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진 Dec 11. 2023

나의 시크릿 펜트하우스

아주 작은 펜트하우스 인테리어 1


한때 나는 ‘시크릿’ 일타 강사였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탄핵 대통령의 대사로 정점을 찍었던 바로 그 ‘시크릿’ 말이다. 이른바 ‘끌어당김의 법칙’은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서로 정보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유사한 정보 신호에 끌려 오게 되어 있다는 가설이다. 이론상, 간절히 바라면 안드로메다 은하 저편에서 운행 중인 은하철도 999를 호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999호를 부르진 못했지만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제법 이 비법의 효험을 본 사람이었다. 베스트셀러 <시크릿>이 출간되기 한참 전이었지만, 나는 거의 유사한 발상들을 신약성경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이 남긴 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미국 대평원의 수우 부족이나 체로키, 이로쿼이 연맹 등 여러 부족들도 ‘위대한 신비’가 주관하는 끌어당김의 힘을 믿었던 것이다.


중2 때 다락방에 앉아 나는 수십 가지의 소원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여러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거의 다 이룰 수 있었다. 대충 그런 얘기를 <시크릿>이 한창 유행하던 군 장교 시절에 신병교육을 하면서 심심풀이로 떠들었다. 그런데 그만 그게 대박이 나버린 것이다. 여기저기 부대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여, 1년 내내 주야장천 시크릿 얘기를 하며 철원 일대의 온 부대를 돌아다녀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의 최고 지휘관인 사단장도 <시크릿>의 신도였다. 이래저래 위대한 신비가 깔아 둔 판이 아니었나 싶다.


오래전, 철제 프레임 침대 한 칸이 가진 공간의 전부였던 나는 이 사진들을 머리맡에 두고 매일 잠들었다

그렇게 순회강연을 하던 무렵에 애독하던 잡지 ‘엘르 데코레이션’에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다. 조심스레 가위로 오려서 GOP 생활관의 침대 머리에 붙여놓고 매일 밤 함께 잠들었다. 파주에서도, 연남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푸른 잔디가 깔린 중정이 있고, 거실 소파에 기대 바라보면 멀리 탁 트인 하늘 위로 구름이 가득 펼쳐진 집이었다. 대충 봐도 수억 원은 필요한 집이었다. 언젠가 성공하면 살아볼 수도 있겠지 하고 막연한 기대만 품고 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집이 성공은커녕, 오히려 실패한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오리맨션보다 서울과 조금 더 가까운 집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무엇보다 수억 원이 아니라, 그보다 한참 저렴한, 조금 무리하면 충분히 노려볼만한 가격이었다. 예비 신혼집을 장만한다는 각오로, 큰 빚을 갚고 있던 와중에 다시 빚을 내서 보증금을 마련해 월세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하여 나는 십수 년 동안 머릿속에 있던 시크릿 하우스에서 살게 되었다. ‘구름정원’이라는 애칭도 붙였다. 위대한 신비의 안배 속에서 이제 행복을 누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결혼도 준비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시크릿 하우스에 이주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오래 사귄 연인과 이별했고, 이내 삶의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버렸다. 다음 해에는 코로나가 터져 직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눈 앞에는 다시 빚만 잔뜩 남아 있었다. 위대한 신비의 뜻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오컬트 세계에 과몰입하는 것은 역시 주의를 요한다.


오늘부터 연재할 이 이야기는 얼마 전 출간한 책 <1인 도시생활자의 1인분 인테리어>에서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나의 아주 작은 펜트하우스, '구름정원'의 본격 우당탕탕 셀프시공기이다.





* 관련 출간 도서 :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