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진 Jan 08. 2024

날 붙잡을 공중마당

아주 작은 펜트하우스 인테리어 4


경상북도 안동에서 3년 가까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곳을 거점으로 경북의 산천 곳곳을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고, 옛 선인들과 우리 신화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영양, 봉화, 경주, 왜관, 김천, 상주 등지의 작은 동네 까페에서 글을 썼다. 한때 정치 과몰입러였던 내게 경북은 보수의 텃밭일 뿐이었고, 해서 굳이 방문하고 싶은 지역은 아니었다. 열두 번의 계절 동안, 직접 땅을 밟아 본 후로는 생각이 전혀 달라졌다. 경북은 대단히 아름답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장이다.


대학시절 한국고전문학과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덕에 내 안에는 선비의 감성이랄까 하는 것이 있다. 구불구불한 산의 능선이 만드는 선율과 재잘재잘 흐르는 냇물에 반사되는 작은 햇빛들에 곧잘 감격을 느낀다. 옛사람들이 그린 산수화를 보거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조선이나 고려의 풍경이 애틋하게 그리워진다. 경북에는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었다. 나는 수백 년 전 인물들의 자취를 쫓아 숲과 산과 강가의 수많은 고택을 방문했는데, 그 여정 자체가 곧 시간여행이었다. 사극드라마를 사랑하는 분이라면 봄, 가을이나 초여름에 경북의 작은 길들을 천천히 걸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반드시 걸어야 한다. 승용차로 잘 닦인 대로를 달리는 것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풍류가 있다.


인문학 여행서 <힐링로드> 시리즈를 작업하며 뷰파인더에 담은 경북의 풍광. sony A7R / contax G 28mm


경북 여행을 통해 한옥의 정체성은 하늘이 열린 마당에 있음을 깨달았다. sony A7R / contax G 28mm


그렇지 않아도 나는 한옥에 애정이 있었는데, 경북 맛(?)을 좀 본 뒤로는 한옥무새가 되고 말았다. 당장 한옥 구하기가 어렵다면, 차선으로 ‘ㄱ자 구조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라도 살아 보고 싶었다. 그 바람은 뜻밖에도 5층 빌라의 꼭대기 층에서 완벽히 이루어졌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부럽지 않을 아름다운 산의 능선이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 작은 옥상 공간에 나만의 마당을 갖게 된 것이다. 


‘구름정원’이라 붙인 지금 집의 이름은 바로 이 마당에서 비롯되었다.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 대로, 눈이 쌓이면 눈이 쌓이는 대로, 여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피어오르는 대로, 별들이 켜지면 켜지는 대로,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다른 무엇보다 손수 가꾼 이 마당 때문에 나는 지금의 집을 쉬이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집주인 어르신, 부디 월세는 적당히 올려주세요.






| 고군분투 공중마당 만들기 

* 모두 혼자서 직접 작업한 겁니다 : )


1. 가림막 설치

- 이사 왔을 때 공중마당 가장 큰 문제는 사생활 보장이 1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래 사진처럼 반대편 건물에서 언제든 나를 구경할 수 있었기에, 가림막부터 설치해야 했다. 한옥의 정서를 자아내고 싶어서 목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실내 인테리어 작업만 해봤지, 실외 작업은 해본 적이 없어서 우당탕탕 체력도 허비하고, 돈도 날려먹고 말았다. 그래도 3차 시도 끝에 해법을 발견하여,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오나 튼튼한 가림막을 완성했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초록 우레탄 옥상이었던 나의 마당. 매일 아침 반대편 건물 창가에서 흰 난닝구 차림의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며 나를 관찰했다.


빙구 같이 실내용 목재를 잔뜩 사다가 어찌어찌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부식 방지용 니스를 칠했지만 3개월만에 나무가 죄다 썩어버렸다 OTL


바람에 휘어지고, 빗물에 썩은 나무를 피눈물 흘리며 모두 철거해야 했다. 실외에는 판을 얇게 겹쳐 만든 집성목은 사용해선 안 되고, 강도가 높은 각목 등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강한 바람에 휘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세하게 바람 길을 내줬다. 썩지 않은 나무를 재활용하고, 서로 두껍게 겹쳐서 강도를 높였다. (결국 나중에는 새 각목으로 모두 교체)


난닝구 아저씨의 시점에서 크로스 체크를 해보았다





2. 쪽마루 설치

- 아무래도 쪽마루가 없으면 한옥 마당이라고 하기 섭섭할 것이다. 그래서 연남동 거주 시절, 파리지앵 인테리어 작업을 할 때 만들었던 마루를 해체하여 재활용해봤다.


기존에 만든 마루는 평상 느낌의 정사각형이었는데, 그걸 해체해서 기다란 쪽마루 형태로 바꿨다. 바닥에 벽돌을 대서 습기가 올라와 썩지 않도록 조절했더니 사계절 모두 튼튼하다





3. '밤의 카페 테라스' 설치

- 한옥 마당을 지향했지만, 테라스도 갖고 싶었다. 꼭 두 가지를 섞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던가. 과감하게 동서양의 만남을 주선했다. 거실에 걸려 있는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 테라스'를 보며 최대한 그대로 뚝딱뚝딱 모방했다. 이것저것 재료비는 대충 15만 원 정도.


먼저, 폐창고 같던 콘테이너에 색을 입혔다. 일부러 고흐의 유화 같은 느낌을 내려고 터치를 덜 매끈하게 조절했다.


테라스 설치를 당연히 해본 적이 없어서 역시 이건 인부를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쩐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방부목만 주문해서 직접 작업했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고흐의 그림 속 테라스 목재 색감과 가장 유사한 스테인을 골라서 칠했다. 우주의 도움으로 역시 그림 속 테이블과 거의 같은 유리 테이블 세트를 단돈 39,000원에 구했다





4. 외벽 백색 시멘트 도포

- 온통 초록 우레탄으로 덮여 있는 마당의 벽에 4,900원짜리 백색 시멘트를 바르고 양반 대가댁 담벼락 같은 질감을 만들어 봤다. 


시멘트 도포 작업은 페인팅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갖 작업장으로 쓰이느라 마당의 바닥이 엉망이 되었지만...






5. 인조 잔디 설치

- 인조 잔디를 깔지, 한옥 마당처럼 자연스러운 콘크리트 바닥을 만들어 볼지 고민을 많이 했다. 테라스에는 인조잔디가, 쪽마루에는 콘크리트가 어울렸다. 방수 문제나 콘크리트 수평 문제 등을 고려한 결과 내 기술력으로 아직 콘크리트 타설은 무리라는 생각에 인조 잔디 설치를 최종 선택했다. 


인조 잔디는 품질에 따라 가격이 큰 차이가 난다. 옥상에 배수가 되지 않아 아래층 주민들에게 침수 피해를 끼치는 일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가장 배수가 잘 되는 최상급 인조 잔디를 구매했다. 구름정원 인테리어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썼다. 누군가에게 공연히 피해를 주느니, 내 돈이 더 드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잘 사용하고 이사할 때 걷어가면 되니까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인조 잔디 설치는 돗자리를 깔끔하게 까는 정도의 난이도. 바닥 넓이만 정확하게 측량해서 주문하고, 자투리 부분은 커터칼로 잘라 주면 된다.


아아, 인조 잔디는 사랑이었습니다. 나만의 공중마당 대완성!


2024. 1. 8. 장명진 (구 멀고느린구름).





* 관련 출간 도서


이전 04화 삶은 결국 신의 주사위 놀이지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