주기 위한 일, 죽은 보육교사의 생전 의뢰를 받아 남은 아이들에게 한 통씩 천상의 편지를 몰래 전달해주는 일, 정식의뢰는 아니지만 절친의 짝사랑을 연결해주는 일 등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시간'을 사색하고 통찰한다.


'사간을 파는 상점' 주인장 백온조의 익명은 '크로노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절대적 '시간'을 관장하는 거인족 타이탄이면서 제우스 형제자매들의 아버지다. 한편으로 '크로노스' 백온조가 느끼는 '시간'은 '카이로스'에 가깝기도 하다. 앞머리는 길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인, 앞에서 올 때는 잡아야 하고 또 잡기도 쉽지만,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대머리라 잡을 수 없는 '기회의 시간'이다. '카이로스'이기도 하고 영어 'occasion(기회)'의 어원인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이기도 하다. 또 다른 버전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제 때에 잡지 못하면 어떻게든 그 댓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다른 '기회' 또는 '시간'이 또 올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지나가 버린 그 '시간'과는 다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64


그래서 [시간을 파는 상점] 보는 모든 '시간'  '처음'이다.


객관적으로는 '나선형'으로 진보하는 근대적 시간관을 믿는 내가, 주관적으로 최근 3년 동안 '죽음'의 필연을 형해 '직선형'으로 흐르는 중세적 시간관에 빠진 것처럼,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 주인공 '크로노스'가 일련의 성장을 통해 '카이로스'의 시간관을 정립하는 과정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청소년의 성장소설이기에 다소 유보적이기도 하다.




"온조는 지금 맞이할 이 '순간'을 먼 미래의 어느 '시간'에 맡겨두려 한다. '시간'이라는 것이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다.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치 않는다면."

- [시간을 파는 상점], <미래의 시간에 맡겨두고 싶은 일>, 김선영, 2012.



중년인 나도 이제,

'시간'에 관해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둬야겠다.


타인의 '시간'을 돈을 받았으니 파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본인의 '시간'을 지불하면서 도리어 타인의 '시간'을 사는 것인지 모를 시간 상점 주인 백온조처럼,

'크로노스'의 관장 아래 무시로 흘러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나를 잡고 있는지, 아니면 도리어 내가 잡으려 하는지를.


내 생각엔,

'크로노스'의 '나선형 시간'은 나를 잡고 있지만,

'카이로스'의 '직선형 시간'을 잡으려 하는 건 오히려 나인 것 같다.


그러니 굳이 이 '시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려 한다.


'크로노스' 명령에 따라 지금 지나가버린  '카이로스' '시간' 아쉽게도 뒤통수가 대머리라 잡을 수가 없겠지만,  다시 찾아올 다른 빛깔의  다른 '카이로스' 또는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  '시간'  앞머리를 잡아둬야겠다는.


내가 맞이하는 모든 '시간'은 항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시간'을 기꺼이 지불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귀하게 사야겠다.


나의 '시간'을 팔아,

소중한 이들의 '시간'을 사는 상점처럼.


https://brunch.co.kr/@beatrice1007/273


***


-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자음과모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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