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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Dec 18. 2023

뉴욕의 마음이 깃든 집

아주 작은 펜트하우스 인테리어 2


5층 빌라 꼭대기 층의 단독 세대. 5평 정도의 옥상 마당이 있고, 그 옆의 철제 간이계단을 통해 이어진 별채까지 있는 아주 독특한 구조의 집. 나는 우야든지 이 집을 계약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 자산은 사업 실패 후 도서관에 취직해 일하며 간신히 모은 500만 원이 전부였다. 예술인복지주택담보대출, 청년희망미래보금자리론, 신용회복위원회디딤돌대출, 소상공인주거안정특례대출 등등등등 그 이름도 길고 다양한 온갖 대출 프로그램에 서류를 내밀었다. 결국, 하늘은 가느다란 동아줄 하나를 내려보내주셨고, 나는 위태롭게 그 줄을 붙잡아 계약에 성공했다. 겨우 500 가지고 이런 집을 얻어보려는 욕심을 냈다니… 반쯤 미쳐 있었던 그때라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삼각 지붕의 아주 작은 펜트하우스 '구름정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기왕 좋은 집을 얻었으니 10년 셀프인테리어 노하우를 총동원해보기로 했다. 이전에 살았던 주공 맨션은 이삿짐을 다 옮긴 뒤에 바닥재와 벽 페인트 작업을 해서 여러 고충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초 작업을 완료하고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 내 계획을 우주도 알아차렸는지 원래 살던 월세 집 매물이 이사 후에도 팔리지 않아서, 5개월 넘게 생돈을 내야 했다는 건 비밀.


세 차례 셀프인테리어 작업을 하며 내 안목도 제법 레벨업했다. 이제 페인팅 작업 시에 어떤 색을 쓰느냐를 넘어서, 페인트 브랜드, 채도, 반사도, 심미성, 색의 이름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덕분에 컬러 선정에만 일주일이 걸렸다. 구글링을 하며 수 천 가지의 색을 검토하고, 포토샵으로 찍어 둔 집 사진에 색을 입혀보기도 했다. 첫 파주 아파트를 셀인할 때의 묘한 설렘이 다시 느껴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디폴트 상태의 오묘한 벽지 색과 최대 빌런이었던 벽돌 무늬 포인트 벽지


고심 끝에 선정된 거실의 포인트 색은 벤자민무어 페인트의 ‘뉴욕의 마음(New York State of Mind)’이었다. 어린 시절 명화극장에서 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에 등장하는 뉴욕은 파리 못지않은 동경의 도시였다. 그리고 훗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을 통해 유망한 소설가만 단편을 실을 수 있다는 <뉴요커>란 잡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 뒤부터 뉴욕은 내 뇌내 망상 속에서 소설가 지망생의 도시가 되었다. 문제적 감독인 우디 앨런을 닮은 인간들이 어영부영 길을 쏘다니고, 하루키 같은 부류는 새벽의 창백한 가로등 아래서 런닝을 하는 그런 도시 말이다. 이건 나의 대단한 편견이지만 여성 소설가 지망생들은 어쩐지 오드리 헵번처럼 멋지게 살아가고 있을 듯하다. 오드리 헵번처럼 산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성별과 무관하게 나는 어느 쪽이냐면 오드리 헵번처럼 살고 싶은 쪽이다. 아무튼 그런 염원을 담아 새 거실의 색은 ‘뉴욕의 마음’이 되었다.



밤낮 없이 작업한 결과물을 아침 햇살 속에서 바라볼 때 느끼는 뿌듯함이란!


집의 중심이 되는 거실 외의 공간은 가성비를 고려해 팬톤 페인트를 사용했다. 색명은 ‘춤추는 구름(cloud dancer)’이다. 오만가지 흰색을 뒤지고 뒤진 끝에 나의 정체성과 딱 맞는 색을 발견한 그때의 나를 칭찬한다. 벌써 이곳에서 5년째 살고 있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아주 담백한 흰색이다. 북유럽 인테리어를 지향하는 분들께도 추천한다.


내 책 <1인 도시생활자의 1인분 인테리어>에서도 소개를 해두었지만, 셀프페인팅을 할 때 가장 좋은 도구는 페인트붓이나 롤러가 아니라 스펀지다. 다이소에서 1,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늘 장대롤러로 벽과 천장을 칠한다고 죽을 고생을 했는데, 나중에서야 스펀지를 사용하면 훨씬 쉽게 쓱싹쓱싹 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천장 페인팅을 할 때는 바닥에 신문지 등을 펼쳐 놓고 작업하는 게 좋겠다. 안 그러면 나중에 우매한 저처럼 바닥에 달라붙은 페인트를 제거하느라 페인팅 시간보다 두 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됩니다 . _ .


바닥은 죄가 없다...

 

2023. 12. 18. 멀고느린구름.

 


 

*관련 출간 도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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